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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리운 것들이 있다.

군산. 아버지.

아버지는 추울 때 돌아가셨다. 군산의 계절에 간절기는 없다. 서해바다를 끼고 있어서 봄에도 춥고

벚꽃이 그 와중에 피어볼라고 애를 쓰면 바로 여름이 돼버렸고 겨울에는 눈이 많았다.

바다 건너 중국이라 봄에 황사는 얼마나 많았는지 아직도 기억난다.

황사 먼지들로 김밥에 모래가 씹힐 것 같은 끔찍했던 고등학교 때 봄 소풍의 추억도 군산이라서 더 했을까!

그래도 소풍은 즐거웠다.


장기자랑 시간에 2학년 7반 이과 언니가 검은 고양이 네로 네에로 이랬다저랬다 장난꾸러기 랄랄라 랄랄라 했을 때 입을 크게 벌려 네에로 네에로를 외치던 그 언니 입에도 모래는 들어 갔을 것이다.

군산이 그런 동네다.

 

군산의 명문, 시험봐서 들어간게 아니라 아무 의미도 없지만 내가 다녔던 군산여고는 일제시대의 스멜이 남아 있는 동네였다. 학교가 있었던 월명동에는 적산가옥이 많아서 친구들 중에는 자기 집이 일본식 주택인 아이들도 있었다.

교토의 오래 된 주택가에서 봤던 일본식 집들이 모여 있던 월명동을 지나 학교는 언덕에 있었다.

월명산 산 중턱이었고 학교 올라가는 길은 언제나 숨이 찼고, 지각할라 뛰어 올라가는 날에는 숨이 모자랐다.

지쳐서 올라가는 학교 길에, 나타나던 바바리맨 아저씨, 처음에는 놀랐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반복되는 바바리맨의 이상한 짓 따위는 별 것도 아니다 싶을 만큼 세상에는 웃을 일이 많았고 놀랄 일도 많았다.

우리가 반응을 하지 않자 소리없이 사라진 바바리맨 아저씨. 지금 쯤 죽었지 싶다.


지금은 없어진 백화수복 술 공장에서 나던 달달한 정종의 냄새는 등교길의 보너스였을까.

줄 서서 사먹는 이성당 빵집도 군산여고 다니던 우리들에게는 걸어서 가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동네 빵집이었을 뿐, 특별한 곳이 아니었고 안젤라 분식도 마찬가지, 지린성같은 자장면 집은 군산 족보에 이름도 올릴 수 없는 곳이다. 우리 때는 빈해원이었지!!


국민학교 2학년 때 처음 놀러 가 본 친구네 일본집은 화장실이 실내에 있었다.

긴 복도의 끝에 붙어 있던 화장실은 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내가 보기에도 신박했었다.

대문 옆, 마당 끝에 붙어 있던 화장실이 친구네 집에는 집 안에 있었고 복도처럼 길었던 마루에는 긴 유리문이 달려 있어서 마루가 따뜻했었다.

기억의 조각보들은 오래 될 수록 색이 선명하다.


아직도 남아 있는 군산 세관의 창고와 하코다테의 벽돌 창고가 비슷해 보인다.

군산 세관 옛 창고
하코다테 벽돌 창고

일본 패전 후 군산에 잘 지어 놓은 집들을 두고 일본인들이 돌아가면서 다시 올 때까지 잘 맡아달라고 했다던 적산가옥들은 그렇게 내 친구의 집이 되었고 쌀을 씰어 나르던 군산 항은 채만식의 '탁류' 배경이 되었다.


  2014년 겨울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랬는지 심정적으로 더욱 추운 해였다.

눈이 많이 내려서 선산으로 가던 운구차가 덜컹거렸으며, 외삼촌은 아버지가 가기 싫은 가 보다 라며 조용하던 운구차 안에서 혼잣말을 했었다.


장례를 치르고 오면 다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 때는 몰랐다.  

일 년은 울고 다녔으며 살아 계실 때는 싫을 때도 많았던 아버지가 정말 사무치게 보고 싶어질 줄


일 년 동안 아버지 생각하면서 하루에 한 번씩 울게 될 줄, 추워지면 그리워 질 줄,


2014년 12월에는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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