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끝났고 5일 정도 고생했더니 시차도 적응이 돼서 멜라토닌 없이도 잘 자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행이 나에게 주는 좋은 점은 잠깐 유지상태이긴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들이 '뭐 별거 있어. 이만한 일로 그렇게 맘 쓸 건 없잖아'의 대인배 모드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지속력이 아주 긴 편은 아니라서 일 년에 두 번은 여행을 가 줘야 주사 효과처럼 일상 면역력이 생기기 때문에 살면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적은 없으나 여행은 면역력 강화 수액이라고 생각하고 실행하려 한다.
돈은 들지만, 그래도 패키지가 아니니 이만큼 즐기고 이 정도 비용이면 괜찮다. 생각한다.
11월 4일 돌아오는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는 패키지여행을 마치고 아시아나를 함께 타는 아줌마들이 있었다. 아줌마들은 6박 7일의 일정이었다고 했다.
아줌마 1 "우리, 우리 얼마 썼지?"
아줌마 2 "기본 경비 600썼잖아"
아줌마 3 "우리가 만원씩 걷어서 가이드한테 5만 원 주는 게 어때"
아줌마 4 "싫어, 나는!!"
아줌마 5 "이따 내려서 저녁 먹지 말고 가자. 집에 가서 빨래도 해야 되고 내일 출근도 해야 되니까"
6일 있었다고 사람들과 조금만 스쳐도 '파흐동'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말하기 좋아하는 중년의 패키지 여행객 아줌마들 덕분으로 언어의 구금 상태가 공항에서 귀부터 해제가 되어서 11시간의 비행을 견디지 않아도 귀는 먼저 입국 상태가 되었고 내 마음도 아줌마 5처럼 세탁기를 돌리고 있었으니 K줌마들의 힘이란 정말 대단합니다.
패키지여행이니 우리처럼 런던과 파리만 있었던 게 아니라 여러 곳을 다녔겠지만 일단 돈의 차이는 우리가 압도적인 1승이었다. 우리가 11박 12일에 쓴 경비는 이렇다. 딸 둘은 1인 경비 350만 원이 들었고 나는 장 봐서 밥을 해 줬기 때문에 추가 비용 100만 원 더해서 450만 원이 들은 것 같다.
오는 날 청소하다가 유리를 깨서 100유로 더 주고 온 것과 가기 전에 준비한 것들, 파운드와 유로 환전을 생각하면 내가 쓴 비용은 500만 원 정도이다.
급여가 적은 6시간 직종 일을 하는 나에게 500만 원은 세후 석 달은 일해야 모아지는 돈이지만 500을 시원하게 쓰고 왔어도 일원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여행 경비이다.
두 딸들과 '그때 엄마가 그랬지. 우리가 그랬지'하면서 이야기할 거리들이 생겼고 낮에 보면 커다란 열쇠고리 같지만 밤에는 빛나던 에펠탑이 있는 파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직접 보고 느꼈던 나라들에 대한 문화에 호기심이 왕창 생겨나서 어제는 영국에 다녀온 나만의 기념으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영화 '스펜서'를 봤다.
영국 왕실 가족들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샌드링엄 하우스에서 보내는 3일 동안의 이야기가 영화의 줄거리일 뿐이지만 닮은 사람들을 캐스팅했는지 실제 인물들과 비슷한 인상의 배우들이었고 다이애나 왕세자 비의 연기를 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섬세했다.
영화 제목이 '스펜서'인 이유는 다이애나가 왕세자비를 버리고 원래 이름인 '스펜서'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어서 '스펜서'가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을 생중계로 본 사람으로서 나는 그녀가 죽었던 1997년 어느 여름날 굉장히 놀랐었고 안타까웠었다. 대전에 살 때였는데 태평동 어디쯤을 지나가고 있을 때 차 안에서 라디오로 뉴스를 들었고 더웠던 그 여름에 둘째를 가져서 입덧이 심했던 때였다
예민하던 시기여서 그날의 날씨와 어느 지역, 어디쯤에서 뉴스를 들었는지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98년 출생한 둘째가 28살이 되었으니 그녀가 죽은 지는 29년이 되는 것 같다.
다리는 아프지만 직접 다니는 여행이 패키지여행보다 좋은 점은 기억이 오래간다는 점이다. 물론 나는 기록하길 좋아해서 패키지를 다녀와서도 다큐멘터리 모드로 기록하지만 글로는 남아있어도 정서로는 오래가지 못하는 여행을 패키지에서는 경험했다면 직접 저녁에 현지 마트에 가서 장 봐서 밥 해 먹고 가족들과 투닥거리면서 다니는 여행을 하고 나면 올해 1월에 콜로세오 역에서 걸어서 에어비앤비로 걸어갈 때 싸했던 로마의 밤공기의 차가움까지도 볼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장소에 데려다줘서 경험하는 것과 내 발로 찾아가서 경험하는 수고로움의 차이가 여행의 디테일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다.
1월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 부다페스트에서 먹었던 너구리라면의 감동적인 맛도, 일주일 넘게 붙어 있으면 가족끼리라고 해도 한 번은 투닥거리는 것도 자유여행이기 때문에 경험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개인의 성향 상 맞는 여행이 있고 편한 여행이 있다는 점이니 패키지여행의 편리함이 좋은 사람은 그렇게 다니는 것이고 이제 그러기에는 나는 허둥대고 깜짝 놀라는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자유여행이 좋아진 사람이라 앞으로 불편한 자유를 누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