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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Mar 21. 2023

알 수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세계적인 영성가인 에크하르트 톨레가 쓴 책의 제목이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제까지 읽었던 어떤 영성도서보다 깊이 내면을 성찰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요하게 나의 본질에 다가가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작가의 노력을 쉽게 고스란히 전수받는다는 것은 고마움을 넘어 은혜로운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살아내야 하는 시간들이 참 버거울 때가 많다. 의무적인 일을 하는 중간중간 나는 가는 길이 어딘가 하며 힘든 체력적 한계와 나의 무능력함에 힘이 빠지곤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도 그리 대단히 만족스럽고 행복하지는 않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가도 시간의 틈이 생기면 중간중간 마음은 공허함에 젖게 된다. 어쩌면 삶의 목표랄까하는 것이 뚜렷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아니면 아직 행복에 이르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물질적인 풍요와 보란듯이 보여줄 수 있는 명예같은 것 말이다.


나는 막연한 답답함이나 두려움을 늘상 장착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어서 나를 온전히 즐겁고 가벼운 감정으로 가지 못하게 한다.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 보았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는데 나이가 나이인만큼 체력적으로 힘들고 지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있다. 남편의 건강도 항상 마음 한 켠에 걱정된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면서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이 늘상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만족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크하르트 톨레도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극심한 두려움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는 과거 인류가 겪은 고통들의 역사에 의해 내 안에 축적된 고통체가 있고, 더불어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고통체로 인해 정신적 괴로움을 안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자신이 만든 여러 생각과 감정, 자아상, 의도 등이 어우러져 에고를 이루고 나를 흔들고 있기에 늘상 불만과 두려움을 갖게 된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자동화된 상태로 머물며 변화되지 못하고 여전히 답답한 감정 안에 있음을 느낀다. 밤마다 몰려오는 공허함과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들이 안갯속같은 감정에 머물게 한다. 톨레도 아무리 발버둥쳐도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에 휘둘리는 자신에게 넌덜머리가 났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그는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어. 도데체 나는 왜 이 모양이야?'하며 자조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자신과 또 다른 에고형태의 자신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에너지 속에서 평화롭고 두려움이 사라진 참 자아를 만나게 된다.


늘상 자신을 못마땅해 하고 걱정에 싸여 있었던 에고적인 자신과 달리 아무런 덧붙임이 없는 본래적인 자신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견고하게 과거에서 내려온 인류의 카르마와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감정, 생각, 욕망들과 이루어낸 사회적 지위를 자신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산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이니까 마치 실체가 있고 진실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수행자들이 내 안의 참 자아를 만나는 방법으로 명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명상을 하는 방법도 다양하기에 쉽게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 그래서 나도 감히 명상을 하려는 엄두를 오랫동안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스승을 만나 그냥 앉아있어 보라는 말씀에 의지해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이란 것이 대단한 사람들이 대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각을 비우고 조용히 머물러보는 일이라 하셨다.


또 명상을 통해 생각을 멈춘 빈 자리에서 바탕으로 존재하는 나 자신을 만난다는 것을 배웠다. 실제로 명상을 하는 동안 잠시 전까지 찌푸리고 있었던 얼굴이 펴지는 걸 느끼고 알수 없는 평안함이 퍼지는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통찰이 올라오거나 행복감을 느끼는 그런 경험은 없다. 끝내 그런 일이 안 일어날 지도 모른다. 다만 나라고 붙잡고 있는 것들과 잠시 거리두기는 되는 것 같다. 이를 확장하여 일상 안에서도 나를 관찰하면서  거리두기를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더 좋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경험을 해도 오랜 관성이 있어서 다시 예전처럼 뭔가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운 감정이 올라오고, 찌뿌둥하고  답답한 신체적인 느낌까지도 반복되는 것이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마음이나 에고는 너무도 연약하고 불안하여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 느낀다고 한다. 그러니 에고는 온전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며 진정한 자아를 느끼고 싶어한다고 한다.


나는 동안 이유없이 올라오는 두려움과 답답함들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기며 붙잡았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가라앉고 몸이 반응해주어 입꼬리가 내려가며 무력해지고, 생각이 과거나 미래로 향하고 있었다.


톨레의 가르침은 에고를 진정한 자신으로 여기지 말고 관찰하는 존재를 만나라는 것이고,  마음을 과거나 미래에 두지 말고 현재에 머무르라고 말한다. 굳이 진정한 자신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지금 현재에 머무른다면 부정적인 생각과 미래에서 오는 걱정과 두려움은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다시 한 번 나를 바라본다. 내가 얼마나 과거의 관성에 젖어 있는지 알게 된다. 지금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답답함은 참 자아가 아닌 에고의 형태라는 걸 자각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문다면 나에게 그런 걱정이나 두려움이 있을리도 없고 있을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나에게 속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다만 나를 잘 관찰해 보자고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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