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을 아시나요?

책 <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by 신은경

‘임계장’이란 호칭을 들으면 무엇이 연상되시나요? 계장이란 직책에 있는 임 씨 성을 가진 사람을 떠올린 나에게 셀 수 없는 충격을 주는 책을 만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글자 한 자 차이이다. 이 한 글자 차이에는 내가 짐작하지도 못할 어려움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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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회사 배차 계장(2016. 6. 1 - 2016. 8. 20), 아파트 경비원(2016. 8. 28 - 2017. 8. 27), 고층 빌딩 주차 관리원 겸 경비원(2016. 9. 10 - 2016. 12. 31), 터미널 보안요원(2017. 9. 13 - 2018. 8. 31)


38년간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2016년부터 비정규직 시급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 조정진 님의 근무 이력이다. 시급 노동자로서의 첫 직장은 버스회사에서 그는 ‘임계장’이란 호칭으로 불리게 된다. 신입인 자신의 성을 모르는 사람들의 실수인 줄 알고 ‘임 씨’가 아니고 ‘조 가’라고 말하던 그는 곧 ‘임계장’의 의미를 알게 된다.


‘임시 계약직’에 노인 ‘장’ 자를 붙인 호칭이었다. 그는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이고 삶의 2막을 시작하지만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첫 번째 직장인 버스 회사에서 그가 맡은 일은 ‘배차’가 주 업무이고, ‘탁송’은 부차적인 업무라고 했다. 하지만 하루에 400건이 넘는 탁송품을 버스에 싣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40도가 넘나드는 한여름에 안경알로 떨어지는 땀방울을 닦을 여유도 그에게는 없었다. 터무니없는 업무량에 결국 그는 부상을 당했다. 한 달 정도 통원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진단서를 붙여 사흘의 질병 휴가를 신청한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해고’였다.

두 번째 직장은 아파트 경비원이었다. 그는 아파트 경비원이 ‘육체노동 중에서도 가벼운 축에 속하는 노동’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파트 경비원은 ‘경비 업무’만 하는 게 아니었다. 24시간 빽빽하게 짜인 ‘경비원 일과표’는 실제 하는 일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매일 만나는 아파트 경비원이 하는 일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파트에서는 경비 업무보다 재활용 분리수거, 폐기물 처리, 택배 관리, 주차 관리, 음식물 쓰레기 처리와 아파트 공용 구역 청소, 조경수 가지치기, 화단에 물 주기, 잡초 뽑기, 주민 민원 처리 같은 게 기본적인 일이에요.”
“경비원은 그저 늙은 소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자치회나 관리사무소에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요. 빗자루나 걸레 같은 게 닳거든 웬만하면 제 돈 주고 사서 쓰는 게 마음 편할 거요. 그저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일해요.”

선임자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그는 공책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아파트 경비원은 민원의 총알받이이자 자치회와 관리소의 칼과 방패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자치회나 관리소는 주민이 싫어하는 말을 절대 하지 않고 곤란한 일은 다 경비에게 떠넘기거든요.


그는 아파트 주민을 세 유형으로 분류했다. 좋은 사람 소수와 무관심한 다수, 그리고 극소수의 나쁜 사람이다. 끝없는 업무와 극소수의 사람들이 제기하는 각종 민원과 싸우며 일하던 그는 결국 ‘자치회장의 심기를 거스른 죄’로 해고되었다. 세 번째 해고였다.


두 번째 해고는 아파트 경비 일과 병행한 고층빌딩의 주차관리 겸 경비원을 병행하던 직장에서 일어났다. 아파트에서 24시간 근무, 고층 빌딩에서 24시간 근무, 3개월 21일 동안의 쉼 없는 노동의 해고 사유도 ‘본부장 사모님의 차량에 호루라기를 분 죄’였다.


근면 성실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가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죄’ 때문에 다시 실업자가 되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그는 전에 일했던 버스회사에서 알게 된 지인의 소개로 터미널 고속의 보안·안전 요원으로 일하게 된다. 작은 버스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터미널 고속은 큰 기업이었다. 직책은 경비원일망정 그의 마음은 기대로 잔뜩 부풀었다.


부푼 마음이 순식간에 꺼졌다. 경비원 대기실은 지하 한구석 그것도 공용화장실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침구는 딱 세 채가 있었다. 경비원 16명이 공동으로 사용했다. 대기실은 세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만큼 비좁았다.


기상 관측 이래 111년 만에 최고로 더운 2018년 여름, 그는 터미널 사용자들을 위해 살수장치와 긴 호스로 보도를 적시고, 화단마다 물을 주었다. 정작 본인은 화장실에 갈 수 없어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입안에 머금고만 있어야 했다. 동료들의 잠을 깨울 수 없어 밤에도 물을 마실 수 없었다. 두 달 동안 계속되는 불볕더위에서 그의 소원은 ‘물이라도 마음껏 마셔 봤으면 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그 여름을 이겨내지 못했다.


쓰러진 이유를 묻는 가족들에게 의사는 그의 직업과 하는 일을 물었다.


“쉬는 날도 없이 매일 24시간 근무를 했다고요? 매연과 먼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종일 일을 했다고요? 그거네요. 검사를 해보니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어요.”


주치의는 강한 어조로 그를 나무랐다.


“사람의 몸은 한계가 있어요. 강철 같은 정신이라는 말은 있을지 몰라도 강철로 된 몸이란 없어요.”


그는 입원을 하자마자 회사에서 연락을 했다.


“진단서를 제출할 테니 며칠만이라도 질병 휴가로 해주십시오. 지금 직장이 없어지면 의료보험이 안 돼서 치료받기가 어렵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돌아온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에게는 단 하루의 ‘질병 휴가’도 허락되지 않았다. 네 번째 해고였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힘겨웠다. 마음속으로 머릿속으로 그의 직장생활을 간접경험한 탓이었다. 타인의 시점으로 본 비정규직 시급 노동자의 일은 일인칭 시점으로 본 그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지은이와 마찬가지로 평생직장에서 정년 퇴임한 후 공공근로 사업 등에 참여하는 아빠가 떠올랐다. ‘임계장’이 겪을 수 있는 일, 그가 받는 대우를 아빠가 받았을 수도 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순간 울컥했고 이 땅의 모든 ‘임계장님들’께 죄송스러워졌다.


이 책을 읽기 전인 작년 여름의 일이다. 퇴근하는 나에게 열두 살짜리 아들이 흥분하며 말했다.


강물(아들) : 엄마, 아까 집에 올 때 고양이들이 길을 막고 있었어. 그래서 경비아저씨에게 말했는데, 경비실 앞에서 손을 휘저으며 소리로만 고양이를 쫓아냈어. 고양이는 도망가지 않았고 12층 할머니가 오셔서 같이 들어왔어.


강물이는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강물 : 아저씨가 밥 먹는 시간도 아닌데, 밥을 먹고 있었거든. 나는 고양이 때문에 집에 못 들 어가는데. 엘리베이터 앞에까지 데려다줄 수 있었는데 경비아저씨는 그러지 않았어. 어린이가 위험한데 그러면 안 되지 않아?


순간 나는 ‘갑질’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지금은 나에게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강물이가 자라서는 어떤 행동을 할지 몰랐다.


나 : 강물아, 아저씨가 점심을 드시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늦게 식사를 하신 거지. 그리고 고양이는 네가 가까이 갔다면 너를 피했을 거야.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고. 만약에 너를 데려다주러 오셨다가 경비실에 응급 상황이 생긴다면 그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


책을 읽고 난 후 이 일을 떠올리며 나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도 어른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한다.’라는 말을 수시로 들었다. 그런 말들이 노동을 등한시하게 여기고 노동자를 하찮게 여기는 고정관념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고 최희석 씨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했다. 그는 “갑질이 부당하다, 이것은 이제 전 국민이 다 알고 있어요. …… 이것이 불법이고 위법이라는 것을 이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아직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 폭력배도 이러한 사회의 혹은 느슨하고 안이한 인식에 편승해서 …… 제가 이번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느슨하고 안이한 인식, 나도 가지고 있었고 앞으로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임계장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을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다. 나를 포함한 내 부모, 내 형제 그리고 내 자녀들이 될 수도 있는 임계장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처우가 개선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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