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은 달라도 스트레스는 같다
추석을 지내고 오니 숙제 하나를 끝낸 것처럼 시원하다.
브런치 글을 우리 막내 동서가 볼 일이 없으니 다행이지, 본다면 아마 나는 순하디 순한 우리 막내 동서에게
머리채 잡힐지도 모른다.
막내 동서는 결혼하지 마자 시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큰애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가 되어서야 분가를 했으니
장장 시집살이 만근 17년이었다.
그러니 시댁의 온갖 행사는 막내 동서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되지 않았고 명절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어머님이 주도권을 쥐고 뭔가를 하시는 것 같았으나, 십칠 년을 지내면서
동서에게로 기우는 것들이 보였다.
우선 송편이 그랬다.
집에서 만들어서 먹어야지 사다 먹는 게 말이 되느냐고 소리를 지르시던 아버님을 조용히 제압하고
이제 송편은 방앗간에서 맞춰서 동서가 가지고 온다.
송편 상자에 써져있는 동서의 이름 중에 성이 잘못되어 있는 걸 발견하고
"동서 떡 상자에 "소"라고 안 쓰여있고 호라고 쓰여 있더라"했다.
우연히 발견한 동서 이름의 오자를 보고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원래 말이 별로 없는 동서는
자기 성이 소면 어떻고 호면 어떠냐는 식으로 내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자기 일만 했다.
그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송편은 만들지 않고 방앗간에서 해주는 걸 먹는다는 게 중요한 거지
성씨 따윈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혀"
아들이 셋 있는 시댁이지만 시댁에서 차로 이삼십 분 거리에 떨어져서 사는 막내 동서 말고는 명절이라고 일하러 단박에 올 수 있는 며느리들이 없다.
결혼한 지 26년, 지금은 손님처럼 갔다가 오지만 결혼 초반에는 며느리 셋이 모여서 뭔가를 하고 있을 때도 제법 있긴 했다.
명절 같은 때 셋이 함께 있는 걸 보시면, 시어머니께서는 세상에 이렇게 흐뭇할 때가 없다는 듯이
"며느리 셋이면 소도 때려잡는단다"라는 근거 없는 속담을 말씀하셨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 그 말을 내 친구에게 옮겼더니 "아들이 셋이겠지, 며느리가 백정도 아니고 어떻게 소를 때려잡겠어"
"빚내면 소도 잡는다"가 바른 속담 일터였지만 어머님은 그걸 며느리 셋으로 바꿔서 우리 셋이 모여
있을 때마다 자주 읊으셨다.
그게 무슨 마음이었을까 싶다.
나한테는 저렇게 든든한 며느리 셋이 있으니 앞으로 나는 명절 때면 손 놓고 너희들이 해 주는 음식 먹고 그저 가만히 구경이나 하련다. 그러 마음이셨을까 싶지만 어머님은 소도 때려잡을 며느리 셋을 보시고도
한참 동안은 어머님이 하시고 싶은 대로 명절 차림을 이어 나가셨다.
어머님이 하고 싶으신 대로 했던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쇠머리 찰떡이었다.
언젠가 어머님은 설날에 이제부터는 흰떡 대신 쇠머리 찰떡으로 대신하겠다고 하시고는 밤, 콩 듬뿍 들어가서 영양가도 좋은 쇠머리 찰떡으로 명절을 쇠겠다고 선언하셨다.
물론 나는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방앗간에서 막 가져왔을 때야 맛있지만 어머니가 나눠주는 대로 집으로 가지고 와서 결국 못 먹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결국에는 버리게 되고 그런 악순환을 몇 년 되풀이하다가 다시 흰떡으로 원상 복귀되었었다.
흰떡이라면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떡국이라도 끓여 먹을 텐데, 냉동실에 들어가서 꽁꽁 얼어버린
쇠머리 찰떡은 NO 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네 분들 중에 누가 흰 떡 대신 쇠머리 찰떡을 했더니 자식들이 좋아하더라고 했었나
추측을 해본다.
쇠머리 찰떡으로 몇 년을 보낸 다음에는 인절미의 시대가 도래했었다.
인절미는 쇠머리 찰떡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뜨끈뜨끈한 떡 반죽 덩어리를 넓게 펼쳐 놓고 접시 가장자리를 굴려가면서 인절미를 자르고 콩고물을
무치는 모습은 어른인 내가 봐도 경이로웠고 촉촉하고 말랑하기가 우리 둘째 아기 때 엉덩이처럼 부드러웠던
인절미는 쇠머리 찰떡보다는 손이 많이 가는 수고로움이 있어서인지 맛있었지만, 모든 음식이 그러하듯
한 김이 빠지고 냉동실에 들어가 버리면 천하의 명의 화타가 살아 돌아온들 음식 맛을 살려 낼 수는 없었다.
프라이팬에 구워 먹다가, 밥솥 위에 질펀하게 쪄먹다가 결국에는 냉동실에서 굴러다니는 걸 버리게 되었고
어머님도 별 수없이 우리랑 같은 진행 과정을 거치셨는지 쇠머리 찰떡도, 인절미도 시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명절 전 날 느긋하게 일어나서 내 볼일 다 본 다음에 내려가는 시댁이 되고 난 다음부터는 명절이 다가와서
스트레스를 받네 그런 소리 했다가는 양심 없는 죄로 잡혀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 막내 동서는 아직까지
명절이 다가오면 몇 주 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마트에서 장을 봐다가 냉동실에 집어넣고 냉장실에 집어넣고
어머님 냉장고를 청소하고 명절 전 날이면 아직 대학생인 자기 딸과 함께 커다란 채반으로 전을 두 광주리나
부쳐서 놓아둔다.
동서가 조용히 바꿔가고 있는 명절 주도권에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게 바로 "전"이라는 증거다.
시댁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지름이 넓은 전 광주리에는 김장김치와 돼지고기를 번갈아서 끼운 산적이 한 광주리
호박과 버섯, 동태전이 따로 한광주리
저렇게 많은 전을 도대체 누가 먹나 싶을 만큼 많이도 부친다.
전 부칠 때 꽂이 하나 꿰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괜히 동서에게 "누가 먹는다고 저렇게 많이 해?"
한마디 하면 동서 대답은 "몰라요, 제가 준비해 둔 것보다 어머님 아버님이 조금씩 늘려놓는 것 같아요"
그게 가능한 것이, 김장김치랑 고기를 꿰어놓는 산적만 해도 아버님이 밑준비를 해주시니 며느리들 같으면
이 정도면 됐으니 그만 하자고 할 것도 두 분은 재료가 다 없어질 때까지 준비해두시는 것이다.
"아버지, 다음 명절 때부터는 전은 양을 줄이든지 아니면 사다 먹자고요"
큰아들인 내 남편이 그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도 벌써 몇 년째 같은 말이고
"집에서 해 먹으면 되지 사 먹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로 대답을 하시는 것도 해마다 있는 일이다.
전과 나물만은 동서에게 잡히지 않고 어머님이 아직도 가지고 있는 명절權(권) 같은 것이다.
어머님의 명절권은 전과 나물만을 남긴 채로 정리가 된 것 같다.
시아버지 입맛에 맞춘 삭힌 홍어찌개도 명절 점심 상에 빠지면 섭섭한 음식인데 그것도 슬그머니 빠져있는 걸로 보아, 막내동서의 여당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촉으로 알고 돌아온 추석이었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의 추석 같은 명절이 おぼん오봉이다.
양력 8월 15일이 오봉 축일이고 전후로 해서 휴가를 주기 때문에 길게는 일주일 이상 쉬게 하는 회사도 있고
그때 일본 사람들도 고향 앞으로의 행렬이 이루어진다.
오봉 휴일에는 쉬는 가게도 많고, 일본에서도 오봉 기간에는 우리나라의 명절 뉴스처럼
공항에서나 역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헤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소감을 묻는 인터뷰가 등장한다.
2018년도의 오봉 기간에는 보로니아도 무척 바빴기 때문에 나처럼 아무 걸릴 것 없는 사람은 알바를 주야장천
8시간씩, 오봉 휴일 기간에 해서 다음 달 급여가 보로니아에서 일한 이래로 최고치의 엔화를 찍었었다.
北村(키타무라)상도 나랑 같이 오봉 기간 내내 8시간을 일하길래, 남편 고향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혼했다는 시크한 대답이 돌아와서 그녀가 원했건 원치 않았건 간에 오봉 휴일 기간에
키타무라의 이혼 커밍 아웃이 되어 버렸다.
일본의 경우에는 제사를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며느리들의 스트레스는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없는 편이다.
절에 모여서 스님의 주도하에 잠깐 독경 듣고 돌아가신 분 사진 앞에서 합장 같은 걸 하고 경전 읽는 시간 보내고 나면 그걸로 제사는 끝이 나고 모인 친척들과 함께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 나눠먹고 헤어지는 게 일본인들의 제사 풍습이라서 일일이 음식 장만해서 홍동백서 따져가면서 제사상 차리는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일본 며느리들은 그야말로 껌 같은 제사를 지내고 그런 제사도 해마다 하는 게 아니라
1주기, 3주기, 7,13,17,23,27,33주기 8번의 제사를 끝으로 한 사람에 대한 제사가 끝이 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돌아가신 지 33년이 되면 이생에서 잘못 한 모든 것들의 무죄방면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마지막 제사가 되는 것이다.
절에서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집이 본가일 경우에는 간혹 스님을 불러 집에서 독경을 듣고 간단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 정도로 끝이 나거나, 집안에 차려져 있는 돌아가신 분 불단 앞에서 간단하게 합장하는 정도로
대신하는 게 우리나라의 제사에 해당된다.
그러니 전을 부친다거나, 나물을 하거나, 여자들 손이 가지 않고서는 끝이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명절 음식 같은 것은 일본에는 없다.
그저 일본 며느리들에게 스트레스가 있다면 설날이나 오봉 휴일에 본가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 와야
된다는 정도의 스트레스만 있을 뿐이다.
일본에 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시댁에서 코이노보리를 가지러 내려오라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5월 5일에 남자아이의 성장과 출세를 기원하면서 걸어두는 잉어의 장식물인데, 시어머니가 그걸 굳이 가지러 내려오라고 며느리에게 연락을 해서 짜증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대부분 맨션에서 생활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단독주택이 아니고서는 걸기도 마땅치가 않은데
시어머니는 준비해두었으니 와서 가져가라고 하시니 며느리 입장에서 속이 터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시댁에 가면 며느리가 소라도 잡을 것처럼 일을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주면서 비교적 편히 지내다 오는 것 같은데도, 자기 집을 떠나 시부모님을 뵙고 오는 일은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힘든 일인 것이다.
하여간 짧지만 일년동안 내 주변의 일본의 며느리들을 보니 그들은 제사와 명절에 대한 스트레스는 덜했지만
시댁에 대한 스트레스는 우리나라와 같았다.
국적은 달라도 스트레스는 같았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