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2년 차의 중학교 생활

할 수 있는 활동이 늘어났다.

by 신은경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쌍둥이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맞는 첫 방학이다. 뭐든 처음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나 자신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아이의 경우에는 더 심하다.


4살 아기들을 처음 어린이집에 등원시킬 때, 8살 어린이들을 처음 초등학교에 등교시킬 때, 14살 청소년들을 중학교에 등교시킬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올해(2021년)에는 더욱 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지구에 퍼져 있어 익숙한 장소로의 방문, 가까운 지인과의 만남도 꺼려질 때, 새로운 학교, 새 친구들은 기대에 찬 설렘과 혹시나 하는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다가왔다.


예정되어 있던 예비소집과 입학식이 취소되었고, 2021년 3월 2일에 아이들은 곧바로 배정받은 교실로 향했다. 나는 걱정을 한가득 안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표정은 내 예상보다 밝았다. 담임선생님과 하루를 보내는 초등학교와 다르게 과목별 다른 선생님을 만나는 중학교 수업이 신기했다고 했다. 쉬는 시간마다 친구와 거리를 두라는 방송이 나와서 반가운 친구와 눈인사만 했다고 하며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중학교 첫날을 전해주었다.


아이의 학교에는 학부모 밴드가 결성되었다. 흔한 학교 밴드라고 생각하며 가입했던 내게 아이의 학교는 다르게 다가왔다. 입학식을 각 교실에서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시청했던 동영상을 밴드를 통해 학부모들도 공유할 수 있었다. 영상은 학교 풍경과 교장선생님의 인사말로 시작되었고 1학년 담임선생님들의 소개로 이어졌다. 소개 영상을 보던 나는 아이들의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날이 떠올랐다.


2015년 3월 2일, 강당에서 입학식을 마치고 아이들은 교실로 이동해 각자 자리에 앉아있었다. 학부모들은 교실 뒤쪽에 서서 아이들과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선생님은 교실에 있던 TV에 <년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세요>란 동요를 틀어주었고 전주가 시작되자 아이들의 관심은 TV로 쏠렸다. 노래가 시작되자 선생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졌기에 그 순간의 선생님의 부끄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재밌는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학생들 앞에서는 얼마든지 오버액션을 취해가며 망가질 수 있다. 하지만 학부모가 같이 있는 수업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그 순간 떨리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혼자서 하기에 쑥스러움이 묻어난 율동, 동시에 아이 한 명 한 명과 이루어진 눈 맞춤. 이 삼박자를 지켜보던 나는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완전히 씻어낼 수 있었다.


6년 뒤, 2021년 3월 타임머신을 탄 듯 나는 같은 경험을 했다. 영상 속의 1학년 선생님들은 마스크를 썼지만 커다란 손동작, 한 톤 높인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고 교실을 안내해주었다. 나는 또다시 중학생 학부모가 되었다는 우려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원격수업과 등교 수업을 번갈아 하며 어느덧 5월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체육대회를 못하니 대신 '학년의 날'이란 행사를 한다고 알려왔다. 각 학년이 하루씩 번갈아가며 학교 건물을 통째로 사용할 수 있도록 등교일을 조정하고, 각 교실마다 부스를 만들어 학생들이 이동하며 이루어지는 행사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이 행사는 아이들 스스로 기획했다. 행사명, 부스에 대한 아이디어 모두 학생자치회 학생들이 토요일에 모여 회의하고 전교생에서 투표해서 결정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다.


각 학년의 '학년의 날'마다 내가 수업하는 학원에 오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반짝반짝했다. 코로나19를 겪은 첫해인 작년(2020년)에는 학교에서 아무런 행사도 하지 못했다. 한 해가 지나고 코로나19 2년 차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현명하게 성장했다. 그 전(코로나19가 없던 시절)에 체육대회를 한 날 학생들은 학원 수업에 대다수가 불참했다. 하지만 올해 '학년의 날' 행사를 마치고 온 학생들은 모두 학원 수업에 참여했고 저마다 자신들이 참가했던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입이 바빴다.


군산은 올해부터 모든 중학교 1학년이 자유 학년제를 실시했다. 코로나19로 자유 학년제가 제대로 실행될까 우려스러웠고 나는 차라리 제대로 교과수업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군산에는 청소년 자치 배움터 자몽(自夢)이 있다. 2017년에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청소년 100인을 대상으로, 2019년에는 <내가 군산시장, 전라북도교육감이라면?>을 주제로 청소년 200인 원탁토의가 이루어졌었다. 이렇게 청소년들은 의견을 모아 시장님과 교육감님을 찾아가 공간의 필요성을 어필했고 2020년에 군산 청소년들의 자치를 보장하는 공식적인 공간이 자몽(自夢)이 탄생했다.


아이들의 학교에서는 외부 강사의 강연, 여러 동아리 활동 외에 자몽센터에서의 체험도 같이 병행했다. 큰 아이는 플로리스트 선생님과의 수업에서 꽃 장식이라고만 생각했던 직업이 오프라인 외에도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으로 확장될 수 있다며 배운 내용을 핏대를 세워가며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작은 아이는 농업 체험을 했다. 농사는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노동으로 알고 있었는데 미래에는 기계를 사용해서 이루어지는 농업이 발달할 거라며 원래 가지고 있던 직업과 농사를 병행해야겠다며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기 위해서 과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 한 번의 체험으로 아이들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직업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앞으로의 직업이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로는 충분했다.


이제 아이들은 1학기를 마무리하고 여름방학을 시작했다. 코로나 19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얻은 것도 있다. 여러 석학들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나 역시 '예전이 좋았는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느낀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할 수 없는 일들'에 매달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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