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 아니고 런돈이었음.
"Could you please check my reservation" 예약 확인 좀 해주시겠어요. 구몬 영어 입문자답게 짧지만 당당한 영어로 호텔에서 체크인을 했지만 런던 호텔이 리프트(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많고 지하에도 방이 있다더니 우리가 5일 동안 지냈던 킹스크로스역 근처 "아리바"호텔이 딱 그랬다.
프로 짐 많러 셋째와 무소유 여행 추구자인 나지만 11박 12일의 해외여행이니 기본 짐이 있었기 때문에 리프트가 없는 지하 1층 Basement는 5일 동안은 지내고 싶지 않았던 객실이었지만 (우리가 지하층을 B1,2로 표현하는 것이 영국식 표현임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일본 호텔에서는 담배냄새 나서 힘드니 방을 바꿔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던 일본어 능력자였지만 런던에서 B1층에 리프트가 없던 객실을 바꿔달라는 소리 못 하고 그대로 쓴 것은 나의 영어는 입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이 말하는 영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호텔에 지하 1층이 왜 있어? 했는데 영국 특히 런던은 땅값이 비싸서 위로 올리면 건축 규제가 많고 아래로 내려가면 건물 면적을 쉽게 늘릴 수 있고 역사적인 건물들의 스카이라인과 흐린 날이 많은 런던 날씨에 일조권 확보는 엄격한 규제였기 때문에 지하로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합니다.
특히 지하에 있는 방들은 하녀방이었다고 하니 아마도 우리는 하녀 방이나 세탁실로 만들어졌던 공간을 개조한 곳에서 지냈던 게 아닌가 싶었지만 도로뷰였던 지하 방도 숙박비 비싼 런던에서는 가성비 있는 괜찮은 곳이긴 했습니다. 더블 침대 5박에 919,268원 하루에 18만 원 정도라서 우리나라 호텔과 비교하면 쌍욕 나오는 수준이긴 하지만 런던이니 용서가 되는 그런 호텔입니다.
프로 짐 많러 씨께서 샤워기 필터와 세면기 필터를 갈아 끼우고 물을 틀었을 때 곧바로 유전처럼 터지던 까만 물 때와 하루하루 차곡차곡 석회물을 먹고 필터색이 바래가는 걸 보면서 이곳이 석회수의 본고장이고 파운드의 사악한 환율이 움찔한 런던이 아니고 런돈이라는 것을 아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나가서 포도 한 송이와 물만 샀을 뿐인데 체감상 우리나라 3배는 더 되는 것 같은 유나이티드 킹덤이 아니라 유나이티드 킹돈의 나라에서 여행은 시작됩니다.
버밍엄궁근위병교대식-웨스터민스트 사원 성공회 미사-빅벤&런던아이-점심-테이트모던-세인트폴대성당-리버티백화-킹스크로스 세인트 판 그라스 9와 4/3 승강장-동네마트
오전 근위병 교대식부터 시작하는 런던 1일 차 관광이었으나 버밍엄궁 가기 전에 그린파크와 세인트파크의 넓은 공원을 보고 '와'소리가 나왔습니다.
런던아이와 빅벤을 보면서 런던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템즈강변의 갈매기들이 뚱뚱하고 큰 것을 보면서 카모메식당에서 주인공 사치에가 '핀란드의 갈매기는 뚱뚱하다'라고 말했던 일본어 대사가 생각났습니다.
이만보쯤 걷고 하루의 끝은 동네 마트에서 물과 포도 한 송이를 사 들고 호텔의 B1으로 내려가는 런던 시내 속으로의 관광이 체력, 파운드, 영어 3종 세트와 타이틀매치 같았지만 트래블월렛으로 찍고 다니는 편리함과 낡았지만 단순한 튜브(지하철), 의외로 괜찮았던 영어 실력. 하루 만에 감각이 없어지는 파운드의 압박은 내가 여행에 최적화된 사람이구나를 자각하게 해 준 포인트였습니다.
그러니 교토에서도 혼자 1년을 살았던거구나. 내가 나를 이제서야 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