글쓰기 한 달후

by 여비

어색했던 글자 자판이 제법 손에 잡힌다. 다섯 손가락이 언제쯤에나 춤을 추게 되려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들이 느린 손으로 날아가 버릴까 초조하다.

앗! 생각났다. 검지로부터 중지, 약지 또다시 중지로 덜덜 대며 기어간다. 시간이 간다.

그녀가 간다.

그리고 나의 글이 깜박이는 커서를 집어삼키며 화면을 지나간다.

어릴 적에는 ***간다... 는 말을 들으면 슬펐다. "할머니 간다. 동생 잘 챙기고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상님 말씀 잘 듣고" 돌아 나가시며 찬 공기가 휑한 바람을 몰아왔다.

대추나무집 영숙이와 종이인형 옷 입히기를 하며 자기 엄마 자랑을 한다. "울 엄마가 장에 나가면 빨간 리 봉하고 머리핀, 그리고 크레용 사다주신대"

엄마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시리다. 서울로 돈 벌러 갔다던 소리에 싸늘한 눈으로 얼마나 앞마당을 서성대었나... 그래도 영숙이와 놀고 벼란박에 먹칠을 한 언덕 위의 하얀 집엔 굴뚝이 높다. 한참을 놀다가 집에 간다며 "나 이제 간다" 하고 쌩하니 문지방을 넘는 영숙이...

글자가 간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손가락을 타고 깜박이는 커서를 넘어간다. 신기하기만 하다. 비록 지금은 굼벵이처럼 느리게, 출근시간에 막히는 버스처럼 느리게, 거북이의 짧은 네 개의 다리처럼 내 둔한 손가락이 느리게, 글자 자판을 더듬지만 화면 위에 글자가 간다.

시간이 가고 영숙이가 집으로 가고, 그럴 땐 슬펐지만 글자가 갈 때는 기쁘다.

글자가 간다. 글자가 뜀박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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