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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Dec 22. 2023

치매노인과 그림책

노인치매센터에서 한 해 활동을 마치며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단체를 만들고 치매센터에서 한 해 동안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제 수업이 마무리되고 마지막 모임까지 마치고나니 감회가 새롭다. 그림책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는 막연하고 걱정이 되었다. 치매노인에 대한 공부가 많이 되어있지 않아 어떤 접근을 해야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팀원들은 먼저 치매노인분들께 적당한 그림책을 선정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림책에 따라 일년 동안 48주 동안 활동을 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었다. 함께 마음을 합쳐 작업을 하니 막연하게 여겨졌던 일 년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우리 단체원들은 수업 전에 막연히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르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가 막연하기도 했고, 어르신분들의 인지능력이나 감정적인 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할 지가 가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간을 나누어 수업을 시작했을 때 예상과는 달리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도치매노인분들은 각자의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가치관이 달랐던 만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우리 단체와 함께 하신 12명의 어르신들은 각자의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셨고 나약함을 드러내시기도 했다. 그래서 치매노인이라는 이름 하나로 틀을 정해 단순하게 정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분들은 자연스레 이어지는 인생의 한 자락을 살고 계실뿐 치매노인이라는 의미 안에 가두고 단순하게 바라볼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우리가 선정한 그림책은  어르신들의 어린시절이나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을 담은 책을 선정하기도 하고, 옛날 이야기 속의 전통이나 유머를 다루어 보기도 하고, 정서를 다루는 아름다운 그림책도 선정하고, 노인분들이 주인공인 그림책을 다루기도 했다. 다만 그림이 아름답고 글이 정제되어 있는 그림책을 선정하고자 했다. 그림책을 읽는 동안 어르신들은 화상기를 통해 비추이는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시며 내용을 놓치지 않으시려고 애쓰신다. 그림책을 읽어드리며 어르신들에게 인지나 정서적으로 와 닿는 질문을 드려본다. 어르신들은 떠오르는대로 답을 하기도 하시지만 대부분은 별 말씀을 안하신다. 그래도 답을 생각하는 효과는 있는듯 하였다. 고민을 해보시며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남는 시간에는 그림책과 관련된 여러가지 활동을 해보았다. 그림책에서 만난 장면을 색칠하기도 하고 찰흙으로 만들어보기도 했고 글짓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역량이 약해지고 기억이 약해지고 있으시지만 최선을 다해 참여하려고 하셨다. 어떤 어르신은 한 가지 색으로 시커멓게 색칠을 하기도 했지만 어떤 어르신은 다양한 색으로 꼼꼼하게 색을 칠하셨다. 너무도 정성스레 색을 칠하시는 모습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간혹 동요나 트롯트 음악을 틀어드리고 마이크를 갖다 대드리면 못이기는척 마이크를 붙잡고 열심히 노래를 부르셨다. 그런  어르신들의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가 나오면 열심히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신다. 연탄 구멍이 몇 개인지, 꽃 이름이 무엇인지, 곡식들 이름이며 지명이름까지 기억나시면 열성을 다해 말씀하신다. 동요가 나오면 열심히 부르시고 시를 읽어주시라 청하면 성심껏 읽어주신다. 마치 바른 학생의 모습처럼 말이다. 살아온 이야기를 하실 때는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말씀하시곤 한다. 하지만 기억이 떠오르지 않거나 뭔가 정리가 되지 않는 감정에는 알쏭한 표정으로 얼버무리신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시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만나게 된 그림책은 어떤 의미가 있으실까? 어르신들이 겪은 일을 떠올리게 하고 만났던 사람들과 장소들을 떠오르게 하고 예전의 감정들을 만나게 해주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소통과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어주는 것이다. 또 그림책은 놀이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림책 속 아름다운 꽃동산을 보고 꽃동산을 꾸며 보기도 하고, 그림책 속에서 만난 메주만들기를 찰흙으로 빚어내며 감동을 느껴보기도 한다.


그림책과 어르신의 어울림을 함께 하며 따뜻한 감동을 나누고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어르신들의 지난 이야기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힘겨운 움직임이나 멍해진 기억에 함께 안타까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 해를 지나며 건강이 더 나빠지신 어르신도 있고, 귀가 더 안들리는 어르신도 있고, 오히려 몸이 더 좋아지신 어르신도 있다. 어르신들의 몸이 더 건강해지거나 지력이 나아지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다만 어르신분들이 살아계시는 동안의 시간이 즐겁고 행복한 작은 축제이기를 바래본다.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 나도 그 자리에 그렇게 있을 것이다. 인생의 무상함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아직은 막연히 여겨지지만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쌓여 미래의 나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을것 같다. 한 해 동안 애써준 동료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우리는 어르신들과의 즐거운 그림책 읽기를 계속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하는 그 순간을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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