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행복더하기
갑자기 일을 벌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특별히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주변의 호응과 각자의 평상시 열망이 만나 짜잔하고 일처리를 하게 되는 경우이다. 시작을 한 것이 누구였는지도 정확치 않지만 처음은 나였던 것 같다.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 일을 하겠노라는 명샘의 말을 듣고 나는 노인분들께 그림책을 읽어드리는 봉사를 하면 어떨까하는 이야기를 했다. 명샘은 나의 말을 듣고 그림책을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과 만나 사람을 모으자고 했다. 스승님과 함께 그림책을 공부했고 그림책을 사랑하는 많은 패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좋은 일을 하는 단체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처음엔 단체를 만들고 봉사까지 하는 것에 모두 확신이 없었지만, 단계의 순간순간마다 망설임을 극복하게 하는 여러 명의 활약으로 단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좋은 도반들을 모아 여름에 첫 모임을 했다.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함께 모여있다는 것에 들뜨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또 들떴다. 우리는 이제껏 그림책으로 위로받고 풍요로움을 누렸던 시간을 되갚아주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유쾌한 저녁을 보냈다. 그리고 한 번 두 번 모임을 하며 틀을 만들어가고 있다. 조직을 만들었고, 단체를 만들었다. 그림책 선정 작업을 하며 조금씩 목록을 쌓아가고 있다. 그러는 중에 박샘께서 치매노인 케어센터의 수업을 연결해 주셨다. 사실 단체를 만들기도 전에 소개를 하신 거라 목표가 명확해졌다.
노인은 우리의 미래이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도 노인이 될 것이고 안타깝게 치매가 걸릴 수도 있다. 노인분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겠다는 마음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흐름 하나를 따라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의 미래의 토양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꾸고 싶다는 무의식의 발로를 따라가는 것이다.
오늘 치매 케어센터에 방문하여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당에서 운영한다고만 알고 간 것인데 성당과 바로 붙어있는 건물을 보니 미묘한 마음도 들었다. 어떤 자연스러운 이끄심이 있는 것 같은 마음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수업을 소개해준 박샘과 나는 카톨릭신자라 다른 샘들을 끌고 성당에 들어가 짧은 기도도 했다. 원장님은 어르신들을 오랜 시간 돌본 분이라 여유있으면서도 차분하고 행동력이 있는 분으로 보였다. 그림책을 읽고 활동까지 하는 수업을 할 수 있는 노인분들은 장기요양 3~4등급이나 인지지원등급 6등급 정도의 분들이라고 하셨다. 수업에 익숙치 않은 우리를 배려해 그분들을 위주로 수업을 시작하지만, 차츰 치매가 심한 분들도 참여하기를 바라셨다. 그것은 그림책을 통해서 어르신들의 정서와 인지에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먼저 그분들의 순간순간이 행복하면 좋겠고 되도록 많은 어르신의 혜택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셨다.
치매가 치유될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갖거나 아니면 잘해드리려는 부담을 갖는 것이 아닌, 그저 그 순간 어르신들의 행복과 정서적인 교감을 드리는 것에 마음을 쓴다는 것이 의미있게 와 닿았다. 그리고 그분들을 치매노인으로 의식하지 말고 대해 주시라는 말씀도 의미있게 다가왔다. 늙어가고 노화되어가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니 치매 어르신들을 우리와 특별히 다른 상태로 여기지 않은 것이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르신들의 잊혀졌던 기억과 감정들을 불러와 즐거움을 느끼게 해드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함께 하는 시간들이 풍요로움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믿음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