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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재테크 ( 財テク) : 자이테쿠

재테크도 알고 보면 일본어다. 등교와 하교가 일본 문화에서 나온 완벽한 일본어인것처럼 재테크도 그렇다.


財テク(재테크)

‘財務テクノロジー(재무 테크놀로지)’의 줄임말로 재무 테크놀로지, 돈을 모으는 기술로 일본 버블경제 시기에 우리나라에 들어 온 일본 단어다.


우리말로는 재테크, 일본어로는 자이테꾸라고 읽는다.

뭐라고 읽어도 좋으니 돈 모으는 기술만 좋다면 내 수명의 몇 달이라도 팔고 싶었을 만큼 돈에 대해서 간절했던 때가 있었다. 애들한테 한여름 얼음 녹듯이 돈이 녹아 내릴 때, 돈이 종교처럼 절실했었다

빨간머리 앤 처럼 상상력을 발휘해서,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주고 다리를 얻었던 것 처럼 혹시라도 내 수명의 한 마디쯤 잘라서 누군가에게 팔고 아이들의 렛슨비를 벌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돈이 무서웠고, 절실했던 아이들의 예체능 악기 교육의 현실이 뻘같아서 자꾸만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것 처럼 한 발 한 발 떼어내기가 힘들었으나 돌아가기도 앞으로 나가기도 힘든 게 현실이었다.


세 아이들 중 둘을 악기를 시키는 동안 정신이 마른 논 바닥처럼 갈라졌었지싶다.

음악이 영혼을 채워주는 물 같은 거라면, 물을 퍼 올리는 두레박은 돈일 수 밖에 없는 음악 교육의 세계를 한 아이 당 6년 이상을 했으니 집에 돈이 말라갈수록 아이들의 음악은 영글었을지도 몰라도 내 영혼은 

가물어갔던 시절이었으니, 일요일에 성당을 나가는 신자였어도 평일의 종교는 돈이었다.




아무리 돈이 있어도 재능이 없으면 안되는 게 음악이긴 하지만 내가 시켜 본 결과 우리나라 음악은 돈이 없으면 찰진 소리를 낼 수 없는 얄팍한 구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막인 줄 모르고 들어섰던 곳을 중간에 쓰러지지 않고 무사히 건너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돈 잡아 먹는 귀신같았던 두 아이의 교육이 끝났을 때가 쉰 하나였고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로 일년 동안 공부하러 다녀온 곳이 교토였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자는 내가 천정까지 바뀐 낯선 곳에서 거의 일년동안 편한 잠을 못자면서 지낸 곳이 교토였지만 마음만은 편했던 이유는 세 아이 모두 대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둘째와 셋째가 같은 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아이들은 3월에, 나는 4월에 입학을 하러 교토로 떠날 때 진심으로 잘 다녀오라고 해줬던 남편의 배려심이 엔화보다 더 든든했기때문에 사는 데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는 있으나, 역시나 한국에서는 지갑에 '원'이 많으면 든든했고 교토에서는 '엔'이 많으면 하루가 따뜻했다.


매 월 말일, 아르바이트 급여가 들어 오는 날, 사거리에 있던 쿄토 중앙 상호 신용 금고에서 거래내역을 기장할 때 나는 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한 달 동안 빵집 노예처럼 일한 보람이 엔으로 들어오는 매월 말일은 등굣길에 편의점 커피말고 산조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들고 어학원에 가는 길이 행복 그 자체였었다. 엔으로 사는 행복 중에서 최고는 옷도 아니고 가방도 아닌 산조 스타벅스의 커피 한 잔이었으니 가성비가 좋은 사람이 내가 아닌가 싶다.


돈도 좀 가성비 좋게 모아가고 불려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큰 빚이 없음이 자랑일 뿐이다.

학자금 대출도 남아있으나 우리가 얼마간 갚고 남은 학자금은 당사자가 갚아야 된다며 자식에게 채무를 유예시켰다. 자기 공부였으니 그 정도의 채무감과 책임감 정도는 자식에게도 약이 되는 일일거라 생각해서 빚을 유산으로 주었다.

나는 어제 날짜로 자식들에게 대출 학자금을 물려주었고 친정 엄마에게서는 돈을 유산으로 받았다.

한사람에게 돌아 온 돈은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엄마는 딸 넷에게 4분의 1로 나눠줬으니 엄마에게는 현금 전 재산이었고 우리들은 4분의 1씩 받은 셈이다.



엄마는 우리를 키울 때 재테크로 계를 하셨다.

동네의 새마을 계를 짜서 엄마가 1번이자 곗돈 관리를 하는 계주였기 때문에 곗돈을 태워주는 날이 되면 우리집으로 곗돈을 들고 오는 아줌마들의 돈을 모아서 나를 옆에 앉혀놓고 계산을 시켰다.

늘 하는 말이지만 뼛속까지 문과형 인간이었던 내가 엄마의 곗날만큼은 이과형 인간처럼 앉아서 노트에 곗돈을 계산했지만 노트에 적어가면서 계산했던 나 보다 암산인 엄마의 계산이 정확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우리들을 가르쳐서 재수했던 막내 여동생까지 다섯을 모두 대학교를 졸업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재능이 아니라 엄마의 재테크 덕분이었다.


피같은 엄마의 곗돈을 떼먹고 도망간 아줌마들도 많았으나 내가 기억하는 한 사람은 태진이네 엄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오면서 삶은 꽃 게를 한소쿠리 가지고 와서 엄마에게 주면서 돈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계원이었던 그 아줌마가 우리집에 온 것은 돈 이야기였을테고 다른 사람과 순서를 바꿔서 곗돈을 태워 준 엄마를 배신하고 태진이네 엄마는 곗돈을 떼어먹고 날라버렸다.

계주로서의 수학적인 영민함은 있었을지도 모르나 사람보는 눈은 나보다 못했는지 엄마는 태진이 엄마의 음흉한 눈빛과 계략을 눈치채지 못하셨다.

나는 그 아줌마가 꽃게를 한 소쿠리 쪄와서 형님네 애들 많으니 이거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꽃게 소쿠리를 풀어놓고 산만하기 짝이 없던 아줌마 아들 태진이가 정신을 쏙 빼놓았을 때 부터 그 아줌마가 사고 칠 사람처럼 보였는데 엄마는 우리가 맛있게 꽃게를 쪽쪽 거리면서 먹는 거에 마음이 넘어갔는지, 아니면 그동안 쌓아 온 거래로 마음을 놓았는지 결국 태진이 아줌마는 자기 순서보다 먼저 계를 타고 그 길로 튀어버렸다.


남은 곗돈은 엄마가 대신 불입하고 마무리 지었으니 그날 우리가 쪽쪽 거리면서 속까지 빨아먹었던 꽃 게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금게였을 것이다.


곗돈을 들고 튄 계주는 뉴스에서 많이 봤으나 곗돈 떼어 먹은 계원은 뉴스에서 못 봤으니 우리 엄마야 말로

앞으로 남고 뒤로 손해를 보는 계주였을테지만 이상한 것은 그런 사람이 있었어도 이후로 엄마의 새마을 계는 남은 사람들로 쭉 이어지다가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아이들 교육이 어지간히 끝나갈 즈음 자진해산되었다.


결국 엄마들이 계를 하는 이유는 그릇을 사려고 가방을 사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식들 교육비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우리들을 가르치셨고 얼마 전에는 돈까지 주셨으니 언제 그렇게 돈을 모으셨나 이상할 정도다.

우리 모르게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했냐고 물었더니 안 쓰고 절약한 돈이라고 하셨다.


재테크에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쩌면 절약이 가장 큰 재테크이지 싶다.

재테크 수단이 아무리 좋더라도 절약을 따라갈 수가 없다.

엄마는 그걸 실천하셨고, 그렇게 모은 돈을 나눠 주셨기 때문에 재테크의 기본은 절약이라걸 보여 주셨다.


엄마 돈을 들고 튄 태진이 엄마는 잘 살고 있을까

그렇게 비싼 꽃 게를 먹어놓고도 우리 가족은 해마다 꽃 게가 가장 비쌀 때에 꽃 게를 안먹으면 한 해를 잘못보낸것같을만큼 꽃게를 좋아한다.

기억과 식성은 비례하지 않음이 증명 된 태진이 엄마의 꽃게 곗돈 먹튀 사건과 엄마의 재테크, 절약


어딘가에서 반성하시길 바라며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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