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환경을 소중히 여긴 여행
동네 병원에 잔여백신을 예약했고 2021년 6월 12일 토요일, 드디어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처음 접했을 땐 ‘내가 조심하면 되겠지’, ‘사람을 덜 만나고 외출을 자제하면 괜찮겠지’란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개개인의 노력, 기관의 노력, 국가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계속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태 백신과 행동 백신에 의존해 살아온 지난 1년 하고도 수개월의 시간 동안 내가 간절하게 바란 건 ‘백신’과 ‘치료제’이다. 드디어 간절하던 ‘백신’을 맞았다.
오전에 접종한 나는 오후에 강물이의 독서모임을 위해 한길문고에 왔다. 아이가 독서모임을 하는 시간 동안 나는 반드시 한길문고에서 구입해 읽어야 하는 책을 구할 수 있었다.
배지영 작가의 <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 파란색 표지를 넘겨 책 읽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마음속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전에도 한 달 살기에 관한 책이나 기사들을 여러 번 접했다. 같은 주제인데도 이날 내 마음속은 그때와 달랐다.
코로나19가 지배하는 내 삶은 구석구석 자유를 잃었었나 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타 지역에서 한 달 살기를 하던 그들의 삶이 뼈에 사무치게 부러웠다. 괜히 마음만 싱숭생숭해지고 책을 덮었다.
그날 이른 저녁부터 백신이 그 위력을 발휘했다. 감기가 시작될 때 감지되던 느낌이 시작이었다. 약을 먹었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통증에 새벽에 잠에서 깬 나는 다시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지만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몸은 아프지만 생각은 멀쩡한 새벽, 내 머릿속은 낮에 읽었던 책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책 속에 내 마음이 봉인된 것처럼 직장, 아이들 학교 등등을 배제하고 한 달 살기 계획이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열에 취해 잠들고 깨어나면 약을 먹고 또다시 한 달 살기 계획을 마저 세웠다. 코로나로 생긴 제약이 만들어낸 백신 부작용인지 가능하지도 않은 생각을 계속해서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건 나답지 않았다.
그러다 해답을 찾았다.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 열과 근육통이 사라져 갈 무렵 혼자서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아마도 그 순간에는 부피 공식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보다 내가 더 기뻤을 거라고 자신한다.
1월에 다녀온 거제도 여행에도 돌아오는 길에 가족들에게 했던 질문이 바로 그 해답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전국을 쭉 돌아보기로 했던 계획, 그 계획을 구체화시키기로 했다. 아직은 한 달 살기가 불가능한 현실, 안 되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지금 할 수 있는 것 찾기, 내가 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쭉 돌아보면서 한 달 살기 하고 싶은 지역을 찾아보는 재미도 더 할 수 있다. 여러모로 현명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며 몸도 마음도 나아졌다.
최민석 작가에게서 배운 여행 방법, 아마도 그는 책에 나온 것 말고 세세하게 준비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책에 나온 만큼만 배우기로 했다. 간결한 여행 준비는 기대치를 낮춰주고 만족감을 선사한다.
남편과 숙박할 도시를 고르고 숙소를 예약했다. 여행 준비는 그게 끝이었다. 코로나 19를 의식해 맛집 검색은 배제했다. 여벌 옷, 컵라면, 즉석밥, 볶은 김치, 텀블러는 식구 수대로. 여행 준비 끝이다.
드디어 여행 날이 되었고 우리는 컵라면과 김밥을 가지고 출발했다. 이번 여행에서 식도락은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여러 지역을 다니니 그 지역의 맛 집을 다녀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바이러스가 무서운 마음이 더 컸다. 그늘진 휴게소 주차장에서 먹는 컵라면과 김밥은 여행 중이라는 마음속 즐거움이 더해져서 만족감이 극대화되었다.
강화도, 평창, 동해, 강릉, 포항, 경주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실내전시관, 박물관 등은 단 한 군데도 들어가지 못했다. 코로나19로 격상된 단계에서는 모두 휴관이었다. 단 한 군데 통일전망대는 너무도 아쉬웠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실외 전망대에서 우리는 북한을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관람, 체험, 시원한 카페는 단 한 곳도 가보지 못했지만 우리 가족은 아주 귀중한 경험을 했다. 파란 하늘, 푸른 산, 널찍한 들판,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긴 시간 동안 자연을 잊고 있었다. 여행이라 함은 그 지역의 맛 집과 핫 플레이스 방문, 인증사진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당연히 이런 여행이 좋았고 불타는 사춘기(중학교 1학년 아들이 스스로를 이렇게 칭한다)의 아이들도 시원한 동해바다에 발을 담그며 서해, 남해 바다와 다른 점을 이야기했다.
예보와 달리 올해(2021년) 여름 장마가 일찍 끝나버려 여행 내내 날씨는 엄청나게 더웠다. 몇 달 만에 떠난 여행, 그 소중함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는 일상, 우리 가족은 모두 더위를 이겨냈다. 그러자 아름다운 자연이 눈에 들어왔고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음이 새삼 소중해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차 속에서 보낸 이번 여행은 전국일주라기 보단 전국 드라이브에 더 가까웠지만 뒷자리에 있던 마이산의 말에서 이번 여행의 만족도가 느껴졌다.
마이산 : 엄마, 다음번에는 X자로 여행을 해보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