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IMF 발발 직후라서 국가직 공무원들이 일 년에 두 번 받았던 정규 보너스가
나오지 않던 해에 대구의 폭염 속에서 셋째를 낳았다.
애가 셋이라고 하면 어떤 의미로 접근해서 "능력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셋째 수민이를 낳고
우리 부부는 능력자가 되었다.
아기였을 때부터 큰 아이 승범이는 성격이 까칠했던 아기여서 남편과 나는 생애 첫 육아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남편이 새벽 육아 담당,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내가 밤 중 육아 담당
군대처럼 불침번을 서고 키웠다.
덕분에 큰 아이 키울 때는 몸무게 숫자 두 자리 중 한 번도 못 찍어봤던 연예인 몸무게 48Kg
인생 몸무게를 가져봤었다.
고맙다! 유승범
그랬던 큰 아이를 키우고 나니 한 성격 했던 둘째도 큰 애만큼은 까칠하진 않아서 밤에 잠은 자게 했으니
키울만했고 셋째는 낮이건 밤이건 애가 죽은 듯이 잠만 자서 엄마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자
아기 숨소리도 들어보고 흔들어 깨워도 보고!!
그럼 셋째는 그냥 웃었다. 빙그레
성격 까칠했던 첫 째 승범이를 산신령님이 안고 나타나서 "이 자식이 네 자식이냐?" 묻자
내가 "네 제 자식 맞습니다" 하자
이번에는 아기였지만 만만치 않았던 둘째 은진이를 안고 나타나서 "그럼 이 아이도 네 아이냐?"물어서
"네 얼굴은 저를 하나도 닮지 않고 지 애비 닮았지만 그 아이도 제 자식 맞습니다" 대답했더니
하늘에서 내려준 순둥이를 안고 나타나서 "정직한 너에게 이 순둥이를 선물로 주겠다"
낮에도 순둥, 밤에도 순둥
우리 집 셋째 수민이다.
경기체육중학교와 경기체육고등학교 졸업 후 구미에 있는 경운대학교 4년 체육 특기장학생으로 입학을 했다.
무슨 배짱으로 그랬는지 셋째도 처음에는 첼로를 배우게 했다.
첫째와 둘째는 악기를 배우게 했을 때 뛰어난 영재성까지는 아니래도 선생님이 보기에도 내가 보기에도
재능 비슷한 게 있었는데 셋째는 첼로를 2년쯤 배웠는데도 소리가 영 나아지지가 않았다.
자기가 봐도 영 아니다 싶을 때 보통의 부모래도 묻게 되어있다.
(조심스럽게) "선생님 얘가 좀 하나요?"
"네 어머니 잘해요"
"네 잘해요"
선생님이 저렇게 대답을 했을 때 부모야 말로 잘 생각해볼 일이다.
여기서 잘한다는 뜻은 싫다고 하지 않고 그냥 한다는 뜻이므로 Well로 해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생님의 "잘"은 "그냥 그냥"으로 해석하면 딱 맞다.
첼로 2년에 가성비 있는 소리가 나지 않길래 셋째의 악기 교육은 과감히 접어 버렸다.
위로 오빠 언니가 악기 연주를 하는 걸 보고 자랐으니 욕심이야 있었겠지만 어디로 보나 운동신경이
음악적인 재능보다는 더 나은 아이였다.
그걸 잘 지켜보고 과감한 결정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다.
수민이는 스트레스에 취약해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틱 증상"이 생기곤 했었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끅끅 소리를 규칙적으로 내기도 하고 눈을 깜빡거리기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되었던 틱은 4학년 때까지 계속되어서 남편이 수민이와 함께
해맑은 소아 청소년과 에 가서 상담을 받고 오기도 했었다.
그냥 결론은 이 아이는 스트레스받지 않게 키우기
그게 부모가 해야 할 일이었다.
4학년짜리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습지고 뭐고 할 게 아무것도 없어서
(공부야 말로 가장 큰 스트레스 - 절대 시킬 수 없다)
친구가 다닌 다는 발레 학원에 재미로 다니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가 다니고 있던 곳이라 수민이도 재미를 붙이고 나름 열심히 하길래 얘가 무용에는
재능이 있나 싶어 살짝 무용의 세계를 알아봤더니 발레 콩쿠르를 나가기 위해서는 작품비가 2010년 수원의
우리 동네 작은 학원에서 500만 원이라고 했다.
원장은 자꾸만 콩쿠르를 나가보라고 권유를 하고,그냥 취미로 시작했던 발레도 원장이 자꾸만 권유를 하면
부모는 살짝 아니 많이 흔들리기도 한다.
자식일에는 정확한 눈과 귀와 입을 갖기 어렵다.
돈 500만 원이 집에 굴러다니고 있었다면 한 번쯤 우리 수민이도 발레 콩쿠르에 나가 보았으려나!
그러기에는 이미 오빠 언니가 돈 쓰는 귀신들이 되어 있었고 유연성 강화를 위해서 늘 다리 찢기를 해야 되는데
다리 찢기만 했다 하면 너무 아파서 눈물 범벅이 되어서 집에 돌아오길래 발레도 아니다 싶어서 그만뒀다.
수민이가 어떤 걸 했으면 좋겠나 싶을 때 경기체육중학교 신입생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정해진 전공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저기 시험을 한 번 봐야겠다
몸은 말랐어도 워낙 체력이 좋고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여서 괜찮겠다 싶었다.
체대 입시학원에 한 두 달 보냈다가 경기체육중학교 입시를 치렀는데 지원자가 많지 않았고 성적도 나쁘지 않아
합격할 수 있었다.
바로 위의 둘째가 다녔던 계원 예중은 2011년에 1년 기준 600만 원 정도였는데 연년생 셋째가 2012년에
입학했던 경기 체육중학교는 입학금과 수업료 모두 경기도 지원이었다.
기숙사비도 무료 급식비도 무료 교복도 무료 학교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 경기도 부담이라 학부모 부담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정규 수업도 충실하게 마친 다음에 오후 운동을 시키니 아이들이 학교 생활도 열심히 했고 성실한 학생들을
선정해서 수원시 체육회에서 지급하는 장학금도 일 년 단위로 지급을 해서
우리 수민이는 체육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경기 체고 다니는 동안 3년 동안 한 달에 20만 원씩 장학금도 받았다.
하지만 운동이 워낙 견디기 힘들 만큼 쉽지 않은 선택이라서 중간에 일반 학교로 전학을 가거나 운동을
그만두는 아이들이 많았다.
수민이는 뛰어나게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힘들다고 하면서도 본인의 할당 운동량은 울면서도 해내는
근성이 있었다.
운동을 하면서는 틱 증상도 완전히 고쳐졌고 새벽 운동부터 방과 후 운동까지 해내면서 근성도 길러져서
집에서나 세 아이중 막내지 학교에서는 의젓하기가 나만 알기 섭섭할 정도였다.
육상 200m, 400m, 1,600m 계주의 주자로 자기 자리를 찾아 중학교 때부터 시합에 나가
조금씩 조금씩 자기 실력을 끌어올렸다.
중학교 1학년 때 잘하던 친구들은 3학년때쯤 그만두거나 다치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 잘해서 좋은 대학교에
콜을 받은 아이들은 대학교 들어가서 그만 두기도 하는 걸 많이 봤기 때문에 운동은 부상 없이 끝까지 하는 아이들이 이기는 거다.
다행히 처음부터 너무 잘하는 편에 속하지 않았던 우리 수민이는 서서히 자기 실력을 끌어올려 부상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나가는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당연히 좋은 대학교에서 콜을 받게 되지만
결정적인 시합에서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구미로 대학을 가게 된 우리 셋째
처음에는 너무 멀고 자기가 원하는 대학교가 아니어서 자존감도 떨어진다고 했지만
우리 가족 중에서 누가 4년 장학생을 해 봤겠어
우리 수민이가 처음이지
전국 체전 트랙 위에서 출발 대기 중
내 심장도 터질 것 같은 순간이다.

친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운동하다 그만 두는 걸 6년동안 봤으면서도 자기 트랙을 아직도 달리고 있다.
셋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