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에서 세서 올라가는 것보다 아흔에서 내려오는 게 더 빠른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연세에서 올 해가 마지막 김장이 되었다.
"내년부터는 힘들어서 김장 안 하니까 각자 알아서들 해 먹어라"
눈물 콧물 다 빼먹은 시댁 김장의 흑역사가 시아버지 한 마디에 종결이 되었고 이제 알아서들 따로국밥으로 김치를 해결하고 살 게 될 것이다.
나야 진작에, 김치 독립만세를 외치고 친정과 시댁의 김치에서 탯줄 끊고 떨어져 나온 사람이지만 남편의 나머지 세 형제들은 이제 사서 먹든 담가 먹든 스스로 해결하는 새 역사를 맞아들이겠지만 유일한 딸인 형님은 김장이 없어지면 엄마 집에 모이는 게 한 번 더 없어지니 아쉽다고 했다 하니 나도 딸이지만 형님은 특이하긴 하다. 효도가 특이한 세상이 되었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님이 주신 깨와 들기름, 통마늘과 겉절이를 한봉투 가지고 남편이 어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다. 그는 결코 무사한 것이 아니었으니 꽉 막힌 장과 함께 돌아왔고 그의 신호는 집으로 와서야 터졌다고 했다. 까탈스럽기는 내가 100이라면 남편은 5쯤 될라나. 순환 활동이 안되었다는 것은 시댁에서 3일 살이하는 동안 많이 불편했다는 것이다. 내가 건넨 초강력 울트라 유산균 두 캡슐에 남편은 후들후들 거리는 순환 활동 후에 김장의 여독을 전기장판 위에서 지지면서 풀고 있는 주말을 보내는 중이다.
집은 그런 곳이다. 그래서 다들 기를 쓰고 집으로 가는 모양이다.
엄마도 올해 김장이 끝났고 시댁도 끝났지만 시댁의 김장은 이제 완전히 끝이 난 것 같다.
결국 당신들이 힘이 부쳐야 끝나는 게 김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밭에서 배추 뽑을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스스로 마음을 접는 것이 어른들의 김장인가 싶다. 이제 시댁에 갈 때 가을부터 올라오는 원수 같던 텃밭의 배추들을 안 보게 될까. 우리 김치는 샀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님 말씀이 "사 먹는 게 맛있다냐" 한 말씀하셨다지만 나처럼 김치 맛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맛이 그 맛이다.
우리는 힘든 것이 김장이지만 일본 친구들에게 김장이란 즐거운 행사, 꼭 해 보고 싶어 하는 마쯔리 같은 것(축제)라고 생각하는지 꼭 해보고 싶어 해서 23년에 성당 아줌마네 집에서 김치 담그기를 하고 찍은 일본 지인들 사진이다.
김치를 한통씩 담가서 일본으로 갖고 가면서 즐거워하던 히라이와 에츠코에게 김치 담그기는 여전히 축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니 "인생은 멀리서 보면 축제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가 맞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김치 같은 건 아니지만 일본에도 소금에 절여서 겨울에 대비해 두는 음식이 있긴 하다.
쓰케모노(漬物, 일본식 절임)가 가장 김장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배추를 절이거나 다꾸앙이라고 부르는 단무지도 알고 보면 그런 절임 식품이니, 종류만 달라질 뿐 커뮤니티가 필요한 겨울 나기용 식품이 세계 곳곳에 있을 것이다.
일본의 어느 가정에서 쓰케모노를 만들테니 당신도 와서 거들고 구경하세요 한다면 나같아도 즐겁게 갈 테니 김치 담그기를 즐거운 집안 행사라고 생각하는 히라이와 에츠코의 기분도 입장바꿔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고생은 본인이 하고 왔지만 예전에 당신이 고생한거 생각하면 미안하다고 나한테 돈을 주겠다는 남편의 과잉 마음 씀씀이와 이제 진짜 끝난 시댁 김장 행사를 끝으로 한 맺혔던 김장 이야기는 끝을 낸다.
김치도 필요없고 나는 남편만 있으면 월동 준비고 인생 준비고 다 끝나는 거였다. 그걸 이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