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오래된 것들이 좋다.

교토를 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일본으로 유학을 결정했을 때 맨 처음 떠올린 곳은 '후쿠오카'였다.

달리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18년까지 일본 여행 중에 후쿠오카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도시였기 때문에

"막연하게 후쿠오카라면 좋겠다"가 이유였다.


가보고 싶은 곳과 공부하고 싶은 도시의 간극을 두지 않은 즉흥적인 판단이었다.

그저 한국을 떠나, 수원 우리 집 26년 된 낡은 단독 주택을 떠나, 나를 괴롭히러 우리 집 반지하에 세 들어

살고 있는지 의심이 되는 101호 할머니를 떠나, 감춰 둔 날개 옷을 꺼내 입고 훨훨 날아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계속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결정한 데에는 교육비가 가장 큰 이유였다.

같은 값에 아파트에 살면 생활의 편리함은 누릴 수 있으나, 생활의 편리함만 쫓기에는 현실이 벅찼다.


징글징글하던 렛슨비의 현실은 살던 아파트의 아랫동네에 있던 오래된 주택가 동네로

나를 흘끔거리게 만들었다.


같은 돈이면 주택으로 이사를 해서 가장 위층은 우리가 수리를 해서 살고

아래에 딸려 있는 네 가구는 전세를 주든지, 월세를 줘서 교육비에 보태자!!!

하지만 삶이란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과 이상의 사이는 멀고 멀다.

생각한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에 누가 근심 걱정을 끌어안고 살겠는가


살던 아파트의 아랫동네의 낡은 집들은 많고 많았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선에서 집을 구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붉은 벽돌로 견고하게 지어진 단독 주택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안은 더 늙어 있었다.

화장실 위층에 다락이 있는 오래된 집이어서 화장실의 천정은 남편의 머리와 닿았고 다락을 없애고

화장실 천정을 높이는 일부터, 공사는 생각보다 더, 더, 더, 크게 진행되었다.


화장실 천정은 견고한 콘크리트여서 그걸 깨부수는 공사에만 꼬박 하루가 걸렸고 인부가 세 명 투입되었다.

기계로 구멍을 뚫어가면서 벽을 허물면 우리 아들 또래로 보이던 외국인 노동자 총각이 그걸 짊어지고

수도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그걸 버리는 걸 보는 일도 편치 않았다.

옛날 집이라 계단의 단차는 일반 계단의 두 개 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거운 걸 짊어지고

오르락내리락했다가는 무릎이 나갈 판이었으니

내 돈 내고 일을 시키는 데도 남이 힘든 꼴은 못 보겠으니 집 고치는 일도 아무나 할 일은 아니었다.


하여간 내가 살집은 현관문부터 뜯어내고 모든 걸 바꿨다.

아파트에 살면서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들의 개념과는 다른, 이것은 살기 위한 생존 인테리어라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아니 인테리어도 아니고 그냥 '집 고침' '새로고침'을 하고 이사를 했고

집을 고치는 두 달 동안은 세입자가 나간 아래층의 방 두 칸짜리 투룸에서 지냈다.

다 큰 애들 셋이서 한 달 동안 한 방을 썼고 우리 부부가 작은 방을 쓰고 두 달을 지냈다.


대학생 아들에 고등학생 딸 둘이서 넓은 방 하나를 썼는데 그 방에서 잠을 잔 첫날

연습실에서 늦게 돌아온 둘째가 오빠와 동생이 자고 있고 가운데 비워 놓은 공간이 자기의 잠자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잤다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했다.


아파트는 누수와 층간소음 문제만 아니면 크게 문제가 있을 게 없는 주거형태지만 단독주택은 집이 오래되면

될수록 문제가 차고 넘친 다는 것을 세입자를 받고 알게 되었다.


다섯 가구가 살고 있는 집은 우선 맨 위층이 우리 집

주인층이라는 이름으로 한 층을 다 쓰고 있고 그 아래에 두 가구 또 그 아래층에 두 가구의 형태를 띤

전형적인 다세대주택이다.


어느 집에서 변기만 막혀도 나를 불러대는 통에 나는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고 101호 사는 할머니가 특히 까탈을 부렸다.

"아래층인데요, 잠깐 내려와 봐요"

나중에는 101호 할머니라고 전화기에 뜨면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일주일에 서너 번은 호출을 당하고

말도 안 되는 민원으로 나를 괴롭혔다.


다른 집에서 휴지를 함부로 버리기 때문에 자기 집이 물이 막히는 것이니 주인으로서

다른 세대 관리를 해야 된다

(아 ,그러세요, 할머니만 잘 하시면 될 것 같아요)


화장실 올라가는 문턱이 높아서 밤에 자기가 화장실 가다가 넘어져서 허리가 삐끗해서 죽을 뻔했다

(제가 집을 안 보여주고 결정하신것도 아니시고 다 보시고 들어오셔놓고 왜 딴소리하시나요)


옆집 애기 엄마가 싸자기가 없다

(그러세요, 할머니는 정신이 이상하신것 같아요)


윗집 총각은 중국 사람이라 더럽다

(할머니, 떡진 머리나 감고 이야기하세요)


세상에 대한 불만과 이웃들에 대한 의심이 충만한 할머니에게는 세상 모두가 적인것같았다.


검증도 되지 않은 자기만의 추측으로 사람들을 평가하더니 급기야 별일도 아닌 걸로

옆집 싸가지 없다는 세입자 아줌마와 큰소리로 싸움이 났다.

적극적으로 자기편을 들고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중에는 불똥이 나한테로 튀어서 나만 보면

불평불만이 방언처럼 튀어나오는 할머니였다.


그나마 싸게 내놓은 전세도 오백이나 깎고 들어오시지 않았느냐

집 구조 직접 눈으로 보고 들어오셔놓고 나한테 왜 그러시냐고 나중에는 나도 가만히 있지 않고

오십 평생 진짜 처음으로 할머니랑 목소리 높여가며 싸웠다.


"내 아들이 잠실에 집이 두 채가 있고 딸들은 하나는 미국에 살고 하나는 일본에 살아"

"지금 집 있다고 유세하는 거야"


나한테 이렇게 말을 했던 101호 할머니는 결국 전세금을 오백만 빼줘라, 급히 돈이 필요하니 또 오백만 빼줘라

그것도 돈이 필요한 하루 이틀 전에 이야기하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기행을 거듭하시다가

우리 집에서 나가셨다.


오백, 천 착실히 빼내었던 전세금은 할머니가 나갈 때는 오백이 전부였다.

다시는 같은 동네에서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전세금 받아서, 월세 받아서 렛슨비에 보태고 싶다는 생각은 말 그대로 이상이었을 뿐

이상이 현실이 되기까지 현실은 냉정했다.


벽에 곰팡이가 피어요, 집이 새는 것 같아요,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요, 현관문이 안 열려요

번호키 건전지가 삐리 삐리 소리가 나도 무시하고 다니다가 결국 밖에서 더 이상 안 열릴 지경까지 간

혼자 사는 아줌마 세입자가 전화를 해서 문을 열어 달라고 했을 때

나의 인내심의 주머니는 찢어질 지경이었지만, 어떻게해서라도 문은 열어주었다.


관리소장으로 살아야 되는 게 주인집의 숙명인 것이다.

유튜브로 건전지가 나갔을 때 문 여는 법을 검색해서 열어주고는

"내 동생 같았으면 한 대 때렸어요" 진심으로 한마디 해줬다.


하여간 나는 후쿠오든 교토든 남극이든 북극이든 우리 집 아래층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이 없는 곳이면

특히 101호 할머니가 없는 곳이면 어디라도 갈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재수를 마치고 무사히 대학교에 입성한 둘째와 연년생 입학생이 된 셋째를 두고

밥만 할 줄 아는 남편을 두고, 큰 아들은 일년 휴학을 시켜놓고 용감하게 떠났다.


후쿠오카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후쿠오카로 몰리는 많은 한국의 젊은 유학생 때문에 나이를 먹은 아줌마는 비자가 안나올지도 모른다는

유학원 상담실장의 조심스러운 충고때문이었다.


반면, 교토는 외국인에게 친절한 도시라는 평판이 있었고

일년 전부터 꾸준히 구독해 온 교토의 카페에 관한 브런치 글을 읽으면서 교토라는 도시에 대해서

호감을 키워 간 게 선택에도 일조를 했다.


다만 수연이가 "언니, 교토는 더울텐데요. 그리고 사투리가 심할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 이미 나는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던 마음의 바람이 난 상태였었다.


교토는 어쩐지 끌림이 있었고, 문화유산이 거리마다 산재해 있다는 오래 된 도시에서 꼭 살아보고 싶었다.


무서울만치 더웠던 교토의 살인적인 더위와 머리카락이 오싹했던 지진의 공포는 부록이었지만

경험해보기 전의 것들은 두근거림이었으니

용감하게 갔는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 이 집을 선택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도

교토를 택했던 것도


오래 된 것들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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