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와 베네치아

평원과 물의 도시

피렌체에는 지하철이나 트램이 없다. 버스나 기차가 이동 수단으로 피사에 갈 때는 산타마리아 노벨라역에서 피사 중앙역까지 기차로 갔고 피렌체 두오모성당에서 미켈란젤로 광장을 다녀올 때는 C2버스를 이용했다.

https://maps.app.goo.gl/apGiUboXNBJipQM86

날씨가 꽤 추운 날 밤에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다녀왔는데 가는 건 걸어갔는데 다시 오려니 온 만큼 걷기가 쉬운 마음이 아니었다. 유럽에 있는 동안 어딜 가니 코를 훌쩍거리고 다니느라 모양이 심하게 빠졌지만 싸한 밤공기는 이겨볼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모자를 쓰고 다니나 싶었다.

피렌체에서 버스를 타고 싶을 때는 'at bus'라는 앱을 이용하면 됩니다.


피렌체에서 가죽가방을 살 일이 아니라 모자를 샀어야 했다. 피렌체 중앙시장에서 가방 팔던 아저씨가 '언니. 이거 진짜야. 진짜 가죽이야. 깎아줄게' 하던 우리말은 자연스럽고 너무 웃겨서 서로 바라보면서 웃고 지나갔었다.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 때문에 피렌체는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도시라서 피렌체 상인들도 일본인들에게는 호의적이라고 하던데 우리 가족은 어디로 봐도 한국 사람처럼 생겼었는지 '곤니치와 오네 상'이 아니라 '언니'라고 불려졌다.


산타마리아노벨라역에서 피사 중앙역(피사 센트랄레)까지 가는 티켓은 현장에서 자동발권기로 구매 후 다른 기계에서 통장 정리하듯 '찌지직' 소리가 나게 펀칭을 한 다음 타야 된다.

빨간색 발권기에서 티켓 구입 후 초록색 펀칭기에 티켓을 넣으면 찌지직 소리가 나면서 글자가 찍혀서 나온 걸 갖고 타는데 테르미니역에서 출발 5분 전에 플랫폼을 알려주는 '배쩨라'시스템을 겪어봤기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 다급하진 않았고 피사의 종탑은 아무리 사진으로 많이 봤어도 신기했다. 말로 아무리 하고 사진으로 백 번을 봐도 한 번 본 감동이 더 한 거. 그것이 여행이었다.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던 '피렌체 대성당'앞에 에어비앤비가 있었기 때문에 30분과 정각에는 성당의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넓은 테라스가 딸려 있는 숙소가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으나 4시면 이미 깜깜해지는 짧은 하루와 콧물 자동 발사가 되는 쌀쌀한 날씨에 발코니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지만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쿠폴라가 가까이 보이는 숙소에서 자 볼 수 있겠어라는 무한긍정의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여행의 반사 효과 아니었을까 싶다.

피렌체 전체가 메디치 가문의 유산이라고 해도 될 만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섯 개 동그라미의 메디치 가문 문장과 메디치 가문이 몰락할 때 피렌체 밖으로 유출하지 말 것을 약속하고 기증했다는 미술품들이 모여있는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대성당, 카페 질리의 부드럽고 많이 달지 않았던 티라미수. 여행이 끝난 다음 기억나는 피렌체에 관한 기억들이다.


이번 여행 전에 아들이 고3 때부터 피우던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다. 남편도 피우지 않는 담배를 우리 집 대표로 피우고 있던 아들은 무슨 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한 흡연의 길을 걸었는데 장시간 비행과 함께 여행하는 동안 우리도 불편하고 본인도 불편할 거라 생각했는지 금연을 결심했지만 출발 전 보건소에서 받아 온 금연껌과 패치는 피렌체에 와서 딱 떨어졌다. 로마에서 매담 소리 여러 번 들었지만 피렌체에서는 그냥 넘어가나 보다 했는데 금연껌을 사러 간 약국에서 약사에게 들었다. '매담. 여기는 통로입니다. 저 좀 지나갈게요'

네네 지나가세요, 약사 매담.


3박 4일 있으니 우리 동네처럼 건물들이 눈에 슬슬 들어올 때 우리는 베네치아로 넘어갔다.

들판이 쭉 이어지다가 갑자기 반짝하고 물이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베네치아

베네치아 본섬의 '산타루치아역'에 내렸을 때 햇빛에 반짝거리던 물길은 베네치아 사람들에게는 강물이 길이라는 것을 걷다 보면 알게 된다. '산타루치아'는 나폴리 지방의 수호신의 이름인데 정작 나폴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나폴리에서 당겨서 쓴 수호성인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남부투어를 할 때 봤던 소렌토 전망대도 물론 아름다웠지만 '산타루치아' 가사처럼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가사와 딱 맞던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 앞의 풍경은 잠깐 와서 보는 관광객들에게는 '와'할지 모르겠지만 베네치아 남자와 결혼해서 이곳에 살고 있는 아들의 대학 여자 후배를 역에서 잠깐 봤을 때 너무나 마른 모습에 '어머나, 저 친구는 원래 저렇게 말랐었어' 하고 물으니 '아니 엄마, 나도 몇 년 만에 봤는데 깜짝 놀랐어. 우울증이 와서 저렇게 빠진 거래' 결혼해서 가정을 이뤘어도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어린 나이에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는 일임을 아들 후배를 보고 알았다. 마음이 안쓰러워서 '엄마 보고 싶겠어요' 했더니 '다음 주에 오세요. 그거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어요' 하는데 내가 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은 나도 딸이 있는 엄마여서 그랬다.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풍경도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별게 아닐 수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 그래서 나온 말은 아니겠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이더라.


나폴리에서 땡겨 썼든 어쨌든 산타마리아 역이 베네치아에 있으니 어디서 이탈리아 가곡 '산타루치아'가 나올 것 같았지만 역 앞 다리 건너 '버거킹'에서 우리가 들었던 노래는 '아파트'였다.

-베네치아 찍고 빈으로 넘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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