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가 아무리 맛있어도 어서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학교 교사는 기절할 만큼 힘들 때 방학이 온다지만 돌봄 전담사, 나는 방학이 대목이다. 9시까지 등교하라고 말했어도 출근하면서 학교에 아이를 밀어놓고 가시는 어머니 때문에 나의 출근은 무려 30분이 당겨졌고 아침부터 퇴근할 때까지 어린 시절의 내 자식들처럼 붙어 있는 돌봄 교실 아이들을 보느라 달력이 무슨 죄여. 한 달 일찍 달력을 뜯어내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홧김에 뜯어낸 8월, 뜯어낸 김에 한 장 더가 된 9월.
그리하여 우리 집 달력은 시월이다.
성당에서 나눠 준 달력이라 10월의 달력에는 가톨릭 대학교 교정의 단풍나무가 배경이다. 이거만 봐도 미리 끌어다 쓰는 10월의 기분이 꽤나 괜찮다. 그리고 진짜 10월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런던과 파리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서이지만 하루가 힘들 때는 한 달을 미리 앞당겨서 가불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기도 하다.
12박 13일, 런던과 파리의 계획을 짜면서 8월의 가장 더운 때를 보냈다. 유튜브로 여행 정보를 찾아보면서 이미 파리와 런던을 열 번쯤 다녀온 것만 같고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해리포터처럼 카트를 밀면서 벽 속으로 사라지는 걸 상상하면서 마음속의 불을 몇 번이나 껐는지 모른다.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돌봄 교실, 1학년과 2학년이 함께 있고 금방 짜증 내고 화를 내는 아이부터 고집이 그동안 봤던 아이들 중에 단연 최고인 아이도 있어서 올여름 방학은 하루하루 수행하는 기분으로 출근을 했으니 나에게 10월의 여행이 없었다면 마라맛 8월이었을 거다. 인간의 삶에 여행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촘촘하게 계획을 짰기 때문에 함께 가는 셋째로부터 민원이 들어왔다.
셋째 : "엄마, 여행이 쉬러 가는 건데 아침 7시부터 그렇게 힘들게 돌아다니는 걸로 하면 힘들지 않겠어"
나 : "그래, 우선은 그렇게 써 놓기만 한 거야. 가서 쉬고 싶으면 느긋하게 나가면 되니까 걱정 마"
스물일곱 살 셋째를 살살 달래긴 했지만 별일 없다면 나는 계획대로 7시면 "나가자" 할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은 혼자 갔던 교토 어학연수였다. 오로지 나로만 살았던 1년의 시간이 이후로도 별일 없다면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 아닐까 싶다.
잘하던 며느리는 아니었지만 며느리, 엄마, 집사람 3종 세트를 시원하게 던져버리고 혼자 살았던 교토 집
2018년에 오사카에 큰 지진이 있어서 교토까지 흔들렸지만 이 집은 흔들거리기는 했으나 위에 있는 물건이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을 만큼 버텨주는 힘이 있는 집이었다.
2층에 살면서 1층에 페치카라는 카페가 있었는데 1년 동안 한 번도 안 가봤었네
부동산 설명에만 남향이었고 살아보니 반지하처럼 햇볕이 손바닥만큼만 들어오는 집이었지만 일 년동안 좋은 호텔이 되어 주었고 교토에 머물 곳이 있다는 건 우리 아이들에게도 행복한 구실이 되었기 때문에 딸들은 열심히 교토에 놀러 왔었다.
두 달에 한 번 꼴로 교토를 왔다 갔다 했던 둘째와 좁은 방에 친구까지 데리고 왔던 셋째. 남편과 아들이 왔을 때만 호텔에서 지냈고 저 집은 훌륭한 교토의 호텔이 되어 주었었다.
여행을 가기 위해서 1월부터 돈을 모았다. 시원하게 헐어서 10월에 여행 갈 때 쓸 계획이다. 믿었던 테슬라의 배신이 있긴 하지만 어쩄거나 조금씩 나눠 모으기 했던 토스 증권 계좌가 나를 런던으로 보내줄 것이다.
기절할 만큼 여름방학이 힘들어도 10월에 어차피 나는 여행간다라는 명제 앞에 견딜만하다.
그리고 날씨도 견딜만하게 더워졌다니 아무리 힘들어도 견디면 지나간다는 말은 진리의 말씀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