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어디까지 해 봤니?
지금 집으로 이사 온 게 2015년이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애착했던 물건들을 버리고 왜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를 물건들을 버리는 일들을 대대적으로 행하고 나서야 다음 집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바다를 건너는 제주도 이사까지 해 봤으니 이사에 관한 레벨은 최고치를 찍었을 것 같아도 할 때마다 새로운 게 이사의 세계다.
버려도 끝이 없는 짐들 사이에서 현타가 왔던 첫 번째 이사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했던 제주도 이사였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서 허탈함이 클 때 남편이 제주도로 발령이 나서 시댁 탈출의 찬스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아 신이 나서 이사 준비를 했었다.
남편의 제주도 발령은 안정환이 골을 넣었을 때보다 더 짜릿했었다.
시댁에서 함께 산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부르면 달려갈만한 거리에 산 다는 것은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함께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어머니의 영향권, 태풍의 영향권 밖에 살려면 본토를 떠날 수밖에 없는 일. 제주도를 근무 희망지로 써내고 한 번 밀린 적이 있었던 남편에게는 두 번째로 써낸 '제주도'였고 내 마음이 더 힘들어지기 전에 국가가 나서서 나를 구해 준 게 제주도 이사였다.
그러니 남편먼저 제주도에 들어가서 초등학교 2학년, 5살, 4살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세 아이들과 전주에 남아 있었지만 이사 준비는 신이 나서 할 수 있었고 하루하루 가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이사에는 항상 따라다니셨던 어머니도 제주도 이사만큼은 포기를 하셨다.
이사할 집 안방에 솥단지를 놓고 하룻밤을 자야 잘 산다는 어머니의 이사 원칙에 따라서 대구로 이사 갈 때는 직접 따라가셨지만 대구에서 살 때 남편이랑 가장 박 터지게 싸웠고 많이 울었었다.
오히려 어머니의 이사 철학이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던 제주도에서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었다. 라면 한 봉지를 사려면 2킬로 산 아래로 내려가야 되고 짜장면은 배달 불가, 치킨은 몇 마리 이상 협상을 하고도 내가 어느 정도까지는 받으러 가야 되는 오지에 살았지만 시댁의 레이다망에서 벗어난 큰며느리의 깃털처럼 가벼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제주도 소길리였다.
전주-대전 1-대전 2-대구 1-대구 2-전주-제주도-춘천 1-춘천 2-춘천 3-춘천 4-수원 1-수원 2-수원 3-수원 4
그동안의 이사 흐름도다. 결혼한 지 32년,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닌 셈이니 생애 이사주기가 아니라 2년에 한 번 이사를 다닌 번거로운 인생 살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1999년 대구 관사에서는 3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이사를 했지만 겁도 없이 3층까지 기어 올라 다니는 15개월 둘째가 너무 위험해서 1층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엠에프 때라서 공무원 급여도 삭감되었을 때였지만 내가 돈이 없지? 모성이 없냐? 15개월 둘째가 3층까지 기어서 올라왔다가 기어서 내려가는 걸 목격하고는 애 잡을까 싶어서 1층에 빈 집이 난다길래 얼른 찜해서 이사를 했었다.
그래놓고 그 집에서 얼마 못 살고 전주로 다시 발령이 나서 이사를 했으니 우리 어머니의 솥단지 미신도 맞지 않고 내 사주에 들어 있는 흙토 4개의 기운도 맞지 않는다.
토는 안정·부동의 성격으로, 사주에 토가 많으면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기운이 강해 이사를 덜 하게 된다고 하지만 나는 토가 네 개나 있음에도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기운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32년이 지나갔다.
그리고 또 이사를 준비하면서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 사는 집이 10년 넘게 산 집이니 이 집에서 처음으로 이사 간격을 길게 늘이고 이사를 나가는 것 같다.
이사하면 시어머니가 생각나서 우리 시어머니정도면 어디 내놔도 안 빠지는 성깔이시라고 생각했는데 아는 선생님이 결혼해서 얼마 안 된 새댁시절에 시어머니가 밭에서 뽑은 무 다섯 개를 택배로 보낸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 어머니는 그분 밑으로 체급을 내려 드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어머니!! 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