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자연마저 권력으로 다스리려는 의도로 설계되었다는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우리가 갔던 날이 정원 개방 마지막 날이어서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깡패 같은 유로의 환율에 베르사유가 베푼 은혜 같은 정원 개방을 누리던 날, 많은 사람들이 정원에 있었지만 튈르리 정원이나 쇤부른 궁전의 정원에서 이미 본 것 같은 좌우대칭, 양 쪽이 같은 모양으로 형태를 같이해서 늘어서 있고 멀리에는 호수가 있는 풍경이 이젠 특별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공식을 대입해서 답이 나오는 수학 같은 느낌의 정원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은 그런 정원!!
프랑스어 고어로 '베르사유'라는 단어는 '습지'의 뜻이 있다고 하니 원래는 습지였던 곳을 메꿔서 주거지로 바꾼 땅일 수도 있는 '베르사유'는 아마 내가 처음 알게 된 프랑스어 단어였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 애니메이션 속의 사치스러운 왕비로 알고 있었던 마리 앙뜨와네트에 대해서 다시 알고 가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리 앙뜨와네트가 전통적인 프랑스 왕국의 마지막 왕비로서 보낸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가 귀족들의 권력 분산을 위해 파리 근교의 베르사유에 궁전을 세우고 파티를 열어 귀족들을 불러들여 귀족들끼리 힘을 뭉칠 수 있는 기회를 없애고, 왕 중심의 프랑스 왕정의 문화를 만들어간 절대왕정을 이루기 위해 만든 궁전이었다.
루이 14세의 내가 곧 국가이다라는 말은 베르사유 궁전에 모든 힘이 몰려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들은 베르사유에 올 수밖에 없었다.
루이 14세는 제대로 왕 노릇을 누릴 만큼 누리고 장수한 후에 죽었지만 루이 15세의 흔들리는 군주시대를 거쳐 루이 16세와 마르 앙뜨와네트 시대에 베르사유는 시민 혁명군에 의해서 점령되고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비운의 왕이 되었고 계백장군의 후예도 아닌데 마리 앙뜨와네트까지 콩코도르광장에서 단두대에 처형되었으니 프랑스의 절대왕정은 단두대에서 칼이 내려오는 순간 끝난 것이다.
사람들의 분노는 어디로든 향해서 터뜨려져야 했고 3대를 걸친 베르사유 궁전 시대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이미 루이 15세 시절 재정이 파탄에 가까웠고 간신히 버틴 재정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 시대에 터질게 터진 것이니 폭탄 돌리기가 노래가 멈추는 순간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에게 안겨졌을 뿐이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 산다는 말을 누적된 잘못은 3대째에 터진다는 말로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게 하라'라고 잘못 전해진 말은 마리 앙뜨와네트가 한 말이 아니었으며 프랑스 왕실의 사치는 루이 14세 때부터 만들어진 귀족들의 파티 문화가 만들어 낸 구조적인 문제였을 뿐이다.
화려하게 태어난 공주였기 때문에 세상 물정을 몰랐고 그녀는 베르사유가 시민군의 습격을 받아서 도망칠 때에도 긴 드레스를 입고 도망치다가 잡혔을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공주'였으며 '왕비'였던 여자였다.
그렇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가만히 있기보다는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 그녀가 애썼더라면 역사는 바뀔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가 태어난 시대에 마리 앙뜨와네트에게서 그런 덕목과 기지까지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 태어나서는 공주, 결혼해서는 왕비, 자녀들의 어머니로 살다가 단두대에서 죽게 된 비운의 오스트리아 공주님 '마리 앙뜨와네트'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뮤지컬로도 만들어졌고 영화로는 칸 영화제까지 진출했었다.
적응되지 못 한 시차로 새벽 3시와 4시 사이 맑은 정신으로 깼던 파리에서 마리 앙뜨와네트가 딸에게 남긴 편지를 읽었다. 시차와 전혀 상관없는 딸들이 잠에서 깰까 봐 조용히 커피를 마시면서 불도 못 켜고 그녀가 딸에게 남긴 편지를 읽으면서 파리 감성과 엄마 마음으로 찡하면서 눈물이 났다.
콩시에 주리 감옥에서 처형 전 마지막 편지를 썼던 그녀의 편지는 이런 내용이다.
내 사랑하는 딸,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단다. 신께 감사드려야 할 것은 그분이 내 마음을 평화로 채워주셨다는 것이다. 나는 죄책 감 없이 죽음을 맞는다. 나는 언제나 남편, 너희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언제나 내 자식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행복만을 바랐다.
불행하게도 너희가 내 곁에 없으니 이 마지막 순간에 안아줄 수도 입 맞출 수도 없구나.
하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다.
사랑하는 아이야. 인생에서 원한을 품지 말고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아라,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을 용서해 주렴. 너는 훌륭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하늘을 믿고 세상 속에서 정의롭게 선하게 살아가거라. 안녕 내 사랑하는 아이. 나는 너를 마음속 깊이 안고 간다.
너의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 앙트와네트 드 프랑스
그녀가 두려움에 떨면서 단두대가 있는 콩코도르광장에 고개를 숙이면서 나올 것을 기대했던 파리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녀는 길었던 머리가 산발이 되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이었지만 고개를 들고 당당히 나와서 단두대로 가기 전 발을 밟은 집행인에게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라는 말을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나 이거 읽으려고 프랑스 왔나 봐" 에펠탑은 밤에 아름다웠고 그녀의 편지는 새벽에 나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