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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이 신부님인줄도 모르고...

그렇다. 신부님이 신부님인줄도 모르고 육개월 동안 같은 반에서 공부를 했다.

교토 YMCA 어학원의 한 학급 정원은 20명이 안되는데 그 중에 삼분의 이는 중국인이고 나머지가 한국 사람이었다.

내가 들어 간 반에 한국 사람은 나, 양땡땡, 홍땡땡, 김땡땡 이렇게 넷이었다.

나만 여자고 셋은 남자였어도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했던 그들 셋은 친하지 않아 보였다.


김땡땡이는 그 당시 우리 아들과 동갑인 스물 다섯쯤이었을텐데 일본 여자 친구랑 노느라 학교는 매일 지각이어서 내가 일본 선생님 보기가 창피할 정도였고, 양땡땡씨는 한국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일본으로 와서 언어 능력을 레벨 업 시킨 후 재취업하려는 목적이 분명한 삼십 대 중반의 남자였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자기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라 한 학기만 마치고 면접보러 열심히 다니는 것 같더니 취업을 했다.

한국에서 실연을 단단히 하고 일본에 왔는지 여자라면 쳐다도 보기 싫은 내색을 비친 인간이었지만 나는 여자가 아닌 아줌마라서 양상은 나한테 지가 만든 반찬도 주고 시험 족보도 나눠 주는 등 나름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래서 나도 가끔씩 딸이 들고 오는 한국라면이나 떡볶이 키트를 나눠줬고 집에 남는게 보로니아 빵이라서 가끔 그에게 비싼 보로니아 빵을 한봉지씩 주기도 했으며 쉬는 시간에는 간식도 나눠 먹는 살가운 짝꿍인 적도 있었다.


돌아가면서 짝꿍을 했기 때문에 양상이나 김상과는 한 번씩 짝을 했는데 많지도 않은 한국 사람 중에 홍상과는 짝을 못하고 학기를 마쳤다.


항상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손에는 커다란 묵주반지를 끼고 있던 홍상은 교토에서 성당을 찾던 나에게 카와라마치에 성당이 있다며 아주 불친절하게 알려줬었다.

그는 불친절한건지 무뚝뚝한건지 캐릭터가 어쨌거나 살갑지않았으며 늘 검은 계열의 옷을 입고 다녀서 중국인 여자애 찐상이 쿠로이상이라고 놀렸지만 대놓고 놀렸다가는 한 대 맞을 것 같은 인상이라 나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홍상은 늘 검은 옷만 입고 다녀. 그래서 쿠로이상.くろい [黒い] 검다는 뜻의 형용사다.

경계가 분명했으며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접근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으로 나도 그랬지만 비슷한 나이로 보였던 양상도 홍상과는 안 친해보였다.

하지만 그는 분명한 카톨릭 신자였고 묵주반지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으니, 그를 통해 성당의 위치 파악을 하고 교토에서 2018년 4월에 첫 미사를 볼 수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요일과 오늘" (tistory.com)

어딜 다녀오면 오미야게라며 작은 과자를 선물처럼 돌리는 일본사람들의 습관 같은것 때문에 우리도 어딜 다녀오면 과자같은 걸 돌렸는데 홍상이 친척 어른 상을 당했다며 제주도에 다녀오느라 수업을 빠진 적이 있었다.

자기 신상 이야기는 독립군처럼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그때 처음 알았다. 그가 제주도 사람이라는 걸.

저도 제주도 살았었는데 애월 소길리요. 말을 붙여도 아 네. 그걸로 끝.

아니 저도 남편있는 여잡니다. 그냥 한 반 친구로서 말 좀 붙인걸 가지고 그렇게 정색할 일입니까 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홍상은 완벽하게 사람을 차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학기를 보냈고 나중에 그가 사제로서 교토 교구에 발령받아 온 제주 교구 신부라는 것을 정말 우연히 알게 됐다.


제주도와 교토 교구는 자매 결연을 맺었고 신부들의 발령도 교환하여 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가 늘 검은 옷을 입고 다녔고 손에는 일반 신자들이 끼는 평범한 묵주 반지가 아닌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면 끼지 못할 알이 굵고 비장해 보이는 묵주 반지를 끼고 있었구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뭘 그렇게 불친절하게 다닐 건 뭐냐. 친절하고 상냥한 신부님들이 얼마나 많으신데.

그리고 신부님이라고 하면 내가 빵이라도 하나 더 챙겨서 줬을텐데.


교토에서 아직도 남아 사목활동하고 있을 홍상,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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