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박 12일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파리에서 6일 동안 있었던 집 청소를 업체에서 나와서 청소한 것처럼 깨끗이 해 주고 나왔다. 괜찮다 했지만 자기가 지내던 방을 비워주고 친구 집에 가서 일주일 지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 청소로라도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방값도 조금 지불했고 한국에서부터 준비해 간 소정의 음식들을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싱크대 안에 넣어두면서 남의 나라에서 지내는 어려움에 조금이라도 따뜻한 햇살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나왔다.
올해 1월에 부다페스트에서 너구리 라면을 우리 돈 15,000원에 사 먹었던 한을 풀고자 야심 차게 사 갔던 너구리 라면을 그 친구 싱크대 찬장에 넣어두고 나올 때 굉장한 성취감이 있었다.
파리 갔던 첫날, 전자레인지 옆에 있던 커다란 물엿병을 봤을 때 음식을 제법 해 먹는 아이인 것 같아서 남의 자식이래도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 그렇듯 프랑스에서 혼자 지내는 아들이 있다면 한국에서 맛있는 걸 먹어도 얼마나 마음에 걸릴까 싶었으니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7년 전, 오십 하나에 혼자서 교토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시댁에서는 눈치를 줬지만 우리 엄마는 해 달라고 하지도 않은 반찬을 해서 주셨다. '꼭 가야 되냐고' 한마디를 하시긴 했지만 시어른들처럼 내가 혼자 일본에 가서 공부한다는 것을 그다지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던 게 우리 엄마의 태도셨다. 그리고 엄마는 들기름에 묵은 김치를 씻어서 볶고 장조림과 멸치 볶음을 해 주셨다. 엄마가 해 준 반찬을 들고 가서 그게 떨어질 때 즈음에 서운했던 내 마음이 생각난다. 2018년 4월, 엄마가 해 줬던 반찬들.
간장까지 싹싹 비벼서 통을 깨끗하게 비운 엄마의 반찬들은 2018년 4월 교토에서 나를 한 달은 든든하게 살 수 있게 해 준 엄마만의 응원이었고 사랑이었다.
돌아오는 날, 열심히 청소를 해 주다 욕실 수납장의 작은 유리를 깨는 일이 생겨서 너무 미안해서 편지와 함께 100유로를 수납장 위에 놓고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일일수도 있는 그런 일들이 언어를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외국에서는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는데 어쩜 우리는 그날 욕실 유리를 깼는지 시간을 되감기 하고 싶었지만 이미 유리는 깨졌고 이미 방 사용료로 준 돈 외에 100유로를 더 주긴 했지만 돈에 대한 아까움보다 집주인에게 그런 걸 말하고 처리해야 되는 유학생의 입장이 불편하겠다 싶어 미안한 마음이 컸다.
내가 집을 부동산 회사에 인계하던 날이 생각난다. 일본에서 집을 빌릴 때는 시키킨과 레인 킨이라고 해서 보증금에 해당되는 돈, 시키킨과 방을 빌려줘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주는 레이킨이 있는데 나올 때 시키킨에 해당됐던 돈을 하나도 돌려받지 못했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같았으면 돌려받아야 되는 보증금을 일본에서는 부동산 회사에서 빌려 줄 때와 집 상태가 같지 않으면 무조건 보증금에서 제하기 때문에 살면서 생긴 작은 오염에도 보증금에서 제했기 때문에 하나도 돌려받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가 와서 보고 한숨을 쉬었던 교토의 작은 방은, 2층이었지만 그늘이 져서 햇빛이라고는 팔 하나 뻗은 만큼만 야박하게 들어왔던 방이어서 습하고 비가 많았던 교토에서 일 년을 지내고 나니 곰팡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약품을 사다 많이 닦아 놨어도 부동산 회사 직원의 눈에는 모두 하자로 보였기 때문에 시원하게 보증금에서 제한다고 했고 길게 따질 수 없었던 나는 그러마 했었다. 사실 우리나라였으면 방이 워낙 햇빛이 안 들고 습한 날씨로 나도 고생하고 살았고 이만큼이라도 깨끗하게 청소했으니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겠지만 부동산 아저씨도 아니고 부동산 회사에서 빌린 집이라 직원의 일본어빨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럴 때 쓸 수 있는 좋은 한국말이다.
뒷정리는 깔끔하게 하고 나와야 되니 뭐든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하는 일본의 구청을 몇 번 가서 국민연금 해지 신청과 의료 보험 해지, 퇴거 신청까지 하고 보증금은 까였지만 청소는 깨끗하게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1박 12일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차가워진 날씨에도 가을꽃들이 화단에 활짝 피어 있었고 출퇴근이 멈춘 나의 자전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런던도 좋고 파리도 좋았지만 집은 더 좋다는 걸, 여행할 때마다 새롭게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