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 아니라 건망증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산만한 성격 탓인지 아니면 요즘 아이들에게 제법 있는 ADHD인지(나도 그런 기질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국민학교 1학년 때 미술 시간마다 거의 크레파스를 잃어버려서 "엄마 왕자파스 사게 백 원 줘"해서 왕자님이 잘난 체하고 뚜껑 위에 그려져 있던 왕자파스 12색을 문구점 단골로 사서 다녔었다.
엄마한테 혼나도 소용없었던 게 미술 시간이 끝나면 나의 새 왕자파스는 사라져 버렸으니 그걸 1학년 아이가 찾을 수도 없었고 친절했던 채경순 선생님한테 이를 생각도 못하고 엄마한테만 새로 사내라고 하고 다녔으니 1975년 나의 왕자파스 12색은 그때 다 어딜 갔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1학년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채경순 선생님은 그 시절 선생님들처럼 우리를 때리지도 않았고 예뻐해 주시던 분이셨다. 선생님이 잉크냄새 풀풀 나는 등사기로 교실에서 롤러에 잉크를 묻혀 시험지를 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멋졌고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앉혀놓고 사생대회 준비를 시켜주셔서 나는 대회에 나가 크레파스 27색을 타는 입선을 했었다. 선생님이 그려보라고 주신 삼각형 지붕의 양옥집은 시골에서 도무지 본 적이 없었던 집이라서 "선생님, 저는 이런 집 처음 봐요" 했더니 나를 데리고 기차를 타고 도시의 선생님 집으로 퇴근을 하시면서 "봐라, 저런 게 양옥집이야" 알려주셨다.
전화도 없던 1975년, 우리 동네 아이에게 내가 집에 안 가고 선생님 집에 가서 자고 올 거라고 선생님이 시키셨다는데 그 아이가 말을 전달하지 않아 우리 엄마는 딸 없어졌다고 난리가 났었고 밤늦게서야 어떻게 알았다고 하셨다. 그런 소동을 겪고 미술대회 입선을 해서 '왕자파스' 27색을 부상으로 받았었다.
선생님에게 그렇게 예쁨을 받았으니 나는 나의 정체성을 모르고 학년이 올라갔고 산만한 아이라는 것을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최원석 선생님이 써 준 통신표를 보고 알았다.
"주의 산만" 통신표에 분명히 쓰여 있었지만 "주의 산만"이라는 처음 보는 단어가 너무 멋져서 좋은 말인 줄 알았다. 그렇다 나는 원래부터 '주의산만형' 인간이었으므로 새삼스러울 것은 없으나 요즘은 깜빡거리고 잘 챙기지 못하는 것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이니 정신을 차리기는 차려야 될 텐데...
지난주 토요일, 취미로 하고 있는 합창단에서 연주가 있어 준비를 잘한다고 했는데 연주회장 도착해서 보니
검정치마를 안 챙겼다는 걸 알았다. 뭐 사실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악보 안 챙긴 게 1번, 연주복 안 챙긴 거 두 번, 이번까지 세 번이다. 그나마 일찍 다니는 습관으로 연주회 리허설에 굉장히 빨리 도착했기때문에 다시 집에 다녀 와서도 시간이 남을 수 있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마음이 절망스러웠다.
"나는 왜 이러냐"
다시 집에 가서 연주치마 다시 챙기고 연주는 잘 마쳤지만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했었는지 모른다.
두 개를 하려고 하면 하나는 꼭 잊어버리는 실수를 하고 산다. 멀티가 안된다고 하는게 딱 나를 두고 하는 말같다. 이제 생긴 증상은 아니고 생각해보니 어렸을때부터 그러긴했네. 하지만 이제라도 정신 꼭 붙들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