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내력

어쩔수가 없다.

추석 연휴, 이렇게 긴 연휴를 일본어로는 오오가타렌큐유(대형연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음력 8월 15일이지만 일본은 양력 8월 15일, 오봉연휴에 이런 대형 연휴가 발생한다. 오봉 연휴에 다들 시댁에 가고 연휴에 여행을 가느라 교토 보로니야 빵집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2018년 오봉때는 나와 키타무라상 둘만 일을 했었다.


나: 키타무라씨는 시댁 안가시나요.

키타무라: 리콘시마시따.(이혼했습니다.)


일본인이었지만 함께 일 하던 일본 사람들과 나 보다 말을 하지 않던 사람이 키타무라상이었다. 이혼했다는 그녀의 말이 귀에 쏙 꽂히던 그 순간, 빵집에는 우리 둘만 있었고 이야기를 차단시킨 이혼 이야기로 입꾹모드로 8시간 빵집 노예처럼 일했다. 빵을 썰고, 포장하고, 갯수세서 택배포장하고, 상표를 떼서 붙이는 단순작업을 말없이 8시간 한 다는 것은고문이었지만 오봉 연휴가 끝나고 다른 달과 다르게 들어 온 엔화는 엔화로 누리는 정신적인 금융치료였다.


교토에서 있다 온 지도 벌써 7년이 지났지만 8월 15일 오봉과 그때 혼자서 지냈던 추석이 생각난다. 사람을 죽일셈인가 싶을 정도로 덥던 교토의 더위도 오봉을 지나서는 점점 서늘해져서 8월에 보로니야에서 노예처럼 일했던 알바 급여를 9월 30일 학교에 가면서 통장 정리를 하던 아침, 찌지직 소리와 함께 기장된 알바비는 다른 달과는 달랐었다.


한달 야칭 3만 9천엔에 관리비 5천엔이었던 집세를 오봉 연휴동안 벌 수 있었기 때문에 9월은 통장도 풍요로왔고 더불어 마음도 여유로왔었다.


산조 다리 건너에 있던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학교에 가며 굉장히 행복했었던 나의 9월은 2018년이었고 지금은 2025년 추석 연휴 끝이다.

시댁은 추석 당일, 새벽에 내려갔고 전부치는 일은 안한지 오래되었다. 시댁에서 전을 안부쳤으니 싸서 가지고 오는 염치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내 나름대로의 명절 룰도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누가 허락해서 변하는게 아니고 사람은 스스로 변해야 바뀔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추석에 “어쩔수가 없다” 영화를 봤다. 이병헌의 역할을 이선균이 살아 있었더라면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취준생들이 오열한 포인트도 찾을 수 없었고 감독이 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제목만으로 내가 이번 추석에 “어쩔수가 없다”의 포인트를 깨닫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집안 내력.

쓰고 기록해서 남기는 걸 좋아하는 고씨 집안 내력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일기장 7권을 남기셨고, 나는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쓴지 7년차다.


아버지 내림이라 나만 그런것 같아도 남동생도 아버지 기일에 쓰는 편지가 돌아가신지 10년차에 벌써 얇은 책 한권만큼이 되었다. 대통령 바뀐 이야기부터 기아가 야구 우승한것까지 아버지 취향 저격으로 고해 바치는 남동생의 낭독문은 훌쩍거리다가 큭큭거리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나는 그게 우리만 그러는줄 알았다. 그런데 자전거 타고 가시다 넘어져서 입원하신 큰아버지 병문안에 가서 일기장을 보고 “어쩔수가 없는거였구나“ 했다.


이건 집안 내력, 피할수없는 병이었네 싶었으니, 골절로 입원하셔서 글씨 쓰는 것도 불편하셨을 분이 일기를 쓰고 계셨다니. “어쩔수가 없다” 고씨 집안 인간극장 “어쩔수가 없다” 편쯤 되는 것 같습니다.


큰아버지는 칠순에도 일기를 모아 책을 내셨고 그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나중에 니 아버지도 칠순에 책 내겠다고 하는거 아니냐”

하지만 아버지는 그럴 일 없이 일기장 일곱권을 남기시고 일흔둘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닮아서 내가 이렇게 쓰는 일을 좋아하나보다했는데 이번에 보니 완벽한 집안내력이었던 것이 밝혀졌다.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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