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s off
1월이 가고 나니 이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다. 요즘 구몬 영어에서 과거형 표현에 들어갔는데 과거형이 이렇게 좋을 일인지 싶다. 다시는 돌아올 리 없는 2026년 1월, 사요나라다.
가, 가버려, 꺼지라고!! 꺼지라의 영어 표현이 piss off인데 지나간 1월에 대한 나의 마음이 1월 piss off다.
스코틀랜드 시키들 꺼져가 아니고 1월 꺼져버려!
'꺼져'의 발단은 '돌봄 교실 추첨'때 일어났다.
과밀학군이라 돌봄 교실 입급은 해마다 추첨이 문제없이 그냥 지나간 적이 내가 있는 3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첫 해에는 추첨이 끝났을 때 공이 하나 남아 있어서 문제가 되었고, 다음 해에는 입급 자격을 미리 고지하였음에도 부모들의 민원이 끝도 없이 이어져서 처음에 고지한 입급 자격을 부모들이 기를 써서 바꾸고 들어오느라 학교의 전화는 1월에 가장 바빴다.
세상에 그렇게 똑똑한 부모들과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초등학교 돌봄 교실에서 일하다 보면 1월에 알게 된다. 정말 징글징글한 1월을 보냈다.
탁구공을 통 안에 넣고 입급 확정과 대기 순번을 뽑는 추첨 방식으로 흰 색의 탁구공에 O와 X로 표기된 공을 뽑아 입급과 탈락을 결정하는 추첨 방식이었다. 20명씩 네 개 반을 편성하고도 대기자가 스무명 이상이 나오는 경쟁률이었으니 부모들의 눈빛이 평온할리 없는 추첨에서 신중하게 손을 넣어 뽑은 탁구공이 O면 웃으면서 나가고 X면 나즈막하게 "에이씨"를 하는 엄마들도 있었다.
추첨하러 온 부모들의 숫자와 통안에 있는 탁구공의 숫자는 1:1로 딱 맞게 떨어져야 되고 탁구공에 수기로 표기한 O와 X가 정확해야 되는 것이 추첨의 기본 조건인데 정말 일이 안될려고 그랬는지 아이들에게 교육방송 틀어주고 교실 뒤에서 내가 혼자 표기한 탁구공은 O와 X가 없는 공이 하나 나왔고, O와 X가 모두 표기된 공이 또 하나 나왔다. 추첨을 진행하는데 이 공은 뭘까요? 하고 공을 들고 묻는 부모의 손에 들린 O와 X 정체불명의 공과 아무것도 없는 탁구공이 연거푸 나왔을 때 나의 영혼은 이미 이 세상 것이 아니었다.
변명같지만 추첨을 진행하기 위한 사전준비를 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곳이 겨울방학 중 돌봄교실이다.
추첨을 위해서 오는 부모들은 100명이 넘지만 그들을 감당해야 될 우리쪽 인력은 네 명이 최대치다보니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전과정을 서로 쌍방향 확인하지 못 한 우리들의 책임이었고 과실이었다.
잘못된 탁구공 두 개를 연거푸 보는 순간 나의 영혼은 이 세상것이 아니었음에도 추첨이 끝난 다음 떨어진 부모들의 거친 항의는 내가 아직 살아있고 욕을 듣는 귀가 멀쩡히 내 얼굴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해 줬다.
"이 추첨 무효야, 엎고 다시 해"
잘못 표기 된 탁구공 두 개의 효과는 엄청났다. 경험하지 못 한 이승만 때의 부정선거라도 본 것 처럼 남자 두 명이 분개하며 소리를 질렀고 그들의 요구는 다음 날부터 국민 신문고와 교육청 그리고 학교에 걸려오는 민원전화로 이어졌다.
소문이 그렇게 무서울수 있음을, 진실을 덮고 만들어지는 말들의 무서움을 온전히 경험했던 일주일을 보냈다.
돌봄교실 신청자 중에서 학교 운영위원회 아이가 있었다. 조작된 공이 들어가 있었다. 추첨 중간에 조작된 탁구공을 넣었다. 이 말들은 중간에 돌아가버린 부모들로 마무리되지 못 한 추첨 후에 내가 내내 들었던 소리들이다.
나도 엄마고 우리 엄마에게는 소중한 "우리 큰 딸"인데 이렇게 비참하게 까발려지고 바보 취급을 당하다니...
이런 말 들을려고 남의 집 아이들을 봐 주고 있나 허무하고 씁쓸한 마음에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일주일을 보냈고 항의 전화 일주일 만에 그들은 결국 학교에 돌봄교실 하나 증설이라는 새 역사를 만들어냈다.
부모들이란 대단한 존재들이다.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안 될 것들을 보란듯이 만들어서 개설하는것이 부모들이라는 것을 이번 일을 겪으면서 다시 알게 되었다.
결국 모두에게 잘된 일이지만 전화벨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벌렁거리는 증세가 생겨서 우황청심환 세 병으로 일주일을 버텼고 입맛이 싹 사라지는 기적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속 끓임은 통역이 되지 않았지만 새 역사를 만들어냈고 탁구공이 지긋지긋해져서 교실에 있던 공들을 다 버리는 걸로 마음을 풀었다. 정말 징글징글한 1월 피스 오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