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고모와 나는 짜장면 파티를 한다. 난생처음으로 먹방을 한다. 학창 시절엔 소풍을 함께 갔어도 점심으로 준비한 김밥도 함께 먹지 못했다. 담임을 맡은 선생님의 자리는 내게 까지 미칠 손이 없었다. 학생들로 왂자한 **유원지는 푸른 숲이 너른 공설운동장보다 더 커다랬다.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의 머리수가 간현강의 물줄기로 감싸 안는다. 사위는 경쾌하고 활기차도 나는 신이 나지 않는다. 서울에서 이곳 원주로 전학을 왔기 때문이다. 어색하고 낯선 학교생활은 나를 힘들게 했다. 책가방 챙기기, 학용품 준비,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내 손짓은 지금 커서를 더듬대고 있는 모습과 같다.
도고 시내를 벗어난 둑길을 막내 고모와 나는 천천히 걷고 있다. 봄바람은 포근한 솜털 구름 같다. 따스한 햇빛이 조금은 나른한 우리의 특별한 날을 축하한다.
각자의 생활로 바쁜 날이었다. 한 가족이지만 함께 살지 않았다. 나는 내 가족들의 엄마로 아내로 살았다. 유년시절 대학생인 막내 고모는 뾰족 구두를 신고 청파동에 언덕을 오르내렸다. 앞마당을 나는 신데렐라의 공주처럼 누비고 다녔다. 밤 열두 시가 되어도 왕자님의 품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푸른 꿈을 온몸으로 받고 귀속으로 울리는 똑 똑 소리에 희망의 질주를 했다. 그 시절 나의 고모는 친구가 아닌 큰언니였다.
너른 황토색의 흙들이 양 두 팔보다 넓게 펼쳐있다. 멀리 보이는 흰색의 해오라기가 짝을 찾아 날아오른다. 이차선 도로 한편에 낡은 경운기가 주인 없이 나와 서있다. 한가한 오후에 싱그러움을 더한 오래된 구옥 앞 얕은 화분이 정겹다. 노란 수선화를 곁에 두고 도란도란 옹기종기 사는 얘기를 한다. 승용차로 달려온 짜장면 두 그릇을 마주한다. 소소한 일상이 아닌 아주 특별한 우리의 만남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