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할아버지의 재력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교육에 있어서 세 가지 환상의 트리플 조합

하지만 우리 집 "할아버지의 재력 없음"


2018년 4월 2일 오사카행 에어 서울 오전 비행기를 탔을 때 나는 탑승이 가장 늦었던 마지막 승객이었다.

이미 탑승 수속이 끝난 에어 서울 창구의 담당 직원이 탑승시간에 한 참 늦은 나에게 교통약자 패스를 주면서

빨리 뛰어서 게이트로 가라고 했고 "이제 정말 마감이야"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탑승 시간에 완전히 늦은 승객들에게 하는 안내 방송까지는 듣지 않고 겨우 비행기에 타기는 했지만 비행기에 타자마자 시아버지의 전화가 걸려 왔었다. 귀가 어두워지신 시어머니를 대신해서 시아버지가 하신 전화였다.


(큰 며느리는 이미 비행기에 탔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아버지 목소리) "너 정말 일본 가냐?"

일주일쯤 가는 걸로 전화하신 것도 아니고 일 년이니 전화하신 마음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솔직히 짜증이 확 났다.

(비행기에 타서 출발이 임박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싶은 마음) "네 아버님 지금 비행기 탔어요"

아마 목소리가 퉁명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는 시아버지 목소리) "왜 가? 갔다 와서 취직하려고?"

이미 시아버지 목소리도 상냥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때마침 들려오는 이륙한다는 안내방송 고맙다 에어 서울) "아버님 저 지금 비행기 안이라서 전화 끊을게요"

살면서 시아버지 전화 일방적으로 그렇게 끊어본 것도 그때가 처음 아니었을까 싶다.


며느리가 만 나이 오십에 (시아버지는 그때 내 나이가 오십이라는 것도 모르셨을 거다) 왜 일본에 가는지

금쪽같은 당신 아들 떼어놓고 손자들 버려두고 혼자서 간다는데 쟤가 왜 저러는지 내가 비행기 타는 날까지도

확실한 이유를 모르셨기 때문에 사실은 따지느라 전화를 하셨던 것이다.


시아버지로서는 당신 아들을 놓고 일 년씩이나 일본에 가겠다는 매몰찬 며느리 이상한 며느리가 바로 나였지만

나야말로 금쪽같은 내 새끼들 떼어놓고 가느라 지금 시아버지 아들 걱정할 때가 아니었건만

누구나 자기 자식이 먼저 인 법! 천만번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시아버지한테는 며느리의 부재로 마음에 걸리는 자식이 당신 아들 한 명이라면

나한테는 맘에 걸리는 내 자식이 셋

누가 봐도 나의 승리다.


"아버님 제가 요 그동안 아이들 렛슨비 대느라 정말 힘들게 일했거든요, 그래서 이제 겨우 세 놈 모두

대학생 되었으니 저도 적어도 일 년은 안식년을 갖고 싶어요. 안 그러면 저 우울증 걸릴지도 몰라요"

시아버지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딱 저 두 줄로 끝날 수 있을 정도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남편은 그냥 평범한 공무원

그렇다고 남편이 아주 능력 없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큰 아이 바이올린 렛슨비와 둘째의 예중부터

예고 수업료, 렛슨비 부담이 정말 평범한 집안에서 감당해내기에는 짐이 무거웠다.

일반 공립학교는 공무원 급여에서 수업료를 부담해주지만 둘째가 다녔던 사립 예중과 예고의 학비는 예외여서 분기에 120만 원 정도 나오던 학비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다.


둘째의 경우에는

대충 일 년 학비가 600만 원, 예중, 예고 6년을 했으니 학비만 3600만 원 정도 (정확한 금액은 아님)

렛슨비는 일주일에 15만 원선으로 한 달이면 4번- 6번을 다녔으니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6년 동안 6천4백8십만 원 (물론 이 금액도 정확한 수치는 아니고 아이가 다녔던 평균 레슨 회수로 산출했다)

콩쿠르며 실기시험 반주 레슨비 1년 평균 적게 잡아 30번, 6년 동안 평균 1,000만 원대에서 1,500만 원

예중, 예고 6년을 거치는 동안 1억 2천만 원 정도 계산이 나온다.


큰 아이의 경우에는 일반중학교와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학비 부담은 없었고

레슨비가 1회 10만 원 기준으로 한 달에 6번 일 년이면 720만 원 6년 동안 4,500-5,000

콩쿠르 반주 레슨비, 협연 비, 연습실 사용료 등 부대 비용 6년 동안 1000만 원 선

(일반계열이었기 때문에 예고의 반 정도)

두 아이의 6년 동안 교육비로 거의 2억 정도 들었나 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집 평균 비용을 산출한 것이고 개인의 사정에 따라 훨씬 덜 들 수도

아니면 훨씬 더 들 수도 있는 금액이다.

그리고 위 금액은 두 아이 모두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들었던 비용만을 산출한 것이고

둘째가 재수했던 약 10개월의 비용과 초등학교 때 취미로 배울 때 들었던 레슨비는 제외시킨 금액이다.

재수했을 때의 비용과 초등학교 때 취미로 배웠던 비용까지는 차마 징그러워서 게산해보고 싶지도 않다.

그럼 당신은 그걸 알고도 선택했고 누가 등 떠밀어서 아이들 음악 시킨 것도 아닌데 어디다 대고

"지금 힘들었다고 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저 부모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게 해 준 것뿐이다.


둘째가 고3이 되었을 때 이제 일 년만 더 고생하면 이것도 끝이다 싶어서 오히려 고3이 되었을 때

만세를 불렀더니 덜커덕 일 년 재수를 했다.

연년생 둘째와 셋째

나란히 재수생과 고3으로 입시생 부자 왕관 레벨 달고 나서 일 년을 보낼 때 일하느라 낮에는 웃어야 되고

밤에는 울고 새벽이면 우울하고 얼굴 반반 표정이 다른 아수라백작처럼 살았다.


내 나이도 오십인데, 남편이 다녀와도 좋다고 했는데

시부모님 허락받고 안 받고는 중요하지 않은 짬밥이 되긴 했으므로 시댁에는 통보 수준으로 말씀만 드렸고

설령 설득하고 가야 되는 집안이었어도 설득할 시간에 남편에게 요리 하나 더 가르치는 게 낫고 아들에게

집안일 한 개라도 더 가르치는 편이 남는 장사지만 만일 내가 시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아서 아이들

교육을 시켰어도 당당하게 통보만 하고 떠날 수 있었을까?


만약 재력이 좋은 할아버지여서 내가 시댁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아이들 교육을 시켰더라면

그렇게 당당하게 "아버님 저 잠깐 떠나요"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둘째가 계원예고를 다녔던 2014년 3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나는 둘째 아이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엄마 내 친구 ㅇㅇ이는 할아버지가 아주 부자래.ㅇㅇ이네가 잘 사는 건 할아버지가 잘 살아서래,

그래서 ㅇㅇ이네 엄마는 그렇게 친할아버지 친할머니한테 잘한대"

샤넬 점보 백을 들고 학교에 오던 그 아이 엄마의 백이 시아버지의 재력에서 비롯된 것이었구나!


부자들은 왜 그렇게 다 갖추었는지,ㅇㅇ이네 엄마는 얼굴도 예뻤고 백도 좋은걸 들었고

게다가 가끔 보긴 했지만 사람이 공손하고 나한테도 나긋나긋하게 언니 언니 하면서 다정해서

어디 하나 험담할 곳이 없었던 ㅇㅇ이네 엄마가 시댁까지 부자라서 ㅇㅇ이 렛슨비는

할아버지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고 ㅇㅇ이네 동생들 유학비도 아마도 할아버지 돈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둘째의 짐작만으로 건네 들었을 때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 뵈는 ㅇㅇ이네 엄마!!


나는 그 엄마가 들고 다니던 샤넬 점보 백은 하나도 부럽지 않았지만 레슨비가 할아버지 재력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부러웠다.

어차피 내 자식은 나의 몫이니 부러움은 잠시, 그냥 내가 벌어 내 힘으로 가르친다!! 아자 아자


할아버지의 없는 돈 덕분으로 우리는 우리 부부가 열심히 벌어서 가르쳤다.


예고 다닌 다고 할아버지 돈으로 아이들 레슨 비대는 집은 거의 없다. 내 주변 엄마들만 봐도 모두

개미처럼 일해서 연습 실비도 내고 학비도 내고 레슨비도 조달하고 평범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1년 동안의 공부를 위해서 칸사이행 비행기에 탔을 때는 오히려 "할아버지의 재력 없음"이 감사했고

팔십이 넘으셨지만 두 분 모두 건강하시다는 게 내 발목 잡지 않는 중요한 요인임을 알았다.


"할아버지의 재력 없음"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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