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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밥상

운동하는 셋째는 휴가를 길게 쓸 수가 없다. 전국체전 끝나고 잠시 얻은 휴가에 셋째가 교토와 오사카 나라를 다녀왔다. 내가 있었던 2018년부터 2019년 일년 동안 당연한 거지만,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이 방문한 일본의 도시는 교토였다. 친정 엄마, 여동생, 남편, 딸, 아들, 지인들의 방문까지 모두 합쳐서 내가 있었던 일 년동안 열 두 번넘게 왔을 것이다. 일년이 열두번인데 말이지. 


쓰고 보니 인생을 참 잘살았었네. 끊임없이 찾아대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게 힘든 때도 있었지만 행복한 사람이었다 싶다.

인연이란 참 소중한거다. 

いちごいちえ [一期一会] : 다도에서 사용되던 단어로 일생에 단 한번뿐이 없는 소중한 인연, 인연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의미.


사람도 소중하지만 장소도 이치고이치에의 인연으로 인해 교토는 나에게 특별한 도시가 되었다.

지인이 사는 동네, 잠시 내가 살았던 동네, 교토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도시가 교토다.

그리고 나로인해 우리 아이들도 교토에 가면 들르는 곳이 있으니 그게 바로 내가 일했던 빵집 '보로니야'다.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보로니아의 빵집의 빵들은 매일 먹을 수 있을 땐 김치가 그리운 느끼한 맛이었지만 돌아와서는 그리운 맛이 되었다.

내가 했던 아르바이트는 빵을 비닐에 포장하는 작업과 포장지 안에 방습제를 넣거나 종류를 알 수 있는 씰을 부치는 일이었다. 

하마다상 찾아가봐. 가기 전에 프레스코 들러서 음료수라도 하나 사서 가. 알겠지.

셋째가 들고 간 음료수를 친절한 노리코 아줌마가 사진을 찍어서 라인으로 보내주었다.

 점심 시간에 가서 쉬던 작은 휴게실에서 음료수를 나눠 마시면서 내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한카이상, 후지모토 상, 하다마상 보로니야 3인방은 아직도 건강하게 일하고 있다. 

나랑 동갑인 하마다상만 빼놓고 60 너머 70이 가까운 아줌마들이 오늘도 열심히 빵을 자르고 포장하고 있는  곳이 보로니야이다.

그렇게 일해서 스웨덴 여행도 가고 한국에도 왔었고 일본 국내 여행도 열심히 다닌다.

어떤 이유로든 남편은 떼놓고 다니는게 그 아줌마들이다. 


셋째와 하마다상은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잠깐 대화를 나눴는데 내가 아이가 셋인걸 아는 하마다가 몇 번째냐고 손가락을 접어보이길래 셋째라고 했다며 셋째가 웃으면서 전해주었다.

오늘 가게에 아주 귀여운 손님이 오셨어요. 하며 하마다가 라인 메시지를 보냈길래 겨울에 놀러 오라고 했더니 한국의 겨울은 추워서 따뜻할 때 오겠다고 하는 하마다상, 나는 그녀 덕분에 보로니야에서 알바도 할 수 있었고 가끔은 일본어 숙제도 물어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자기랑 동갑인 한국 아줌마가 용감하게 혼자 공부하러 일본에 왔다는 것만으로 그녀는 감동을 받았다면서 나를 빵집의 알바로 채용해주었었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연락하고 교토에 가면 만나서 술도 한 잔씩 하는 사이가 된 거다.

그리고 내가 못 갈 땐 딸이 가서 얼굴 보고 오는 사이가 됐으니 이만하면 이치고이치에를 실천하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본다.


빵집 알바가 얼마나 좋으냐면, 교토 사람들은 비싸서 자주 사먹지 않는 보로니야의 식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학교에 가지고 다녔고, 지인이 방문하면 직원 할인 40%로 선물까지 사서 들려보냈으니 보로니야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빵집이다.


구워진 식빵을 틀에서 빼내면 양 쪽 끝에 바삭하게 구워진 부분을 빵의 귀라고 하는데 빵의 귀 부분은 알바생들이 돌아가면서 가지고 올 수 있었다. 워낙 대용량의 식빵을 포장하다 보니 하루에 나오는 빵의 귀는 양이 엄청났었다. 그걸 사이좋게 나눠먹던 빵집애가 아직도 남아 있어, 나는 보로니야 아줌마들이 애틋하다.


 4박 5일의 일본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온 딸을 위해서 귀국밥상이란 이름으로 밥상을 차렸다.

돼지고기 숭덩숭덩 썰어 넣고 묵은지 김치 찌개, 두부는 빠지면 아주 섭섭하다.

간장게장 쪽쪽 빨아가면서 한 그릇 다 먹고 여행 이야기를 풀어놓는 셋째를 보면서 교토에 가서 있기를 잘했다 싶었다.


인연은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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