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돋보기를 쓰지 않은 아줌마의 마지막 지도가 될 지도...
10월 말에 예정된 런던과 파리 여행을 위해 유튜브로 1일 1 런던, 1 파리를 찍고 있는 중이다. 런던 5박 6일, 파리 7박 8일. 올해 1월 자유 여행으로 이탈리아와 빈, 헝가를 다녀오긴 했지만 그건 알프스도 넘고야 마는 나폴레옹 같은 딸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고 나는 그저 돈과 카드만 들고 가는 병사였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지만 이번 여행은 경우가 다르다.
셋째와 둘이 가는 여행. 나도 셋째도 런던도 파리도 처음이다. 그래도 나는 작년과 올해 유럽 석회수라도 마셔봤지 셋째는 유럽이 처음인데 운동선수라서 여행 준비할 시간도 많지 않아 대부분의 여행 계획은 내가 세우고 있고 현지에서 할 투어도 내가 정리해서 예약하고 있는 편이라 아마 여행 갈 때까지 이런 패턴이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여행 스타일도 다르다. 밥만 먹으면 직진인 나와 밥도 먹고 디저트도 먹어야 식사가 끝난 것인 셋째. 우리는 여행 가방 싸는 것도 남극, 북극이다.
셋째는 면봉까지 챙겨서 가는 보부상 스타일이고 나는 12박 여행에도 등에 매는 가방 하나면 되는 미니멀리즘 아줌마다. 옷을 최소화해서 가져가기 때문에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은 날짜만 바뀌지 옷은 그대로인 게 대부분이다. 여름여행이 아니면 열흘에 옷 두 벌로 충분한 것이 나의 여행이다.
재작년 남편 친구모임에서 홋카이도 3박 4일 여행을 갈 때 우리 부부만 배낭 하나에 짐을 꾸려 왔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각각의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왔었다. 그들은 우리 부부를 이상하게 봤고 나는 그 사람들의 짐이 쓸데없이 커 보였다.
이제는 작은 여행 짐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내공이 생겼으니 이후로도 여행 갈 때 가방이 커지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삶의 방향이 미니멀리즘은 아니었지만 아파트에서 지금 사는 주택으로 이사오던 해에 가지고 있던 짐들을 많이 정리했다. 아파트에서는 앞 뒤 베란다에 뭔가 숨겨놓고 쟁여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우리 집 큰 애보다 나이를 더 먹은 오래된 단독주택에는 숨겨 놓을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정직하게 보이는 공간들만 있을 뿐이었다.
이 집에서 살기 위해서는 물건들의 최소화! 그게 정답이었고 SBS 스페셜 '퇴사하겠습니다'에서 이나가키 에미코를 보면서 그녀의 삶의 방식에 마음을 홀딱 뺏겨 나도 저 여자의 집처럼 물건 없이 살아봐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물론 이나가키에미코처럼 세탁기, 냉장고도 없는 극한의 미니멀리즘은 실천할 수가 없었지만 지금 집으로 이사 오면서 냉장고 크기를 반으로 줄였다.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이나가기에미코의 모습, 굉장히 매력적이다.
2015년 600리터가 넘는 냉장고에서 320리터로 줄였어도 냉장실 한 칸은 여유 있게 비워놓고 지내고 있으니 생활의 방식이 미니멀리즘으로 많이 기울어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우리집 냉장고 크기를 줄이는데 이나가기에미코의 역할이 컸다.
여행 다닐 때도 남들이 들고 다니는 정도의 크기는 들고 다녔었는데 그게 어느샌가 캐리어에서 배낭 하나 매는 걸로 끝나게 되었다. 옷을 줄이니 가방 크기가 줄었고 손으로 끄는 가방에서 어깨에 메는 배낭으로 바꾸고 나니 손이 자유로워지는 홀가분함이 있었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여행 패턴이 되었다.
런던과 파리의 지도를 교보문고에서 구입해서 오늘 받아보니 여름이 다 간 것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여름의 더위를 여행의 설렘이 누그러뜨렸는지 마음에서 살랑살랑 초가을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런던과 파리의 지도 두 장
하지만, 지도를 받아보니 글자가 왜 이렇게 작은 거야. 시원하게 안 보이는 종이지도. 휴대폰처럼 확대해서 볼 수도 없고 지도의 내용은 취향저격이나 글씨 사이즈는 섭섭했다.
보고 싶은 곳은 많아졌으나 이젠 안 보이는 나이가 됐구나. 생각이 들면서 두 장의 지도까진 어떻게 넘어가겠지만 내가 돋보기를 안 쓰고 버틸 수 있는 최후의 지도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눈은 점점 안보일텐데 보고 싶은게 많아졌구나. 살림은 미니멀리즘이 되나 마음은 아직 그렇지않다는 걸 지도 두 장을 보면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