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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Apr 07. 2023

마음을 비운 자리

일체개공- 모든 것은 공한 것이 본질이다.

마음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풀어낼 힘을 잃고 무력하게 맴도는 생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마음의 평정을 잃었던 이유는 잊어버리고 그때 받았던 혼란에 여러가지 감정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풀어내지 못한 문제들과 나의 능력없음에 대한 무기력함이 달라붙고 지난 시간에 내가 보인 많은 잘못들과 현재의 부족함들에 대한 혐오감들, 이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들이 겹겹히 쌓여 당장 넉다될 것 같은  상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 마음상태의 압박에 눌려 한계에 다다라서였을까?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마음에서 뽑아내고 놓아보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늦은 시간 잠자리에 누워 잠못들고 뒤척이다가 다시 불을 켰다. 그리고 내 안에 얽혀있는 감정들과 생각들에 이름을 붙이며 하나씩 종이에 적었다. 먼저 마음 속 상처와 슬픔이라는 감정을 꺼냈다. 내 뜻대로 되어가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초라한 존재로만 보이는 나를 안쓰러워하며 눈물을 철철 흘렸다. 다음엔 두려움을 명명하며 적어내렸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잘 살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있는가하는 겁이 나고, 남편의 버거움에 안쓰러움과 걱정이 함께 몰려왔다. 가족들을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음엔 내가 저지른 많은 잘못들과 타인을 향한 매서운 질타의 모습을 떠올리며 교만함, 위선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결국 그런 내 행동은 나에게 그대로 돌아와 자기혐오와 수치심을 일으키고 있었다.


감정을 명명하고 적으면서 이 모두를 이유없이 포기하고 놓아버리겠다는 선언을 했다. 내가 이것들을 붙잡고 있었으며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답을 찾고 있었구나하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 감정, 판단들은 스스로 마음에서 꺼내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에고의 내용물들은 모두 만들어진 것이기에 진심을 다해 붙잡지만 않는다면 나를 떠나줄 수 있는 것이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의 생각은 내가 아니며. 나의 감정은 내가 아니며, 나의 판단도 내가 아니고, 나의 소유물도 내가 아니고, 나의 과거와 미래의 사건도 내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어지러었던 마음자리가 갑자기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스스로 붙잡기를 포기했기에 나는 비어있는 자리가 되었고, 공한 상태로 느껴졌다. 마음자리가 빈다는 것이 특별한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상태를 공이라고 하며 모든 것은 비었음이 본질이며 , 그외의 것들은 허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참나를 만나는 것은 자기라고 믿고있는 많은 것들을 하나씩 버리는 시간 속에서 가능할 수 있다고 한다.


비워진 마음자리에 무엇이 있었을까? 나는 사랑이 아닌가 싶다. 한때 죽일 X라며 미워했던 그 마음을 비우자 갑자기 나에 대한 연민과 그를 향한 연민이 올라왔다. 모든 일이 암담하고 두려웠던 마음을 비우자 그냥 살아내자하며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이 되는것 같았다. 원칙들, 규칙들, 논리와 도덕들로 바라보던 마음을 비우자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보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나의 본질은 사랑이었다.


잘못 살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은 필요치 않다. 그저 나의 선함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려면 그저 나의 마음을 비우면 된다. 그러려면 지금 내가 붙잡는 감정과 생각을 놓아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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