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에 가꿨던 화단과 올해 시작한 꽃 농사가 다르다. 같은 봄인데 시작하는 마음에 따라 화단 디자인이 달라지기도 하고 심는 꽃도 달랐다.
봄이 설레는 이유는 그동안 뿌려 놓았던 꽃씨들이 어떤 게 살아남아 올라올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주택으로 이사 오고 나서 처음에는 가꾸지 않았던 화단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던 것은 이사하고 좀 지나서였다. 집이 워낙 오래돼서 가꾸지 않은 화단이 집의 풍경을 더 망치는 것 같아서 꽃이라도 가꾸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는데 봄부터 가을까지 조금만 마음을 담아서 꽃밭을 가꿔도 집이 살아나는 것 같음을 느꼈으니 이제는 봄, 가을 화단을 마음 가는 대로 가꾸는 것이 우리 집만의 봄맞이가 되었다.
도매 화훼 농원에서 일년생 봄 꽃 12개들이 4판을 사서 화분에 옮겨 심고 화단의 빈 땅에서는 뭐가 올라올지 기대감으로 땅을 쳐다 보게 된다.
물론 꽃 농사는 남편의 몫이므로 포트에서 화분에 꽃을 옮겨 심는 일은 남편이 쭈그리고 앉아서 반나절 노동으로 해 냈다. 나는 보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 된 지 좀 됐다. 주택이라서 옥상 채소 농사는 남편이, 입구에 있는 화단은 내가 하기로 땅 지분을 나눴는데 어느새 남편에게 다 넘어갔다.
넘어 간 이유는 단 하나. 남편이 나보다 더 정성껏 화단에 정성을 들였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심어 놓은 구근이 잎을 올렸으니 얼마 가지 않아 튤립도 꽃을 피울 것이다. 기대감이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봄같다.
토요일 교토의 소식을 보내 온 히라이 선생과 한, 일 꽃잔치가 벌어졌다.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많지 않은 교토에서는 한 겨울에도 밖에 꽃 화분이 있고 작은 현관 입구,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보라고 화분을 내놓는 집이 많은데 히라이 선생 집에도 팬지가 꽃을 피워서 현관 앞에 내놓았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팬지 화분 안에 튤립 구근이 두 개 심어져 있었는데 싹을 띄워서 즐겁게 보고 있다며 교토의 봄 소식을 보내왔다.
팬지 화분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잎이 나와 있는 튤립이다. 히라이 선생 집 말고도 집 앞에 사람들 보기 좋으라고 꽃 화분을 내 놓고 가꾸는 것이 일본 사람들의 정서이다.
우리집도 화단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우리집 화단에 관심을 갖는 일이 많아졌다.
주로 할머니들이지만, 느린 걸음으로 가시면서 화단을 쳐다보는 걸 여러번 봤다. 나도 꽃을 예쁘게 가꿔놓은 집이 있으면 멈춰서 보게 되는데 사람의 마음은 똑같은거다.
봄이 시작되자 남편의 발은 바빠졌다. 옥상에서 화단으로 집 에서만 2천보를 넘게 걷고서 모종 옮겨 심기가 끝이 났다. 그렇게 피곤하게 몸을 움직여도 새벽 세 시면 귀신같이 눈이 떠지는 중년의 삶을 살고 있지만 중년의 나이가 되었기때문에 이런 일상들이 소중하고 가치있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