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이 40일 남았어요!

여행을 준비하세요

여름부터 준비했던 여행 계획이 거의 마무리되었고 현지에서 하고 싶은 투어들도 예약 완료해서 이젠 40일 남은 여행 날짜를 차분히 기다리면 된다. 마이리얼트립에서 대부분의 현지 투어를 준비했더니 내 대신, 하루하루 날짜 지워가면서 나의 여행이 며칠 남았는지 알려주고 있는 마이리얼트립의 메시지 덕분에 미친 여름 잘 넘겼고 여행을 기대하는 설렘이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처럼 내 마음을 환기시켜 준다.

설렘 아이스크림은 좋아하지 않지만 마음에 부는 '설렘'은 캔디바의 소다맛처럼 착 감긴다.



8월에 시작한 여행 계획표는 9월에 마무리되었지만 여행이라는 게 가서 다니다 보면 인스턴트로 달라지는 것들이 있으니 완전하진 않겠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의 '런던 파리 여행 계획표'는 일단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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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런던 파리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미 다녀온 것처럼 거리 풍경들이 낯설지가 않지만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달리 보이는 풍경들과 공항 냄새, 거리 모습들을 생각하면 두근거림으로 기어 변속 바로 되고 파리가 지금 파업 중이고 런던 지하철도 파업 중이라지만 10월에는 잠잠해지지 않겠어.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기로 했다.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여행을 갈 때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어쩌다 아버지는 해외여행 한 번 못 해보시고 돌아가셨을까. 아버지가 다녀온 유일한 해외가 월남파병이었다니, 마음이 아프다.

지금 살아 계셨다면 82세가 되셨을 아버지가 월남에 간 이유는 하나였다.

'해병에서 맞아서 죽느니 월남 가서 돈이라도 벌어야겠다'가 이유였고 그 시절 얼마나 구타가 많았는지 맞아서 죽는 것보다 전쟁에 나가는 게 두렵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렇게 간 월남전 덕분에 아버지는 연금 수령자가 되셨고 엄마는 아버지 연금을 유족 연금으로 수령하고 계시니 아버지 살아생전에는 엄마가 고마워할 일이 거의 없었던 아버지셨지만 돌아가신 후에는 연금 받는 17일이면 사진 앞에서 짧은 인사말 '고마워'를 하게 만드는 마법의 연금이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큰 집에 보관되어 있던 아버지의 낡은 카메라를 큰엄마에게서 건네받았다.

월남 전쟁에서 죽을 뻔했을 때 할머니가 꿈에서 아버지를 깨워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전설 같았지만 아버지가 월남 전쟁 끝나고 돌아오면서 사서 어깨에 메고 왔다는 카메라는 현실이었다.


스물 두 살 쯤 해병대 월남 파병이었던 어린 아이같았을 아버지가 스물 네살 때 동네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양쪽을 두리번 거리면서 무섭게 걸어다녔다는 돌아가신 고모부의 증언도 사실이다.

아마 월남에서 살아 남기 위해 아버지는 눈을 양 옆으로 휘두르고 무섭게 뜨고 다녔던 모양이다.

어렸을때 아버지가 월남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서 노는게 나의 취미 생활이었다.


늑대 얼굴을 한 북한 군인의 모습으로 반공 교육을 받고 백인의 얼굴을 타잔으로 익히고 혼혈인 사람들을 튀기라고 부르던 (어원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1970년대에 아버지 앨범에서 펼쳐지는 월남 여자들과 찍은 아버지 사진은 그림책보다 재미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상상력과 산만함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나는 아버지 앨범속의 월남 마을 풍경과 눈이 쑥 들어가 있는 여자들의 얼굴이 우리 동네 아줌마들의 얼굴과 달라서 신기했고 봐도봐도 질리지 않았다.


내가 누굴 닮았겠는가. 100프로 빼박 아버지다.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산만하고 쓸데없이 문학적인 아버지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

여행 갈 때 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이런 것도 못 보고 돌아가셨구나. 슬프다. 보셨더라면 얼마나 좋다고 하셨을까 싶다.

런던 여행이 40일 남았어요! 여행을 준비하세요. 친절한 메시지를 아버지와 함께 봤더라면 좋았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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