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モンスターペアレント (Monster Parent)

몬스터 페어런츠, 괴물 학부모

"몬스터 페어런츠" 일본에서 만들어진 괴물 학부모라는 단어다.

교사에게 촌지를 바치고 자식의 진학이 중요했던 학부모 세대들이 "치맛바람" 세대였다면 다음 세대가 "몬스터 학부모" 세대가 되는 흐름인 것이다.


나는 어떤 학부모였나. 세 아이 모두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언제쯤이 중간고사 기간이고 수행평가가 어떤 거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그게 뭐라고! 아이가 중간고사 볼 때면 한 시간 끝나고 나면 잘 봤을까 망쳤을까

혼자서 마음 졸이고 결과가 나오면 몇 점 차이로 내신이 갈리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학원에 보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었기 때문에 젊어지는 샘물을 열바가지 쯤 마시고라서도 학부모 시절로 돌아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단언코 "노"다.


학원에 보낼 돈으로 그때 삼성전자 주식으로 아이의 미래를 저축해줬을텐데 그때는 주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조차 못했고 그저 학원에 보내고 아이의 내신을 올려주는게 아이를 위하는 길인줄 아는 평범한 대한민국 엄마였던 것이 안타깝긴하다.


평범했기때문에 학교를 상대로 갑질을 하거나 몬스터 짓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어째서 나는 몬스터 학부모를 만나서 고생했었는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2009년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피융-----


2009년 돌봄교실의 방과후 보육강사로 취직을 해서 다녔었다.

지금은 보육강사라고 하지 않고 돌봄 전담사, 교육 공무직이라는 직종으로 분류되고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이 되었지만 그때는 학교에 가서 면접보고 1년 뒤에 재계약도 확신이 안되는 직종이었다.

그럼에도 돌봄교실에 보내야 되는 엄마들의 사정은 한집안에 한보따리씩이라 삼십명 가까운 아이들이 돌봄교실에 왔지만 제대로 된 교실 한 칸이 없이 복도의 한쪽을 파티션으로 막아놓고서 거기서 아이들을 돌보라고 하던 그 학교, 그래도 어찌나 학교에서 아들을 돌보는게 재미있던지 싱글벙글 웃고 다녔었다.


그런데 거기서 몬스터 엄마를 만날줄이야!!

정말 지금까지 만나봤던 온갖 엄마들중에 가장 빌런이었으며 그 분은 역대급이셨다.

금메달 드립니다. 땡땡이 어머니


복도를 파티션으로 막아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였던 열악한 돌봄교실에 사물함이 있을리가 없었다.

앉은뱅이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아이들은 놀이 할 공간조차 없어서 앉아서 책을 보거나 앉은 자리에서 레고 놀이를 하는 정도가 최선이었는데 어느날 빌런 엄마의 아들이 옷을 잃어버린것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물빠진 초록 점퍼, 누군가 일찍 집에 가는 아이가 비슷한 색깔의 그 옷을 입고 가버렸고 남은 옷은 희안하게 한 벌도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남은 옷이라도 있어야 "이게 누구 옷이야" 하고 다음 날 물어보고 서로 바뀐 걸 아는 데 자기 옷인지 남의 옷인지 구별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누가 어제 초록색 윗 옷 입고 갔지?" 라고 물어본들 "저요" 할 아이도 없었고 남자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힘든 일이었다.

방법이 있다면 엄마들이 우리 아이가 옷을 바꿔입고 왔어요. 라고 말해줘야 되는데 집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엄마라면 가능한 일이나 직장에서 돌아와 밥 차리기 바쁜 엄마들에게 그건 힘든 일이었으니

나의 고난은 초록색 점퍼로 시작되었다.


(출근 전 오전 이른 시간) 

빌런 모친 "우리 애 옷 찾아내세요"

나 "글쎄 어느 아이가 잘못 입고 갔는지 아직 못 찾았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시면 알아볼게요"

빌런 모친 "당장 찾아내세요"

즐거운 직장을 그놈의 초록 점퍼때문에 그만 두고 싶었다.

옷 찾아내라고 나한테 전화하다가 교무실로 전화하더니 나중에는 행정실로 전화해서 돌봄선생이 애들을 안보고 교실에 드러누워있다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그래도 그집 아들을 돌보는 사람이고 학교에서 월급을 받고 있으니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명품 윗옷도 아니었고 물이 빠져 낡아보였던 그 점퍼를 찾아내지 못한 중대한 죄로 나는 출근 전 전화로 시달림을 받고, 직장을 그만 두고 싶었다.

신호등이 초록색이 것도 싫었던 잠깐의 시간들이 바로 그 분 때문이다.

옷은 나오지 않고 시달리다못해 내가 한 벌 사드리면 안되겠냐고 말했으나 그 분은 집요하게 "안돼요. 반드시 찾아서 가져오세요" 소리를 했었다. 무슨 여고괴담이냐, 아니다 학교괴담 몬스터 엄마괴담이다.

끔찍했던 그 소리와 목소리 얼굴, 아직도 기억난다. 


결국 옷은 찾았다. 옷 때문에 시달리는 것을 알게 된 어느 선생님이 학교 전체 메신저에 "초록색 점퍼를 찾는다"는 알림을 띄웠고 1학년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옷을 찾아주셨다.

결국 잘못 바꿔입고 간 아이가 나타나서 옷을 돌려받았고 일주일 정도되는 날들이 내게는 지옥의 불구덩이같았다.


만 4년을 채우고 그만둔 돌봄교실이었다.

애증의 장소였던 돌봄교실을 그만둔지 십년 넘어서 다시 들어와 다닌지 이제 일년 육개월되었다.

여전히 민원은 존재한다는 학교다.


서이초 교사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안타까웠지만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몬스터 학부모들이 그만큼 많고 그 동네의 몬스터들은 더했을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는 이 소리를 싫어한다.

아버지 돌아가신 새벽, 일하는 곳으로 부고를 알렸더니 곧바로 답문자로 날아온 답장이 바로 명복을 빈다는 말이었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 아버지의 부고를 타인에게서 확인받는 느낌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고인이라니, 아직 아버지 얼굴도 못뵀는데

이후로 나는 습관적으로 보내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문구는 절대로 올리지않는다.


하지만 서이초 선생님에게는 드리고 싶다.

"선생님의 마음을 알고 위로를 드립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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