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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잼버리, 우리 엄마

여든이 안된 엄마가 요즘 알바를 하러 다니셨다.

잼버리대회가 열리는 새만금 갯벌로 5일 정도 청소를 하러 다니셨다는데 세상에 그런 꿀같은 알바가 없었다면서 며칠 더 하지 못하는게 속상하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렇게 편한덴줄 알았더라면 진작 간다고 했을텐데 이틀을 안 간다고 한 게 그렇게 속이 상하더라"

"엄마, 그 돈 벌어서 뭐하려고, 5일이라도 벌었으면 된거잖아"

"그러게 말이다. 잼버리 애들 철수해서 아쉽더라. 그런데 안되긴했더라. 모기를 얼마나 뜯겼는지 부었더라고"

"흑인 애들은 그나마 모기 뜯긴게 보이지도 않아서 마음이 덜 아픈데 백인 애들은 너무 안쓰럽더라고"


안쓰러운 마음에서 나오는 엄마의 진심도 잘못 들으면 인종 차별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엄마는 진심으로 그 애들이 안스럽다면서 가서 돈은 벌었지만 어떻게 그런 곳에서 텐트치고 애들을 오라고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생각이 없는 것들 아니냐고 야당의 핵심 인사 같은 말들을 전화로 내게 마구 퍼부었다.


"엄마, 나한테 화풀이 하지말고, 왜 그러셔. 대통령이 싼 똥 치우느라 고생했어"

"대통령이 그런 곳에서 볼일 보겠냐, 호텔에서 하겠지"

 "하하하, 엄마 그만 해" 


엄마의 잼버리 토크에서 미국 애들은 소송 건다고 했다더라, 텐트에 들어가려면 뻘이라서 기어서 들어간다. 

어느 인터넷 뉴스보다 빠르고 실감나는 정보를 듣게 됐다.


엄마의 결론은 한 줄이었다.

"세상에 이런 망신이 어딨냐 싶고 애들이 안됐더라. 잼버리 끝나면 몇 놈 날라갈것같더라"


후덜덜한 엄마의 결론은 앞으로 현실이 될 지, 없던 일이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일어나는 일은 있는데 책임지는 인간은 없는것이 우리나라 정치이니 태풍지나가듯 슬쩍 소멸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오늘 오고 있는 현실판 태풍은 북상 중이고 잼버리는 철수했다.


잼버리가 몰고 올 태풍이 있을 지 없을 지 과연 엄마 말이 맞을지 맞지 않을 지 누가 알 수 있을까

태풍하면 제주도 살 때 겪었던 2003년 매미와 2018년 교토에서의 태풍이 나에게는 인생 태풍이었다.

외부에서는 오래 된 나무를 뽑아 버리고 우리집에는 오랜 시간을 단수를 안겨준것이 매미 태풍이었고 혼자 살 던 교토에서는 정전을 안겨준 것이 태풍이었다.


다행히 집 근처에 있던 맥도날드는 영업을 하고 있어서 다시 동네에 불이 들어 올 때까지 햄버거를 먹으면서 다음날 학교 공부를 하던 최고의 임시 피난처였었지만 영업 시간이 길지 않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오래 된 상점가의 골목에서 관서전력차가 지나가는 걸 봤는 데 한 집 두 집 전등이 들어오는 걸 봤을 때. 해리포터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에게 태풍이란 단전과 단수 그리고 제주도와 교토로 기억되는 자연재해다.

일본의 낡은 주택가의 집들이 점점이 밝혀지던 영화같은 풍경을 골목 입구에서 바라보면서 잠시 행복해했었던가 싶다.


제주도에서 단수가 됐을 때는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가 하고 싶었다.

물을 콸콸 소리나게 틀어놓고 밀린 설거지를 뽀드득 뽀드득 소리나게 하고 싶었고 화장실도 세제를 잔뜩 풀어서 깨끗이 닦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일본 드라마중에 "わがや [我(が)家]" 우리집이라는 오래 된 드라마가 있다.

결혼하기 전의 딸이 자기 엄마에게 청소가 귀찮다고 하자 엄마가 말한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여자들이 가장 하고 싶은 집안 일은 청소란다."

나는 그 대사를 들으면서 깊이 공감했었다.


결핍이 있을 때 그전에 싫었던 일들이 하고 싶어지는 법이니, 세탁기 없이 살았던 교토생활에서 내가 다시 돌아가면 옥상에 빨래를 너는 일을 마음껏 하겠노라 다짐했지만 막상 지금은 옥상으로 빨래를 나르는 일은 남편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

결핍이 해소되고 나면 욕구도 사라지는 법, 옥상까지 빨래를 나르는 일이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고 2018년도에는 사무치게 그리웠던 일상이었을 뿐이다.


엄마는 잼버리에서 꿀 알바를 하고 돈을 벌었지만 (시급이 3만원이 넘었다니, 나보다 나은 우리 엄마-.-)

돈을 벌게 해 준 대한민국 욕을 나에게 실컷하고 대통령 욕도 덤으로 하고 잼버리 품평회를 하셨다.

끝도 안보이게 넓은 갯벌에서 돈 처바르고 할 짓이 못되더라는 깔끔한, 한 줄 노인 촌평은 한겨레 신문 한 컷 만화 처럼 통쾌한 구석이 있었다.

나중에 청문회하면 잼버리 할머니로 나가서 증언하는 거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며칠 동안 엄마는 거기서 느낀 게 많았던 모양이다.


"엄마, 잼버리 알바로 번 돈은 어디다 쓸거야?"

"고추 살란다"

단호한 우리 엄마, 어제 통화를 하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오늘 오는 태풍은 하나도 걱정이 안 될 만큼 

재미있었다.


태풍이 슬슬 지나가고 있다. 내일은 다시 덥겠지만 오늘은 그런대로 괜찮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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