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엄마도 유학 한 번 가보자

남편과 나는 지방의 같은 국립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인문계열, 남편은 사회 계열

둘 다 예 체능과 상관없는 과(科)를 졸업하긴 했지만 중학교 때 한 달을 입 내밀고 문 쾅쾅 닫고 다닌 결과

얻어 낸 피아노 레슨과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기를 잘해 5학년 때는 학교 대표로 육상 대회에 나간 적도 있다는 남편의 증언으로 비추어 보아 우리 아이들이 두 명이 음악에 재능이 있고 한 명이 체육에 소질이 있는 게

어디서 데려 온 자식은 아니라는 걸 증명해 준다.


나이는 네 살 차이가 나지만 어차피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6"을 달고 있는 한

남편도 나도 학력고사 세대인 거는 마찬가지여서 같은 학교였겠다 만만하게 보고 학력고사 점수를

대라고 하고 서로 까 봤더니 남편이 나보다 무려 삼십 점 정도 더 위였다.


직장생활만 제대로 했지 시댁과 내 문제에 있어서 중심을 못 잡고 어리바리한 신혼 초의 남편을 보면서

분명히 학력고사 점수도 좋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 저렇게 답답하지, 아니 멍청하지

도대체 당신 학력고사 점수는 몇 점이나 맞았어?

내가 먼저 내 점수를 말했고 남편이 자기 점수를 말해줬는데 헐 이 인간 나보다 30점 정도 더 위였다.

"아니 당신 정말 그 점수밖에 받지 못했다고!"

오히려 남편이 깜짝 놀라면서 나한테 물었었고 나도 되묻고 싶었다.

"그렇게 점수 잘 받은 인간이 시댁과 갈등 있을 때 그렇게 밖에 못하냐"

"게다가 무려 심리학과 나왔다는 사람이 어머니 심리도 모르고 자기 부인 심리는 더 모르고"


가족이 그래서 어렵다.

가족이기 때문에 그냥 알아질 것 같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도 내 경험치가 상대방과 공유하는 부분이 있을 때 이해가 쉽고 자식일도 내가 해 본 걸 함께 공유할 때 머리로만 이해할 걸 가슴으로 받아 들일수 있게 된다.


"내가 해 봤으니까, 그래서 그 마음 아니까" 까지만 접근해도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훨씬 더 많아진다.


전학만 해도 그랬다.

전학이 힘든 거라는 걸 내가 겪어 봤기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때 승범이의 투정을 진지한 마음으로

받아 줄 수 있었고 35살에 이미 머리와 손이 굳은 상태에서 다시 피아노 과에 입학을 해서

머리카락 쥐어뜯어 가며 악보 외우고 심장 떨지 않는 약 먹어가며 향상 음악회 무대에 서 봤기 때문에

승범이와 은진이의 마음을 이해했다.


하지만 "재수"

그것만은 넘 사 벽이었다.


둘째가 고 3이었을 때 수시는 서울대학교 한 곳만 준비했는데 파이널 2명 뽑는 2차에서 떨어지고

정시 가군에 이화여대를 지원했다.

정시는 가군까지만 실기시험을 보겠다고 해서 가군 불합격이면 재수밖에는 길이 없는 아이였다.

이제 은진이만 대학에 들어가면 이 힘든 일도 끝이라고 고3이 되었을 때부터 김칫국 혼자 마시고 좋아했는데

긴 기다림 끝에 언덕배기 끝에 있던 음대 시험장에서 실기시험을 마치고 나오던

둘째 은진이의 멍한 표정과 울듯한 얼굴

신촌에서 수원까지 오던 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이의 침묵

합격자 발표날 의미 없는 예비 1번


"재수 시작"

서울대도 이화여대도 엿이나 처먹어라! 나는 다시 시작이다

어차피 정해 진 재수 생활, 이런 마음으로 시작해주면 좋으련만 그건 엄마가 바라는 슬기로운 재수생활이고

은진이는 4월, 5월이 되도록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재수생의 표정으로 악기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했다.


아이를 보면서 "너만 힘드냐""나는 더 죽을 맛이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길게 한 뒷바라지, 일 년 더 한다고 죽겠냐

일 년 뒤에 저는 대학에 들어가든지 말든지 나도 좀 내 인생 살아보자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면서 결국 나도 나 살겠다고 궁리해 낸 게 유학이었다.


일문과 나왔으니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다 잊어버린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 졌다.

둘째는 맘도 잡지 못한 4월에 일본 유학이라는 인생 최대의 프로젝트를 세우고 나니 마음이 바빠져서

인터넷으로 자료 뒤져 보고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걸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믿을만한 유학원을 정하고 상담 후에 교토의 학교를 정한 후 입학 허가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한 기초 준비는 유학원에서 대행해주니 서류만 넘겨주면 되지만 살 집을

구하는 일은 직접 했다.


기숙사도 있지만 부동산을 통해서 살 집을 직접 구하고 싶어서 교토 하우스 네트워크의 매물을 메일로

건네받고 확인하고 고르는 작업을 둘째의 계원예고 동기 강훈이 엄마 수연이랑 함께 했다.

교토 하우스 네트워크 부동산 회사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알아낸 회사이고 회사 메일로 집을 구하고

싶다고 보냈더니 내 조건에 맞는 방들의 샘플을 계속 보내주었다.

번역기 돌려 가면서 메일 보내고 일본어 학원의 일본 선생님과도 상의하고 시도 때도 없이 물어도

나긋나긋하게 "네 언니"해주는 강훈이 엄마랑 하우스 네트워크의 쓰시마상이 보내주는 집을 보면서 골랐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현지에서 10년을 살다 왔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력과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유학 준비하는 내내 학비 송금부터 집 고르기

심지어 교토에서 지내는 동안 알바 면접을 보는 순간까지 도움을 받았다.


둘째가 또 떨어지면 어쩌지 라는 현실적인 걱정도,고3이 된 셋째의 성적 부진도 유학만 생각하면

잊을 수 있었다.


"엄마도 유학 한 번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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