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귀여운, 오 나의 남편
올 해는 많은 일이 있었다. 한 해가 아직 두 달 남았지만 남편의 퇴직과 환갑을 한꺼번에 일타쌍피로 맞다보니 이것으로 마치 한 해가 다 가버린것같은 기분이다.
인생은 60부터라고 누가 그랬다만, 막상 남편이 61가 되고 퇴직을 해도 달라지는 건 크게 없었다.
그냥 살던대로 살아질 뿐이다. 60부터라고 달라지는것은 그대들이여!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사람들은 경고장을 날렸다.
집에 있는 남편이 부담스러울거라고 옐로우카드를 보여줬지만 남편은 집안일에 특화된 사람이라 아직 출근을 하는 나에게는 굉장히 고마운 부분이 많을 뿐이다.
게다가, 남편은 자기계발을 위해서 퇴직 후 첫 석달동안은 감정 관리 코칭 수업을 받았고 지금은 바리스타 수업을 받으러 다니고 있으니 이것은 "슬기로운 퇴직 생활"의 모법 사례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에 따른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좋든 나쁘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영향력을 보이고 존재감을 갖고 싶어하는게 사람의 마음이라 감정 코칭 수업을 받을 때는 "감사일기"를 함께 써야 됐고 지금은 커피에 대한 강의를 반강제로 듣고 있다.
수업이 일주일에 한 번씩이었으니 다행이지 일주일 내내 나가는 수업이었다면 아마 나는 남편보다 먼저 나가 떨어졌을것이다.
감정 코칭 수업에서 숙제로 내 주던 "감사일기" 쓰기를 나까지 끌어들여 쓰던 남편은 지금은 혼자서 쓰고 있지만 계속 해보니 세상에 감사하지 않은 일이 없더라는 보살 마인드로 바뀌었다.
나는 감사일기 쓰기에서 빠질래. 말하고 지금은 나는 쓰지 않지만 남편이 쓴 일기는 꼭 본다.
이 사람이 오늘은 뭐가 감사했는지 보고, 그를 감사하게 해 준 일들이 때로는 나도 감사하다.
커피야, 뭐 셋째 빼고는 모두 좋아하니 눈 뜨면 나는 밥하고 남편은 커피를 내린다. 몇 년 전부터 해 오던 일이지만 바리스타 수업을 나가게 되면서 달라진 점은 수업받고 온 내용을 우리에게 복기시킨다는 것이다.
커피 로스팅에서 볶아 오는 80그람 정도의 커피를 갈아 내려주면서 말은 8키로 쯤 쏟아내는 남편이지만 남편이 환갑이어서 내가 얻는 이익을 생각하면 그가 쏟아내는 말의 무게는 견뎌낼 만하다 싶다.
남편의 고등학교 3학년 1반 때의 모임 친구들과 올 1월에 환갑기념여행으로 홋카이도를 다녀 온 것도 남편이 환갑이라서였다.
19살에 만난 친구들이 61살이 될 때까지 모임을 지속하는 동안 몇명 되지도 않던 모임 친구들 중에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고 이혼으로 탈퇴한 사람, 사는게 힘들어서 탈퇴한 사람, 환갑이 되는 동안 사연도 많았고 그 중에 가장 많았던 사연은 환갑여행지를 정할 때였다.
40년 이상을 지속해 오던 모임이 환갑여행지를 두고 서로 이견을 좁히지 못 해 과장되게 말하면 싸우고 파투날 뻔 했으니 환갑여행이 뭐라고 말이지. 하여간 사연도 많았고 말도 많았던 홋카이도 여행이었지만 여행은 즐거웠다.
6월에 퇴직 기념으로 다녀 온 에히메 현의 이요오즈시에서는 일본 테레비 방송국 인터뷰도 했으니 올 해는 남편으로 인한 이벤트가 많은 해였던것같다.
이요오즈의 가류산장을 보고 내려 오는 길에 방송국 인터뷰를 했을 때다. 한국에서도 가족이 방송국 인터뷰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일본의 시골 동네에서 인터뷰라니! 모두 남편 덕분이었을것이다.
일본에서는 환갑을 간레키(かんれき [還暦])라고 부른다. 나이대 별로 장수를 축하해주는 의미는 대체로 비슷하다. 예를 들어 70세는 고희, 77세는 희수, 88세는 미수등 우리나라와 같은 식이지만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각 기념 나이마다 테마 컬러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어린아이가 태어났을 때 빨간 옷을 입혔는데 빨간색(あかい [赤い아카이)이 좋지 않은 것을 쫓아낸다는 의미가 있어서 입혔다고 한다.
환갑을 맞으면 아카이창창코라는 빨간색의 소매없는 하오리를 입는데 이것은 태어난 해의 간지가 돌아와 다시 아기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붙여서 환갑에 입고 기념 사진을 찍는데 요즘은 아마 그런 사람이 많이 없을 것도 같지만 기념되는 나이대별로 색깔을 다르게 옷을 입는 문화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니 잠시 보자면!!
이것이 아카이창창코다. 환갑에 입는 다는 빨간 조끼. 아카이창창코.
고희나 미수에도 테마 컬러가 있지만 얼마전 나카무라상이 친정 어머니의 90세 생신을 맞아 가족끼리 찍은 사진을 보내줬는데 90세의 테마 컬러는 보라색(무라사끼)이다.
나카무라상 친정 어머니 90세라도 아주 정정하신걸로 봐서 백세에 복숭아색 창창코를 입고 다시 사진 찍어서 보내올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모모이로창창코가 되겠네.
1월부터 환갑 기념 여행을 갔던 남편은 10월에는 다낭, 11월에는 시골 동네 친구들이랑 동해안 2박 3일 여행을 갔다.
아카이창창코대신 빨간색 셔츠를 선물해 주고 가방에는 여행을 기획한 친구 이름으로 깃발도 만들어서 꽂아줬다.
국토대장정을 떠나는 길인지, 만규투어를 가는 길인지, 환갑 여행인지 아무도 모를 차림으로 남편은 올 해의 마지막 환갑여행을 떠났다.
저걸 꽂고 집에서부터 한 시간동안 60번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내가 시킨다고 그걸 다 하다니, 환갑이 되었지만 그래도 귀여운 오! 나의 남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