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등짝.

학씨아 저 씨 아니고 HOT 씨 아저씨 남편!

아들이 지방에 내려가면서 집에 있던 차를 가지고 내려갔다. 자동차 없이 산 지 일주일. 우리가 불편할 일은 별로 없었다. 다만 딸이 좀 불편했을 것이다. 남편이 언제나 데리러 다녔으니 차 없는 일주일 동안 운전을 못 하는 사람(딸)은 불편했고 운전을 하던 사람(남편)은 편했다.


주택가 골목을 걸어오는 것도 신경이 쓰여 자다가도 데리러 가던 남편이었기 때문에 강제로 차가 없던 일주일 동안 남편의 일은 하나가 줄은 셈이었다.


출, 퇴근을 시켜주던 남편에게서 내가 독립한 것은 자전거 덕분이었다. 당근에서 5만 원에 산 '미니벨로'가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을 다시 알게 해 주었다. 아침에 벚꽃 나무 아래를 휙 하고 지나갈 때, 앞에 사람이 있어 따릉이를 한 번 울려 주고 지나가면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할 때, 어제보다 오늘 시간을 단축해서 집이나 일터에 도착했을 때 마치 기록을 단축한 운동선수처럼 기분이 좋다니. 자전거 타기는 허리에도 좋은지 자전거 타면서 아침에 일어날 때 허리통증도 한결 덜 한 것 같았다.


11살 때 배워 둔 자전거 타기가 스물일곱에 딴 1종 운전면허보다 지금 생활에서는 만족도가 더 높다.

몇 년 전에 열쇠를 채우지 않아 잃어버린 자전거를 교훈 삼아 이제는 뒷바퀴에 열쇠도 잘 채우고 비 오면 들여놓고 자전거와 애착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스크린샷_17-4-2025_154430_sesmam.tistory.com.jpeg 새로 산 당근표 '미니벨로'



남편과 일이 있어서 갔던 곳에서 자전거 하나로 돌아오게 됐다. 애순이와 관식이는 아니지만 나는 남편의 등을 잡고 자전거를 탔고 집까지 4킬로쯤 자전거로 돌아왔다.

남편의 등짝 하나 믿고 집까지 돌아오는 길에 엉덩이는 아팠지만 재미는 있었다.

나: "자전거 언제 배웠어?"

남편: "우리 집에 양복 맞추러 오는 아저씨들이 자전거 세워놓고 막걸리 마시러 가면 그때 몰래 갖고 나가서 배웠어"

시댁은 면사무소 동네에서 양복점을 했고 시아버지는 바느질 솜씨도 성깔만큼 까탈스럽게 잘하셨던 분이라 손님이 꽤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무조건 "희망라사"에 양복 맞추러 오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시아버지와 막걸리를 마셨야 했고 자전거는 그분들이 집에 돌아갈 때까지 빈차나 다름없었으니 남편에게는 연습할 수 있는 자전거가 순서대로 기다리고 있던 거나 마찬가지였을 터. 자전거를 배울 수밖에 없었던 1964년 아저씨였던 것이다.


남편이 넘어져서 자전거가 까지거나 움푹 들어갔더래도 술 취해서 돌아갔을 아저씨들이 그걸 발견했을리도 없고 완전범죄에 올라탄 남편의 자전거 타기는 타고난 운동신경 덕에 금방 배웠을테니, 이제는 고인이 되셨을 그시절 희망라사 단골 아저씨들 덕분에 나는 남편이 태워주는 자전거를 타는 오십 대 아줌마가 될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이라서 차들은 신호대기앞에 밀려 있었고 우리는 자전거 도로로 쭉쭉 달렸다. 길에 BMW가 있더라도 부럽지않았던 자전거 타기였다. 엉덩이는 아팠지만 앞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던 남편에게 아프다 소리도 못 하고 매달려서 왔지만 내리지도 쉬지도 못 하고 젊었을 때부터 이렇게 우리 가족을 책임졌겠구나 생각하니 남편의 등짝이 짠했다.


남편은 관식이도 아니고 학씨도 아닌 평범한 아저씨지만 등짝 내어주고 열심히 달리는 뒷모습만큼은 세상 어떤 남편보다 듬직했다는거, 마지막 월급이 두 달 남은 남편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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