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감정: 오만] 묘비명을 적으며

by 세실리아




소년 시절에는 반항만 하고 살았습니다.
주변 사람과 진실로 마음을 나누지 못했고
청년 시절에는 늘 나 자신만 알고 살아서
대하기 어려운 거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실천하려고 노력했으나
너무나 빠르게 노인이 되었고
행동은 오히려
더 가볍고 변덕스러워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묘비에 새겨질 말입니다.
인간의 본모습은 대부분 이렇습니다.
인간이란 어찌 이렇게 아는 것은 빠르면서
실행하는 것은 느릴까요.

출처:괴테, '묘비명(墓碑銘)' 中





올 초 3월부터 시작해 매 주 토요일마다
성당에서 하고 있는 아이의 첫영성체 부모교육.
아이의 신앙생활과 함께
부모의 신앙생활을 함께 점검하고 바라보는 시간.

그리고 갑작스레 묘비명의 문구를
적어보게 된 그 날.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감정들이,
처음 느껴보는 깊고 묵직한 감정들이
마음을 가득 채웠었다.

그리고 오늘, 괴테의 시를 마주하며,
그 날 적었던 묘비명의 문구를 다시 찾아본다.
그리고 묘비명에 새겼으면 하고 적었던 그 문장을
소리내어 읽다가 울컥하는 마음을 바라본다.
그 마음을 바라보다,
아직 마음에서 다 거두어내지 못한
오만함을 바라보게 된다.
아직도
감히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되기를 바라고,
감히 소중한 사람들이 내 말대로 따르길 바라며
내 영역이 아닌 곳을 자꾸만 내가 주도하려하는
그 오만한 마음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묘비명 앞에 앉아
죽음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쉽사리 거두지 못하는 오만한 내 마음을
바라보고 바라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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