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들과 재수생들을 울렸던 2018년 도쿄의대 입시비리
2018년에 도쿄 의과대학의 '입시 부정'
도쿄 의과대학에 문부과학성 관료의 아들을 부정 입학시켰다는 혐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난 8년간 점수를 감점하는 조작으로 여성과 재수생 이상의 남학생들을 고의로 떨어뜨렸다는 게 발각된 것이었다.
75명을 뽑는데 대학 관계자의 아들을 합격 시키기 위해서 점수를 조작해서 74등으로 합격시켜준 일이 발단이 되어서 조사를 하다보니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나온 입시비리였다.
외국인이 보기에 늘 상냥하고 옷깃만 스쳐도 쓰미마셍이 자동응답기처럼 튀어 나오는, 일본인들의 보여지는
모습과는 너무나도 상반된 감춰진 뒷모습이었다.
우리나라같았으면, 총리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베는 건강상 이유로 올 해가 되어서야 퇴진하고 스가가 총리가 되었으나, 입시 비리 사건이 터졌을때도
아베는 건재했고, 일본인들은 조용했다.
그렇다고 아베 총리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귀엽고 어린 아이들과 본인과 직접적인 친분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붙이는ちゃん (짱)이라는 호칭을
아베에게 붙여서 아베짱이라고 부르는 일본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베가 수상으로서 친근해서가 아니라
어린 아이처럼 아직 사리분별도 못하고 더 커야 되는 뜻에서 "짱"을 붙이는 듯했다.
마루코는 아홉살에서 마루코의 단짝인 타마에가 마루코를 부를 때 "마루짱" 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일본에서 의대를 가는 일도 우리나라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중학교 입시부터 치열한 교육 경쟁 사회인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대학 입시에서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재수 이상(삼수생이상)의 남학생이라고 해서, 고의적 차별을 받았는데도 부모들이 그렇게 가만히 있다는 것이
이상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대학의 관계자들이 45각도로 고개를 숙이고 사과문을 발표했을 뿐이다.
이후에 이루어진 전수조사에서 이미 다른 의대에서도 그와 비슷한 사례들이 많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학생과 남학생의 입학 비율을 따져 본 결과 남학생들의 합격 비율이 여학생에 비해 높았다)
일본 여의사 협회에서는 "도쿄 의대"의 그런 처사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주변의 협조를 얻지 못해 중간에 경력이 단절되는 여자 의사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이해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너희들이 저지른 비리를 용서하고 이해하겠다는 의미보다는 여자들이 일하기 위한 사회가 조성되지 않은 일본 사회에 대한 비꼬는 말이기도 했다.
정유라가 말타고 들어간 학교에 같은 해 입시비리로 떨어졌던 학생이 구제를 받지 못했던 것처럼
일본도 그랬다.
나아진것이라고는 2019년도 입시에서 문부과학성 시정 조치로 2019년 도쿄 의과대학 합격률은
남성과 여성이 거의 같았다는 것 뿐이었다.
입시 부정이 있었던 2018년은 남학생의 합격율이 여학생의 3배 정도였다.
버스에서 옷깃만 스쳐도 쓰미마셍의 떼창이 울리는 일본 사회에서
촛불을 들던지 아베 짱 관저앞에 드러눕던지 해야 마땅할 사회 부조리였는데도 조용했던 일본 사회였다.
펜트하우스에서도 입시비리가 나왔다.
"합격자는 원래 정해져 있어. 정해진 애들 말고 그 밑에 구색맞추는 천재들 뽑고 나면 네 자리는 없다.
청아예고 설립 후 예비 번호가 합격된 적은 없었다. 꿈도 꾸지 마라"
드라마에서 진지희가 예비 1번을 받은 학생에게 한 말이다.
극중에서 천서진도 실기곡을 부르다 삑사리를 낸 자기 딸을 구제시키기 위해서 점수표를 조작하고
그 결과 입시에서 완벽하게 실기곡을 부른 유진의 딸은 예비 1번이 된다.
예중이든, 예고든, 음대 입시든
음악과 입시경쟁률 중 최고는 단연코 성악이다.
극중에서 아무리 재단 이사장의 손녀라고 한 들 삑사리를 냈다면 불합격인데 당당히 합격을 한 것은
누가봐도 입시비리다.
완벽하게 불러서 합격을 했더라도 그 아이가 재단 이사장의 손녀라는 것 만으로도 입시비리라는 소문이
돌께 뻔한데, 점수조작으로 합격을 시킨다는 설정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이들 음악을 시켰던 나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1984년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때, 같은 도시의 사학재단 이사장의 손녀가 우리학교에 입학했었다.
재수없는 뺑뺑이는 그녀를 할아버지 학교가 아닌 공립학교였던 우리학교에 떨어뜨려 놨고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같은 도시의 학교에서 전학이 안되었을텐데도, 그 아이는 입학식 종이 치자마자
할아버지 학교로 전학을 보란듯이 갔다.
열 일곱 살이었지만,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학교에서라면, 저 아이는 내신도 잘 받을 수 있겠구나
15등급의 깨알같은 내신이 있던 1984-1986년의 고등학교 세대였던 때였다.
입시비리는 일본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지도 모르고
한국에서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우리와 일본이 다른 게 있다면 어디까지 참아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는 두 나라 간에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