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그런 곳이었다. 유로 연합국 사이에서는 입국 시에도 따로 검사를 하지 않고 이웃 도시에 가는 것처럼 별다른 절차 없이 편하게 입출국이 되는 것을 비행기가 아닌 기차로 경험했을 때, 이것이 바로 '연합의 힘'이구나 싶었다. 사실 화폐도 그렇다. 이탈리아의 원래 화폐인 '리라'로 쓸 때였다면 우리나라 '원'의 가치와 비교했을 때 그렇게 차이가 났을까 싶기도 하지만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유로'로 바꾸고 나니 화폐 가치는 '원'보다 높아져서 식당마다 어지간하면 붙던 자릿세와 유로보다 낮은 원의 가치로 인해 오스트리아까지 여행할 때 넘사벽 유로였으나 그것도 일주일 넘어가니 감각이 없어지긴 했다.
무엇보다 원에는 쓸데없이 많이 붙는 숫자 0이 유로에서는 확 줄어드니, 일본에서는 숫자 뒤에 0을 하나만 더 붙이면 계산이 되었지만 유럽에서는 0을 3개 더 붙이고 거기다 좀 더 더해서 생각해야 됐으니 트래블월렛 카드 내역을 확인하는 일도 나중에는 귀찮아지긴 했고 에어비앤비에서 지냈기 때문에 아침도 해 먹고 점심은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해 먹고, 이틀에 한 번 정도만 밖에서 외식을 했으니 네 식구 먹는 돈을 알뜰하게 쓴 덕분에 왕복 비행기 티켓값 포함해서 투어비 넣고 선물 샀던 돈까지 포함해도 네 식구가 14박 15일에 1,300만 원을 쓰지 않았다.
물론 덕분에 나는 유럽의 어느 집 주방에서 순직할 뻔했지만 천장이 높고 식세기가 갖춰진 유럽주택의 주방에서 삼시세끼 유럽 편을 찍어 보는 일도 할 만은 했다. 다만 시차에 적응을 못 해 귀신같이 새벽 3시에 일어나서 4시쯤 밥을 차려놓고 5시면 '자 먹자' 했던 귀곡산장 같았던 삼시 세 끼였지만 나의 주방투혼으로 경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다.
빈에서 OBB기차를 타고 부다페스트 '켈러티' 역에 내렸을 때 '어서 와. 동유럽은 처음이지'였지만 유럽을 동 서 남 북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때 빈에서 기차로 두 시간 조금 넘게 넘어오면 빈에서 부다페스트, 서유럽에서 동유럽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부다페스트 캘러티 역에 도착했을 때 날씨도 가장 추웠지만 넓은 역 안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썰렁했고 빈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싸늘함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동유럽인가 싶은.
빈에서는 태그하고 타는 시스템이 아니었는데 부다페스트에서는 검표가 철저하고 펀칭하지 않았다가는 벌금을 내는 시스템이라 해서 우리는 긴장하면서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게 검표 말고도, 기차 소리 같은 게 나던 에스컬레이터는 경사가 급하고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주 길어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으니 '어서 와 동유럽은 처음이지'가 아니라 '어서 와 부다페스트 지하철의 세계로'였지만 덜컹거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스토리아역에서 내려 찾아간 에어비앤비는 그동안 숙소 중에서 최고였다.
남자든 여자든 위로 쭉쭉 긴 거인족 헝가리 사람들 사이를 콧물을 홀짝거리면서 찾아온 보람이 있는 에어비앤비였다. 부다페스트의 아스토리아 역 근처 우리 가족이 지냈던 에어비앤비다.
헝가리는 유로를 쓰지 않고 포린트를 쓰기 때문에 트래블월렛 카드에 포린트를 환전해서 썼지만 물가가 빈에서만큼 비싸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굴라쉬나 빠네 수프도 맛있었고 아시안마트를 찾아가서 4,500 포린트를 주고 사다 끓여 먹은 '너구리'는 여행의 마지막 만찬처럼 맛있게 먹은 인생 라면이 되었다.
아들이 발견했다. '여기서 파는 너구리는 다시마를 잘게 잘라놨구나' 카드 반절만 한 다시마가 통째로 들어가 있어야 너구리지, 이건 사기지. 했지만 4,500 포린트 우리 돈 16,000원쯤 했던 너구리를 우리는 고향의 맛처럼 흡입하고 헝가리의 찬 바람을 헤치고 야경을 보고 춤추는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처럼 멈추지 않고 걸어 다녔다.
1월 9일에 출발해서 1월 23일까지, 14박 15일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