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추운 날, 2025년 천주교 수원교구 사제 부제 서품식이 있다니 하느님은 오늘이 잔칫날인지 모르시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이렇게 추운 날 부제 서품식을 했으니 앞으로 더 매서울 부제로서의 생활에 대비하라는 뜻일까 잠깐 묵상하게 된다.
연주자로서 오늘 부제 서품식에 참여 한 둘째를 데려다주러 나도 일찍 행사장 성당에 아이를 내려놓고 나오는 길에 검정 학사복을 입고 카디건만 걸친 학사님 세 분의 뒷모습을 봤다.
그분들도 앞으로 시련이 있어도 이겨낸다면 부제서품도 받으시고 사제 서품도 받으시겠지. 마음속으로 화살기도를 바치고 출근했다. 내 친구도 수녀님이니 모두 같은 신앙의 수호자들이고 그분들이 평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기도와 협력 밖에는 없는데 인간의 갈등 구조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고 그것은 아마 천국과 지옥에서도 있지 않을까 싶다.
스물일곱에 나는 결혼을 했고 친구는 수녀원에 입소했었다. 한 동네에 사는 친구였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나의 영원한 솔메이트는 힘들 때 동네 전봇대 아래 가로등에서 길고 긴 내 이야기를 들어줬고 친구가 힘들 때는 내가 이야기를 들어줬었다.
수녀원에 들어가기 전 둘이서 부산인지 통영으로 여행을 갔었고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동행할 수 있는 친구가 나라는 것이 고마웠었다. 친구 때문은 아니지만 이후로 세례를 받고 우리 아이들도 유아세례를 받으면서 친구는 세례명까지 고심해서 지어서 편지로 보내줬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공중전화와 편지로 중요한 일을 전달하던 시절^^. 비둘기 다리에 묶어 전달은 하지 않았으니 너무 오래된 일이라 생각하지 마시길~.
삼십 년 전이라 그럽니다. 휴대폰이 없었고 수녀원에 전화해서 통화하는 것은 시간이 정해진 엄격함이 있었으니 중요한 이야기는 집에서 못 하고 나가서 공중전화로 했었습니다.
나는 결혼 생활에서 힘든 것을 이야기했고 친구는 성소생활에서 갈등을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수녀님이 되는 것이 아니고 신부님이 되는 것은 아니니 어디든 갈등이 왜 없었겠습니까. 성인이라도 화가 날 때는 화를 낼 테니 사람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 힘듦을 친구도 겪고 나는 나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밤에 붙들고 나누는 공중전화에서의 이야기는 아쉽고 짧았지만 못한 이야기는 편지로 하면서 시간을 견뎠고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간 것 같네요.
어디선가 수도 생활 잘 하고 살고 있겠지 생각하면서도 시간은 이십년이 훌쩍 넘어갔고 우리 아이들이 친구가 수녀원 갔을 때의 나이쯤 되었을 때 다시 만났습니다.
얼마나 눈물이 나든지 붙들고 울고 시작한 만남은 연락이 서로 끊긴지 이십 오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울고 웃고 친구랑 오늘처럼 추운 날 보라매 공원을 몇 바퀴씩 돌고 맛있는 만둣국을 먹고 헤어지면서 잘 지내고 있는 친구의 모습에 아쉬움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늘 부제 서품을 받는 학사님들도 부제 서품 후에 사제 서품, 사제 서품 후에 신부로서 죽을 수 있기를 기도드려야겠습니다. 신부님 되는 것 보다 신부님으로 죽는 것이 더 어려운 세상이니까요.
뭔가 중요한 일은 모두 추운 날 있는 것 같은 것은 내 경우에만 그럴까. 아니면 모두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