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나

'나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현정수 신부님이 작곡한 성가를 지난주 토요일 연주회에서 불렀다.

알토 오른쪽에서 끝, 고개가 삐딱한 여자가 바로 나다. 역시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분으로 봐야 모르고 있던 자신만의 '흠'이 보인다. 노래를 부를 때 이렇게 고개가 삐뚤어져 있었다니...

영상 속으로 손을 넣어서 고개를 확 돌려놓고 싶다.


아들이 지휘를 하고 나는 합창단원으로 노래를 했다. 저 날, 연주 치마 놓고 가서 다시 집에 와서 가져간 것은 브런치 독자들과 가족들이나 알지 함께 노래 부른 단원들은 모른다. 창피해서 말할 수가 없다.

뭘 한 두 번 놓고 다닌 게 아니라서 말이다.



노래를 좋아한 것은 정말 오래됐다. 유행가도 잘 불러서 초등학교 때 동네 노래자랑 같은데 나가서 윤승희의 '제비처럼'으로 1등 상을 받았다. 아주 어렸을 때라 떨지도 않아서 '꽃 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아주 요망지게 불렀던 것 같다. 그러니 1등을 안 줄 수가 있었겠냐고...


그래서 내가 노래를 아주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 줄 알았다가 6학년 때 현실의 넘사벽을 마주 하고 말았으니...

그것은 전학! 시골 초등학교지만 전교 어린이 부회장이었던 내가 전학을 가서 도시의 아이들을 보니 그 애들은 딴 나라 사람들 같았다. 엄마가 쪄준 삶은 계란과 사탕 몇 개, 맛동산 한 봉지에 제대로 된 소풍 가방을 메고 소풍을 가는 아이가 시골 초등학교 우리 반에서는 나와 선생님 딸 정도였었는데 전학을 와서 보니 애들이 바나나를 먹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바나나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껍질을 밟고 넘어지는 장면에서나 보던 거였지 실물을 보게 될 줄 몰랐다.

우리 반 애 말로는 엄청 난 부잣집 애라고 했는데 그 아이가 자기 엄마랑 나란히 앉아 바나나 껍질을 얄밉게 벗겨가며 먹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문화충격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바나나를 얄밉게 먹던 그 아이는 누가 누가 잘하나 지역 예선 대회에 나가서 바나나를 얄밉게 먹던 얄밉던 입으로 '성뚝 아래 홀로 핀 노랑꽃 하나, 아무도 못 보는 노오랑 꽃 하나'를 불렀다.


시골 우리 동네에서 '제비'같은 유행가를 불러 1등 상을 탔던 게 노래를 잘한다는 것이 아니고 누가 누가 잘하나 지역 예선에 나가서 얌전한 원피스를 입고 바나나 먹던 입으로 입모양도 야무지게 노랑을 노 호랑이라고 불러야 노래를 잘하는 것이라는 걸 6학년 때 알았다. 나는 그때 인생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시골에서는 잘 나가는 아이였고 친구도 많았는데 전학 와서 성뚝 아래 홀로 핀 노랑꽃이 된 건 나였다. 아무도 못 보는 노랑꽃 하나가 되어서 쓸쓸한 6학년을 보냈다. 다시 시골로 전학 가고 싶어서 많이 그리워했지만 단절된 6학년 때 전학은 어느 쪽에도 모교를 만들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돌고돌아 다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연주 장소에 악보를 놓고 가기도 하고 연주복을 놓고 가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해결해서 무대에 섰고 가장 최근의 일은 지난 주 토요일 연주에 검정 치마를 놓고 가서 다시 집에 와서 챙겨 간 일이었지만 영상에서 보면 고개만 삐딱한게 문제지 치마때문에 속 터지는 일이 있었다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계속 부를것입니다. 연주치마 두고 다니는 거 고치고 고개도 반듯하게 하기!

그것만 고치면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속도가 아니라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