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쇼핑을 하다 보면 많이 보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기간 한정"이라는 말이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일본 캔맥주 "호로요이"에 많이 있었는데 캔맥주뿐만 아니라 상품에는 기간한정이라는 말, 또는 계절 한정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여 있고 그 단어가 뭐라고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집어 들고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산다.
계절별로 나오는 과일은 한정되어 있으니 무한반복 쓸 수 있는 단어이지만 그걸 뻔히 알면서도 사고, 기가 막히게 이용할 줄 아는 게 일본 사람들의 장삿속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동안 내가 마신 기간한정, 계절 한정의 호로요이는 도대체 몇 캔이었을까.
영국박물관에서 보게 되는 유물들도 주인들의 나라에 돌려줄 기간한정 없는 유물들의 집합 장소였다.
입장요금이 없다는 걸 영국은 '지식을 나누는 것'이라는 허세로 플렉스 하겠지만 관람비용은 역사가 대신 지불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금속활자와 불상값으로 냈고 그리스는 아직 돌려받지 못한 파르테논 신전이 200년째 영국 박물관에 체류 중이니 영국이 내 준 가장 긴 비자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대리석 조각일 것이다.
그리스는 빌려줬으니 '비자' 받은 유물을 돌려달라고 할 테고, 영국은 파르테논 신전 조각들에게 시민권 준 지가 언젠데... "You must be joking" 이제 우리 거야. 장난하냐 그럴 수도 있다.
그걸 반출한 '엘긴 경'은 그리스에서는 '에이 퉤 퉤 퉤. 나쁜 놈'이 된 거고 영국에서는 기간한정 없는 박물관 입장객 모집책이 된 것이다.
비가 오는 날, 그다지 길지 않은 줄을 섰다가 입장했다고 생각했는데 박물관 안은 사람들의 잔치, 인종들의 잔치, 홍수를 피해 모든 지구인들이 탄 것 같은 노아의 방주였다. 몇 곳의 유물만 보기로 미리 결정하고 들어갔지만 잠시 길을 잃어주는 게 에티켓일 수도 있을 만큼 남의 나라 박물관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우리나라 박물관도 좋아하고 남의 나라 박물관도 좋아하는 나에게는 좋은 코스였지만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은 선행학습이 필요한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이 만든 '바버' 그걸 입을 수밖에 없는 날씨.
런던 시내 바버 매장에서 보게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감스럽게도 한국 사람들이었다. 승무원들인지 쇼핑을 하면서 '이번 비행은 적자 비행'이라는 말을 하는 걸 봐서 환율이 사악한 런던에서 쇼핑을 많이 했다는 말 같았지만 나도 딸들을 따라서 바버 매장에 왔지만 도무지 이 우중충하고 시커먼 색깔의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바버를 본 순간 교토의 '신자부로 한푸' 가방 집이 생각났다. 백 년 간다는 범포의 돛으로 만든 가방 가게, 교토의 자존심 '신자부로 한푸' 나도 두 개 가지고 있지만 천 자체가 배의 돛을 만드는 뻣뻣한 천이라서 내 수명보다 가방이 더 오래갈 것 같은데 바버의 옷들도 그랬다.
딸들이 옷을 볼 때 나는 포스터를 봤다. POST라고 적혀있는 포스터에 보면 1951년 우리나라는 6.25로 피난짐 쌀 때 런던 아줌마들은 레인코트 입고 바이크를 탔다니 옥스퍼드 대학생들과 성균관 유생들의 차이만큼 위화감이 들지만 바버는 비바람이 많았던 영국의 날씨에 맞는 생존템이었기 때문에 신자부로 한프의 가방천만큼 거친 원단에 소매나 목 주변에는 코르덴을 대서 대를 물려 수선해서 입는 옷이 된 것이다.
코코샤넬이 프랑스에서 럭셔리의 상징 샤넬을 만들었을 때 영국 사람들은 살자고 생존템 '바버'를 만들었고 그들의 생존템에 적자비행을 감수하면서 우리는 쇼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파운드가 그렇게 사악한데도...
킹스맨 촬영지
킹스맨 촬영지를 찾아가면서 보니 그 근처가 다 양복점이었다. 테일러들의 집성촌이었던 것, 늙은 할아버지가 목에 줄자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분에게서 아우라가 느껴졌다. 우리 시아버지도 양복쟁이셨다.
이름도 정겨운' oo라사', 내가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폐업신고를 하셨지만 나는 동네사람들에게 'oo라사' 큰 며느리였고 아버님은 면 사무소 동네에 다섯 개가 있었다는 양복점들을 바늘 하나로 평정하고 간판 내리게 했다는 전설의 바느질쟁이셨다. 시댁 골방에 남아 있는 오버로크 미싱만 아버님의 전성시대를 기억할 뿐이지만 킹스맨 인정이라 했더니 '킹스맨'이 굉장히 잔인한 영화라는 딸의 말.. 그래 우리 시아버지.. 그렇게까지 절약하지 않아도 될 텐데, 돈 아껴 쓰시는 거 보면 당신 생에 잔인하긴 하시다.
내셔널갤러리
파운드는 사악하나 예술 인심은 후한 곳이 런던, 내셔널갤러리도 그런 곳이다. 홍차와 애프터 눈 티는 팔아도 예술은 돈 받고 팔지 않겠다 이건가. 예술을 통해 국민을 계몽한다는 사명으로 만들어진 곳이 내셔널갤러리라니 페이백을 그림으로 실천하는 나라가 영국이었고 덕분에 좋은 그림 잘 보고 왔다.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송이별로, 색감별로 버전이 다르다는 것을. 3송이부터 15송이까지 있고 내셔널갤러리의 그림은 12송이 해바라기.
명화 한 점을 보는 것은 잠시지만 '기간한정'없이 명화 한 점을 보는 감상이 이어지기를 내셔널갤러리에서 생각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