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상대의 호흡 알아차리기
대화를 할 때 쉽게 호응을 해주는 걸 미덕이라 생각했다. 상대의 힘겨움이 무언지 정확히 알려한다거나 하지는 않고 일단은 위로를 날려야 한다는 마음이 마치 강박처럼 작용을 했다. 그래서 아픈 이야기를 하면 얼른 고개를 끄떡여주고, 지난 시간의 나를 생각하며 감정을 대입해보고, 나름 인생에서 얻은 경험치를 바탕으로 해결책까지 만들어주려 했다. 자서전 수업을 할 때도 그런 상담이나 해소를 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계속 듣는 버거움들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답을 찾지 못하는 나를 무력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상담치유사인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진정한 치유자의 경청을 알게 되었다. 치유자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잘 돌보아야 한다고 하셨다. 치유를 할 때 진솔성과 자신의 역량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역량을 채우기위해 날마다 충전하는 시간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한다고 하셨다. 또 자신에 대한 알아차림이 계속 이루어져야 에너지가 새지 않는다고 하셨다. 힘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은 치유자 자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듣기 연습을 해 보았다. 상대의 고충을 듣게 되는 치유자는 그 에너지에 휩쓸려 들어가서는 안되며 중심을 잡아야하고, 나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기억이나 감정, 경험을 그때그때 밀어내며 오롯히 상대의 존재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온 존재로써 들으며, 감각을 꺼내 놓고 경청할 때 치유자가 문제를 풀어주지 않아도 내담자 스스로 답을 찾아갈 것이라고 한다. 이때 나를 계속 알아차리는 도구로는 호흡을 사용한다. 나의 숨을 알아차리고 상대의 숨을 알아차리며 닻으로 사용하면 어느 순간 에너지는 연결되어 진정한 듣기가 가능하게 된다고 한다.
나의 듣기의 태도를 살펴보며 알게 된 것은 상대의 말을 들으며 어떤 결론이나 해결책을 얻으려는 조바심을 일으키고 있는 나를 알아차림 할 수 있었다. 상대의 말에 긴장이 올라오고, 여러가지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오고 있었고, 편히 상대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내 호흡은 불규칙했고 가슴에 답답함이 올라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호흡을 맞춘다는 건 존재와 존재로 조응하는 모양새일 것이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여주는 숭고한 사랑의 다른 모양새일 것이다. 내가 가진 선입견, 방어기제, 섣부른 호의, 인정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촌스러운 선의의 모양새를 버릴 때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빨리 친해지고 싶은 마음의 근저에 있는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냉정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일 수도 있고, 어설픈 휴머니즘일 수도 있었겠다 싶다. 아니면 지나친 모성애의 발로나.
상처받은 사람이나 거친 감정으로 혼란스러운 사람에게 나를 보호하면서 바람직한 상담이나 코칭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바로섬이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에너지를 쉽게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중심 안을 지키고 있을 때, 나의 에너지 안으로 상대는 끌려오면서 조율되어질 것이다. 그때 서로가 균형을 이루고 치유자는 에너지가 고갈 될 우려가 없게 되는 것이다.
나를 잘 지키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셨다. 진짜 지쳤을 때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 무언지 생각해보고 그걸 지치기 전에 선물처럼 계속 공급해주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것으로 힘을 얻는 것이 첫째이고, 사람냄새가 나는 드라마 보기가 두번째 방법이고, 맛난 간식 먹기와 숲길 걷기가 그 다음이다. 하지만 그걸 그렇게 많이 실천하며 살지는 않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직 치유자의 삶을 산다는 것에 자신감이 없다. 내 자신이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건강하고 확신에 찬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행히 듣기의 길을 알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행복해지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치유자는 자신이 먼저 치유받은 사람이어야 함을 다시금 알게 된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안정된 호흡을 하고 마음챙김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