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네클라이네나흐트무지크'

madam just a moment please. 매담, 제발 잠시만요-.-

베네치아 마르코폴로 국제공항의 검색직원이 나에게 대급하게 외치던 '매담, 저스터 모먼 플리스'는 귓바퀴를 지나 달팽이관에 김연경의 스파이크처럼 꽂혔다. 아니 내가 마약이라도 들고 들어간 줄 알겠어. 이 아저씨가 나랑 해보자는 거야 뭐야 기분이 나빴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 why' 정도나 됐을까. 나에게 '와이'는 애들 어렸을 때 읽히던 호기심 탐구 책이지 영어는 아니지만. 입이 안 떨어져서 못 하고, 순한 눈빛으로 '왜요. 아저씨' 하고 바라봤을 때, 나는 알았다. 앞사람 검색이 안 끝났는데 내가 한 걸음 안에 들어갔음을.


'오징어게임'이었다면 죽었을 테지만, '매담'으로 목숨 하나 얻은 건가. 그래도 트랜이탈리아만큼은 아니었지만 오스트리아 가는 비행기 게이트를 탑승 얼마 전에 알려주는 걸 보면서 성질 급한 사람은 살 동네가 못 되는구나 싶었다. 그러니 내가 남보다 먼저 뗀 한걸음이 이 자들에게는 '매담, 매담' 하고 소리칠 큰 일이었던 거고. 아, 그래 모든 게 이해가 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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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폴로'의 이름을 따서 '마르코폴로 국제공항'이지만 사실 마르코폴로씨는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전쟁 포로로 갇혀있던 중 '내가 말이야 이런 걸 봤어. 아주 멀리 동쪽으로 아버지랑 장사하러 갔는데 거기 사람들은 얼굴색이 노랗고 코가 생기다 말았어' 그런 썰을 감옥에서 풀었는데 어떤 사람이 이거 돈이 되는 이야기다 해서 대필해서 썼다는 게 바로 '동방견문록'이다는 설이 있고 베스트셀러가 된 동방견문록의 원작 제공자인 마르코폴로 국제공항을 떠나 오스트리아 빈 입성



애증의 빈이다. 돈 안되고 돈만 드는 바이올린을 전공한 큰 아들과 클라리넷을 전공한 큰 딸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으니 우리 가족에게 빈이 어떤 의미였을지는 읽는 분 상상하시는 대로, 그게 맞습니다.

https://youtu.be/3 OMAzUi7 E4 g 이 연주곡은 중학교 1학년 때 내가 마음을 뺏기고 들었던 모차르트 곡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쇤부른 궁전, 서머 나잇 콘체르트

1981년, 중학교 1학년 때, 바이올린이 어떻게 생긴 건지 음악책에나 봤지만 내가 다녔던 여중에는 현악부가 있었다. 사립 국민학교에서 바이올린이나 현악기를 이미 배워서 활이라도 잡을 줄 알고 악보를 볼 줄 알던 아이들은 음악 선생님이 현악부로 아예 모시고 갔고 우리가 아침 자습을 따분하게 풀고 있을 때 그 애들은 학교 예술제에서 연주할 곡을 반복해서 연습하고 있었고 그게 바로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밤의 소야곡)였다. 우리 반은 1학년 9반으로 현악부 연습실과 가장 가까운 위치. 귀는 연습실에 눈을 칠판 아침 자습에. 그런 한 학기를 보냈다.


공항 검색대 직원의 '매담'소리가 달팽이관을 울렸다면 모차르트의 밤의 소야곡은 내 심장에 박혔다. 취미로 배운 아이들이 하던 연주였으니 소리가 좋았을 리도 없었겠지만 처음에는 너무 좋던 그 음악이 모차르트를 질투하던 '살리에리'처럼 질투심에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현악부 아이들이 꼴 보기 싫어졌었다. 시내의 극장을 빌려서 하던 학교의 예술제에 현악부 애들은 똑같이 맞춘 흰 블라우스에 검정 긴치마를 입고 악기를 들고 나와한 학기 내내 죽어라 연습했던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를 연주했다.


객원연주자로 화음을 채웠을 리도 없었을, 현악부의 모차르트 곡이 질투가 날 정도로 좋았을 연주가 아니었을 텐데 왜 그렇게 살리에리처럼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의 질투심을 느꼈을까.

이렇게 좋은 음악을 너희는 연주할 수 있고 나는 못 하는구나. 그런 마음이진 않았을까 싶다.


내 잠재의식 속에 질투심이 남아있어서였을지. 큰 애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시킨 바이올린은 중간에 고비는 있었지만 음대 오빠가 되었고, 둘째는 큰 애 따라 악기를 시작했다가 자기에게 맞는 클라리넷으로 음대 언니가 되었다.

둘에게 '오스트리아 빈'은 모차르트의 무덤이 있는 곳, 빈 근교의 중앙 묘지에는 '베토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의미도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그리고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가 있는 곳이었다. 재능반, 노력반, 없는 돈을 만들어서 쏟아부었던 렛슨비,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고집으로 둘은 전공을 했지만 막상 내 자식이 악기 전공을 하니 그들의 연주도 멀쩡하게 들을 수는 없는 새가슴이 된다는걸 알게 되었다. 질투심으로 듣지 못 하든, 실수하면 어쩌나 마음이 쫄아서 못 듣든, 음식도 남이 해 주는게 가장 맛있듯이 연주도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이 하는 연주가 가장 듣기 편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음악의 도시답게 성당에서도 무료 음악회가 있고 연주를 보는 할머니들은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고 박수 치는 사람을 째려 보는 음악적인 교양도 훌륭하신 분들이었다.

성 페테 성당 4시 음악회

호프부르크 왕궁 미사에서는 '빈 소년 합창단'의 퇴퇴장 곡이 미사의 마침이었으니 얼마나 달팽이관이 사치를 누렸는지 모른다.


지하철 역에서 유럽 오빠가 돈 통을 놓고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성당에서는 클래식 연주회가 있어서 동네 할머니들이 편하게 와서 듣고 할머니들이 무려 음악 감상 에티켓을 알고 있는 동네가 바로 '빈'이었다.


호프부르크 왕궁미사에서 빈 소년 합창단의 연주


살리에리의 미사곡으로 호프부르크 왕궁의 미사는 진행되었다.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차르트를 질투한 살리에리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환경도 좋고 인품도 좋았던 금수저였다는거, 오히려 모차르트가 성격이 개차반이라 친한 사람이 얼마 없었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일방적으로 자기 아버지에게 살리에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면서 편지를 보냈고 일찍 죽는 바람에 살리에리 독살설이 퍼졌으나 당대에는 살리에리도 모차르트 못지 않게 인정받는 음악가였다고 한다. 질투심을 느낀 건 오히려 모차르트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스트리아 빈에 열 네살 때의 나를 두고 왔다. 쉰 여덟에 열 네살의 나를 그곳에 두고 돌아온 것 같다.

글을 쓰면서 그런 마음이 든다. 잘 있어. 그 때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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