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달픈 이름,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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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투어로 신청한 지고베투어는 지베르니, 베르사유, 고흐마을을 3종 세트로 묶어서 투어 하는 프로그램이름이다. 개선문 역 2번 출구 신문 가판대에서 만난 가이드 겸 투어 대표는 파리에 주재원, 외교관, 유학생을 포함한 한국 사람들이 1,000명이 안 되는 시절에 유학을 와서 자리 잡고 살고 있다 했다.


내가 그동안 만났던 현지 가이드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여행사 대표 아저씨는 1970년 중반 무렵 우리나라 주방에 온수 보급이 많이 안 됐던 시절, 부인될 사람이 파리에서 살기 싫다고 하자 '무슨 소리야 주방에 온수도 나오는데' 하셨다니 그 무렵 파리 아줌마들은 연탄불 위에 온수 덥혀놓고 한 바가지씩 아껴서 퍼 쓰던 우리나라 엄마들과는 다른 삶을 살긴 한 것 같다.


우리는 다섯 형제였고 엄마는 그나마 온수조차 식구들이 아침에 다 퍼서 쓰고 나갔을 테니 설거지는 찬물로 하셨을 것이다. 다섯도 많은데 시골 살던 사촌 오빠를 2년 동안 데리고 있었던 엄마는, 큰 엄마가 동네 사람들이랑 제주도를 가니 며칠만 봐주소 하면서 맡겼다던 사촌 오빠가 큰 엄마가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에도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눌러서 2년을 버티고 졸업했다며....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다.


고흐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파리 시내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근교였다. 고흐가 생의 마지막 70여 일을 보낸 곳이고 하루에 한 점씩 70여 점의 그림을 남긴 창작욕구가 터진 곳이니 고흐는 자기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죽을 줄 알고 그렇게 미친 듯이 그렸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호에게 고독할 '고'에 ' 범 호'를 붙여서 '고호'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식의 고호에 대한 애칭과 그는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산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도 '고 호 정' 높을 고에 범호, 바를 정자를 쓰셨지만 평생 기질이 자유분방하셨던 터라 사람 이름에 바를 정자는 오히려 반대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고흐마을,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 베르사유 세 곳의 투어를 하는 동안 고흐마을에서만 그의 삶의 복선처럼 비가 내렸고 추웠다. 미술책에서 봤던 '오베르 교회'에서 저 아줌마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만 나는 밖에서 사진을 찍고 안에는 들어가질 못 했다. 현지 가이드들이 성당 문 좀 열어달라고 부탁해도 신부님이 고집이 세서 절대 열어주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그만한 권리는 주장해도 되셔도 된다고 생각한다.

빈센트 반 고흐 '오베르 교회'
KakaoTalk_20251117_144920624.jpg 오베르 성당 앞에서 고흐마을 투어 개시

고흐가 마지막을 보낸 라부 여관의 작은 방은 그가 총상을 입고 사흘을 아프다가 죽은 실제 방이다. 고흐 동생 테오는 형이 총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라부 여관의 고흐 방에서 사흘을 옆에서 지켰다고 한다.


형과 동생 사이를 넘어선 남자들의 우정이 이들 형제에게는 있었던 것 같다. 형과 주고받은 편지가 세상에 나와 책이 되고 화제가 된 것도 테오의 부인, 고흐의 제수씨가 테오가 세상을 떠난 후 형제의 편지를 정리하며 전시회를 열어 고흐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니 역시 한 집안을 일으킨 테오의 부인 '요한나 반 고흐 봉에르'씨 멋지십니다.

20251101_100641.jpg 라브 여인숙의 고흐의 방


20251101_084856 (2).jpg 오베르 쉬르 우아즈 공동묘지에 있던 고흐와 테오의 무덤


고흐의 이름에 고독의 향기가 있다면 모네의 이름에는 부티가 철철 흐른다. 모네의 집이 바로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만 그려도 될 정도로 화단을 잘 가꾸었고 친일파가 분명했을 모네의 생전 행적으로 그가 수집했던 일본 도자기와 우끼요에는 방에 전시가 되어있었다. 고흐의 그림에도 우끼요에는 배경으로 있으니 그 시절 인상파 화가들은 일본의 우끼요에를 좋아하던 화풍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4514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ikIAX5iczpGtYepSkasOn1j5ZNI%3D 일본식 다리가 있는 수련 '모네'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4514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9PYuZKf8YkYMX4JLpsCmoPN2bbU%3D 고흐 '탕기 할아버지 초상화' 우끼요에가 퍼즐처럼 배경으로 있다.

결혼을 한 번도 못 하고 죽은 고흐와는 반대로 모네는 첫 번째 부인 '카미유'가 죽은 후 동네 친구 부인이었던 '앨리스 오슈데'와 재혼하여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되는데, 오슈 데는 태생이 유태인이라서 돈의 흐름을 잘 아는 여인이었고 그림으로 명성을 얻기 전의 모네에게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돗자리를 펴 줬으니 첫 번째 부인에게서는 '양산을 든 여인' 초기 버전의 모델을 얻었고.

5su3HqjSKWk 양산을 든 여인

두 번째 부인에게서는 이런 집에서 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얻었으니 모네야말로 처복 있었던 남자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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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에게도 그런 운을 좀 나눠줬으면 좋았을 걸, 고흐는 서른일곱에 죽고 모네는 명까지 길어 86세에 죽었으니 고흐는 고독할 고씨가 맞고 모네는 '머니모네'선생님 맞는 것 같습니다.


고흐마을에서는 춥고 비가 오더니 지베르니 와서는 날이 활짝 갠 것도 화가의 성격같았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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