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몬학습지 시작한 아줌마

학습지를 신청하고 테스트를 받았더니 나이가 58에서 14살이 되었다. 젊어지는 샘물을 원샷으로 들이켜서가 아니라, 레벨 테스트에서 중1 수준이 나와서 영어 학습 연령이 14살이 된 것이니 다들 어려지고 싶으면 영어 학습지에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종이 학습지는 가라. 이제는 태블릿으로 공부하는 시대라서 학습지는 탭으로 해당 주 분량이 들어오고 채점도 탭선생이라는 시스템으로 자동 채점, 오답만 담당 선생님이 해 주시는 방식으로 운영되니 종이에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공부하는 걸 좋아하던 나는 구몬학습지를 위해서 아이패드도 구입했지, 펜슬도 샀으니 공부를 위한 초기 투자가 좀 있었지만 변화된 기류에 맞게 적응하는 것부터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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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이랬으나 결과는 잘 될지, 적당히 하다 그만두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일단 재미가 있었다. 영어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She is smart. 를 아이패드에 펜슬로 따라 쓰던 기분은 중학교 1학년 때 잉크병에 펜촉 넣어서 파란색 잉크로 영어 단어 쓸 때처럼 두근거렸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그만두지 않고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은 종이로 했던 학습지가 이제는 탭으로 바뀌고 아이들은 이제 서른이 다 되어 가는데 내가 학습지를 한다는 게 쑥스러운 일 같아서 학습지 선생님에 물었더니 나처럼 성인 학습자가 많이 늘어서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 한자등은 성인들이 수업을 많이 신청해서 하고 있다고 알려 주셨다.


영어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 생각한 것은 올해 1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여행을 다녀와서였다. 구글 지도를 제대로 보는 것도 해외여행에서는 중요하지만 간단한 말이라도 입이 떨어져야지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나니 돌아와서 한 일이 간단한 해외여행 영어 문장 듣기를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학습지 시작해서 100장쯤 풀었을 때 미리 계획해 두었던 런던과 파리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자유 여행으로 가는 거라서 계획을 여름부터 세우면서 유튜브로 런던 편, 파리 편을 필요한 곳을 골라서 반복해서 보면서 이미 런던과 파리를 백번도 넘게 다녀온 것 같은 기분으로 런던 직항을 탔으나 도착해서 피카딜리 라인을 타러 갈 때의 떨림은 해리포터 영화에서 머리에 지팡이를 대고 기억을 빼내는 것처럼 기분까지 기억이 날 정도이다.


낡고 덜컹거리던 피카딜리 라인 튜브를 타고 킹스 크로스역까지 갈 때 "Mind the gap"이라는 문장이 간간이 들렸는데 그 말은 "발 빠짐 주의"라는 말이었다. 타고 내릴 때는 틈이 넓어서 발 빠지는 것을 주의하라고 했지만 의자는 건너편의 사람과 너무 가까워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 배에"를 짝짝 거리는 손동작으로 하고 가도 될 정도로 가까웠던 것이 튜브(지하철)이었지만 1863년에 세계 최초로 개통했다는 걸 생각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경험한 것이니 앉기도 꺼려진다는 피카딜리 라인 튜브의 더러운 의자도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1863년이면 조선시대 고종 때였으니 경복궁 중건 정도가 가장 큰 역사적인 공사였을 무렵, 영국은 증기 기관차가 첫 연기를 뿜고 다녔다고 하니 유럽과 우리나라의 차이가 영국이 슈퍼카 타고 다닐 때 우리는 소달구지 탔던 것과 같은 차이였겠지만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가 히쓰로 공항에 입국할 때 자동 게이트로 얼마나 편하게 빨리 들어갈 수 있었는지 경험자만 알 수 있는 흐뭇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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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해서 마이너스 1층으로 언더그라운드를 타러 가는 길이다. 우리의 지하철이 영국에서는 언더그라운드 또는 튜브라는 명칭이니 이정표대로만 따라가면 피카딜리 라인을 탈 수 있었다. 그걸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니 해리포터 9와 4분의 3 승강장이 있는 킹스 크로스역에 도착했고 해리포터 찐 덕후인 나로서는 굉장히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해리포터가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카트를 밀고 뛰어 들어갔던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지나면 마법의 세계가 열렸던 것처럼 킹스크로스 역에서 플랫폼 9와 4분의 3을 봤을 때 내 마음은 두근두근거렸고 여행의 시작점은 플랫폼 9와 4분의 3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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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들이 많았고 늦은 저녁 도착이라 추웠지만 처음 와 보는 런던임에도 영국은 원래 이렇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던 풍경들이었다.


승강장을 통과한 해리포터에게는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가 있었고 발 밑을 주의하라는 경고를 들으면서 앞사람과 무릎이 닿을 듯 썸을 타며 한 시간 튜브를 다고 역에 도착한 나에게는 피시앤칩스와 흑맥주와 타워브리지와 빨간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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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몬 영어 왕초급 아줌마 런던 여행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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