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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지난 주, 교토의 히라이 선생으로부터 라인이 왔다.

7월 7일은 타나바타라고 하는 칠월칠석날로 우리가 아는 전설의 까치 대가리가 벗겨지는 바로 그 날이다.

라인의 내용은 이렇다. 오늘은 7월 7일 칠석날로 매일 교실에 오늘의 말이라는 걸 쓰고 있는데 오늘은 '까치의 다리'라는 말로 했습니다. 칠석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까치가 하늘에 다리를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까치라는 새는 17세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반입된 것 같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강제기라고 하던 것이 까치가 되었다고 합니다. 까치에 그런 역사가 있었다니!!

까치가 일본과 한국에 다리를 만들어 준다면 바로 한국에 갈 수 있을텐데....


이런 내용이었다.

나도 몰랐다. 경상도 사투리로 '깐채이'가 '까치'가 되었다니, 진짜인가 싶어 찾아 봤더니 맞나보다.

까치의 경상도 사투리는 '깐채이'였고 '까치'의 경상도 사투리'깐채이'가 일본으로 들어가서

かささぎ [鵲] '카사사기'라는 일본 단어로 만들어진 것 같다.


일본 까치의 조상은 경상도 까치인가 봅니다.


여름에 올 예정인 히라이 선생은 벌써부터 오고 싶은 모양이다. 처음에는 나의 회화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로 만나서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친구란 새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내가 손절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가지가 뻗어가는 것 같다.

이제 쉰이 넘어보니 새로 생기는 친구는 없고 사라지는 친구만 있을 뿐이라 있는 사람이 소중하지만 옆에 있을 때는 소중한지, 좋은 건지 모르고 덤덤하게 지내다가 존재가 사라지고 나면 슬프고 아쉬운 게 친구다.


재작년 이렇게 더울 때, 친구인듯 아닌 듯 그런 사이로 지내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남편 직장의 선배 부인이었지만 나와 나이가 같아서 친구처럼 지냈고 아이도 비슷하게 낳아 길렀기 때문에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통화를 해도 어색하지는 않았던 사이, 딱 그 정도 사이였는데 어느날 남편을 통해서 'ㅇㅇ엄마가 암이래' 라는 말을 듣고 놀랐지만 문병 한 번 못 가고 장례식장에서 웃고 있던 사진으로 다시 만났다.

급했던 성격답게 죽음으로 가는 시간이 참으로 빨랐다.


친정이 섬이었던 그녀로부터 햇김을 몇 번 얻어 먹었었다. 우리가 사먹었던 가공된 맛이 아니었던 바다에서 직거래로 집까지 보내 진 맛의 김이었다. 신문지로 싼 김을 건네주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섬에서는 서 너살만 돼도 김말리는 일을 해' 

김 한장도 허투로 먹을 수 없던 말이었지만, 그녀가 준 김은 가벼이 먹기에는 슈퍼에서 쉽게 샀던 김 맛이 아니었다. 

발인까지 다녀 온 장례식은 영혼이 탈곡되는 느낌이었다. 우리집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그 집의 아이들이 서로 끌어안고 무너지는 걸 보는 것도 힘들었고 끊임없이 들어오는 죽음의 행렬을 산 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집에 까지 와서도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서 무작정 간 곳이 담양이었다.

집에 있기가 힘들어서 그냥 훅 떠났던 여행이었다. 왜 담양이었는지는 모르겠고 아마도 기어이 따지자면 교토 아라시야마의 대나무 숲같은 곳을 찾아서 간 것이지 싶다.


그게 이 년 전이었고 정말 욕나오게 덥던 남도의 여름이었지만 죽녹원의 대나무 숲은 서늘했다.

산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만 우리에게 일 년, 이 년이라는 시간의 셈법이 죽은 사람에게는 일 주기, 이 주기로 달라진다는게 차이일 뿐, 이 년 전 담양 대나무 숲이나 올 해 다녀 온 대나무 숲은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다만 나는 달라져있었다. 그 때는 직장이 없었고 지금은 직장이 있다는 점과 그때는 염색을 하지 않았던 흰머리였고 지금은 착실하게 염색을 하는 사회에 순응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메타세콰이어 길을 맨 발로 걸었다. 마사토의 거칠고 아픈 길도 지나고 진흙이 몽글게 뭉쳐져 있는 기분 좋은 흙 길을 지나며 맨발걷기를 끝냈다. 

이년전에는 자전거를 빌려서 달리던 길이었는데 올 해는 맨발로 걸어봤는데 발바닥에 닿는 시원한 마사토의 느낌이 그런대로 좋았다. 따끔거리는 마사토 길을 지나면 몽글거리는 진흙길도 나와 길바닥에도 종류가 다름을 맨 발로 느끼면서 일키로쯤의 길을 맨발로 걸었다.

자유로왔다. 


이 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아들은 올 해 결혼을 했고 그녀의 남편은 퇴직을 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시댁의 빈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우리가 젊었을 때 그녀와 나는 만나기만 하면 누가누가 시댁 흉을 더 잘보나 대회를 열 정도로 힘들었던 시댁 흉을 봤었다.

대회가 열릴 때마다 내가 백전백패였다. 시댁에서 시할머니까지 모시고 살았던 적도 있었으니 말해봐야 내가 질 게 뻔했던 대회였다. 그때만해도 우리들은 이렇게 나이를 먹을 줄 상상도 못했었고 죽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같았는데 평생 올 것 같지 않았던 남편들의 퇴직은 이렇게 현실이 되었고 더구나 그녀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던 그녀는 믿음대로 천국에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그녀는 꼭 천국에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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