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을 뒤적였다. 안식년의 뜻을 찾기 위해서다.
재충전의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하여 1년 정도씩 주는 휴가라고 적혀있다. 나는 시어머님의 죽음으로 많이 힘들었다. 장례 절차 속에서 사람 노릇 하기가 버거웠던 나는 내게 안식년을 주기로 했다.
아침이면 밝은 햇살을 받으며 잠을 털어내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티브이 광고 속에 나는 없었다. 앤틱가구의 정갈함도 고요히 흐르는 라디오 속의 클래식 음악도, 토스터 기안의 빵도, 로스팅이 적절히 된 한 잔의 커피도 내겐 없었다.
미명을 제치고 숨을 재촉했다. 늦지 않도록 바툰 걸음을 내디뎌 일터로 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영어 속담을 입 속으로 되뇌었다.
시어머님은 평생을 부지런히 일만 하셨다. 혼자여서 무겁고 험한 시간들과 마주하셨다. 나는 시어머님을 애처로워했다. 마음을 보태고 손으로 돕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일을 찾고 지금까지 일과 산다. 물론 내가 보태는 몸과 손은 심히 미약하지만 티만큼은 출중하다.
시간은 일도 먹고 요령도 먹어 몸과 마음이 뚱뚱해졌다.
누구든지 평등한 죽음을 마주한다. 준비가 덜 된 이별 앞에 당혹스러웠다. 함께하지 못했던 순간들과 의무로만 대했었던 나의 이기심 앞에 부끄러웠다. 내가 우선이었던 이, 치졸한 마음을 모두 내어놓고 싶다. 짓누르는 버거움은 회한으로 남아 있다. 몸이 아파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남편과 딸애는 그동안의 내 수고를 인정해 주었다. 보기에 딱할 정도의 몸상태가 불편했나 보다. 편하게 쉬기로 마음을 보태고 내게 금일봉도 주었다. 난 고마웠다. 부족했다고 넉넉하게 품을 내어주지 못했음을 눈물로 표현했다. 구체적으로 혼자서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도 이야기해 주었다. 수동적이 아닌 능동의 시간을 만들고 싶다. 봄날의 풍경을 즐긴다. 꽃들의 속삭임이 생명을 찬양한다. 사색하며 글쓰기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