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가 왔다. 딸애가 주문한 콜라에 어색한 브로콜리 볶음은 나의 입맛을 당겼다. 올리브유를 휘감은 브로콜리가 낯설어 보였지만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나에겐 삼 십년지기 친구가 있다. 우린 동네 소아과의원에서 처음 만났다. 뿔테 안경 너머 하얀 피부는 부잣집 맏며느리를 연상했다. 하지만 S는 가난한 집의 시누이를 셋이나 거느린 새언니였다. 새댁의 딱지도 뗄 겨를 없이 도시락네개와 준비물 준비로 분주히 문방구엘 들락대었다. 방 두 칸을 사이에 손바닥만 한 거실 겸 주방이 있고 켜놓은 티브이 앞에 S의 아들이 붙어있다. 해야 할 일상은 차고도 넘쳐 시간을 먹고 등에 붙은 아들은 곤히 잠이 들었다.
딸애를 붙들고 거실에서 그림책을 마주한다. 경대위에 놓인 카세트에선 배경을 수놓는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내려앉고 나는 병아리 음색으로 최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게 손짓 발짓을 교차하며 읽는다. 나른하도록 매지근한 햇살이 눕는다. 스르르 감긴 두 눈이 절로 나도 절로 누워 S를 생각한다.
고단한 일상을 보내는 S는 언제나 웃는다. 빨래가 산더미로 쌓여 손을 부지런히 놀려야 할 때도, 장난감 바구니를 채워 정리할 나뒹구러 진 장난감이 거실 바닥에 헝클어져 있을 때도, 설거지통을 가득 메운 식구들의 그릇이 구제를 바랄 때도..
가녀린 체구와 몸짓이 힘겨룰새 없이 돌아친다. 반드시 해야만 할 일들을 즐겁게 한다. 딸애를 업고 마실을 종종 가는 내 손엔 크래커가 들려있다. S와 함께 나누고 돕는 손으로 나도 덩달아 바쁘다. 힘겨워하지 않도록 조금의 보탬 속에 한 뼘씩 커가는 우정이 더없이 좋다. "S는 쥐띠라고 했다. 나도 쥐띠다." 공감대가 메트로놈 박자기의 택 탁 하며 넘나 든다. S는 말을 재미있게 한다. 아는 것도 많고 웃음도 많다. 나는 정 반대로 웃는 일엔 어색하고 듣는 얘기도 반응이 더디다. 리액션을 해보고 싶어도 뻘쭘하다. 오랜 시간을 혼자 보내서다.
품앗이로 공부방을 할 때다. 그림을 잘 그리는 S는 사람, 동물, 꽃 등 척척 그린다. 산뜻하게 색칠 교재도 만들어 내 손에 들려준다. 바쁜 집안일 속에서도 시간을 아껴 늦깎이 대학생도 되었다.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 S가 한 말이다. 부지런히 일하니까 가만히 숨 고르기 할 틈이 없어 갈등이 고민이 없었다.
서로 다른 우리는 브로콜리와 콜라처럼 목 넘김이 부드럽다. 한 잔의 콜라가 톡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