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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 이야기

대출이 있어도 이자 따위 한 번도 연체된 적이 없는데,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좀 뜸하게 쓴다 싶으면 한 달도 안돼서 알림이 뜬다.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그렇게 쌓인 글은 책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조사는 '도'

'탄생하기도'에서 '도'지만, 도 한글자만 바라보고 글을 쓰기에는

소재는 딸리고 책으로 나올거라는 희망은 거품같아 가끔 이 짓을 그만 두고도 싶지만

요즘 빠져 있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이가 박동훈 부장에게 했던 말

"성실한 무기 징역수처럼 꾸역꾸역"

나도 그렇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의 글을 성실한 무기 징역수처럼 꾸역구역 쓰고 있다.

그럼에도 '도' 라는 조사는 희망고문이긴 하다.




쓰다보면,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을수가 없다.

글로 만나는 공간이라 비대면의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일 것 같아도, 오십명이 안되는 구독자의 절반은

지인이다.


개인적인 일을 쓸 때도 많고,잠시 지냈던 교토 이야기를 쓸 때도 있지만

이번 소재처럼 순도 100% 자기 이야기를 쓴 다는 것은 잠시지만 우선 멈춤을 하고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이런 이야기까지 써야 돼 말어야 돼 그런 기분이 잠시 들지만

"성실한 무기 징역수처럼 꾸역꾸역"


글을 쓰는 창구는 다르지만

블로그에는 사는 곳과 우리 가족들의 주말 메뉴까지 대충은 우리 가족의 정체마저 파악이 가능하게끔 썼으면서

이름 커밍아웃하는 이야기가 뭐라고

그걸 오늘 한다.




나는 이름이 세 개다.

늦가을에 태어나 해를 넘긴 한 겨울에 출생신고가 된 나는 태어나서 출생신고까지 석 달이 안될때까지

생애 최초의 이름이었던 美(미) 로 불려졌고, 출생신고 할 때는 외자 이름이었던 美 뒤에 내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한 글자가 더 붙어 47년을 살았다.


한 글자가 더 붙은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고 한다.

나의 성이 문제였던 것!

세상은 좁고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출생신고 담당하는 공무원들이었는지

고(高)와 미(美)를 합친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하려 했더니


출생신고 담당자: "'고미,고미' 하면 나중에 학교 들어가서 애들한테 곰이라고 놀림받지 않겄어요.

                     미 다음에 글자 하나 더 붙이쥬"

해서 내 이름은 성은 아버지께 받고, 가운데 이름은 부모님이, 마지막 이름은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았다.


서용이라고 출생신고하러 갔다가, 여자 애 이름 끝에 용이 웬말이냐며 서영이라고 하라고 하신 분도 계셔서

서용이 될 뻔 했다가 서영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게 된 지인도 있는데 하여튼 센스꽝이었던

1969년도 임피면 사무소 출생신고 담당하셨던 분 때문에 내 이름은 미?이 되었다.


엄마는 서운해서 한참동안 태어나서 불렀던 이름 '미'로 불렀다고 하셨고 석달도 못써봤던 '미'라는 이름은

출생신고서의 잉크가 마름과 동시에 내 이름이 되어 47년을 썼다.




일본은 부부동성 제도라서 여자들은 결혼하면 남편과 같은 성으로 바꿔야한다.

우리나라처럼 부부별성을 유지하고 싶은 부부들이 소송을 하기도 했지만

부부동성 위헌 소송에 대해서도 합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부부별성제도를 시행하면 가족의 일체감을 해지고 자녀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란 바로 이런 말을 두고 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여자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부부동성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남편이 부인 쪽 성을 따라 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은 남편의 성을 따라 온 가족이 하나의 성을 이루는 게 일본의 가정이다.


그러다보니 일본 여자들은 결혼하면서 한 번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서 이름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바꿔야 한다.

은행관련 서류,명함,사원증, 신용카드,여권뿐 아니라 이름하면 떠오르는 모든 것을 바꾸는게 일본 여성들이다.


이름 하나에 딸린 부속품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개명을 해 보면 안다.

개명 한 1인으로써, 성격급한 나 조차 개명한지 7년이

되도록 가만히 있다가 최근에 바꾼 서류들도 있으니

결혼은 두 세번도 하지만 개명은 두 번은 비추다.


그러니, 일본 여자들은 이혼한 다음에 원래 자기의 성으로 돌아가야 되는 데도, 한 번 결혼할 때 해봤던

귀찮은 과정이 싫어서 이혼했어도 남편의 성으로 사는 여자들도 있다고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앞의 성이 두 글자, 뒤에 붙은 이름이 두 글자로 네글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일본 사람들은 사람을 부를 때 앞의 성에 さん(상)을 붙여서 부르기도 하고 뒤의 이름에 さん(상)을

붙여서 부르기도 한다.


학교나 사회에서 만난 사이이면 보통은 성에 さん(상)을 붙여서 부르기 때문에 나도 일본어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고さん(상)이라고 불렀고, 보로니아 빵집에서 알바할 때도 아줌마들이 고さん(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밤부라는 이름의 일본식 식당에서는 나경さん(상)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일본에서 내가 불려지는 이름은 고さん(상)과 나경さん(상) 이렇게 두개 였었다.


친밀감의 정도에 따라 さん(상)은 ちゃん(짱)으로 바뀌기도 한다.


타마짱과 마루짱

마루코는 아홉살에서 단짝 친구인 마루코와 타마는 서로를 타마짱, 마루짱이라고 부른다.




2014년 여름에 이름을 개명했다.

동기는 단순했다.

이름이 싫었다.

미 다음에 오는 한글자가 문제였다.

출생신고 담당이었던 공무원의 즉흥적인 한 글자가 내 인생의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 중학교때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육십명도 넘었던 군산여중 1학년 3반에서 담임이 내 이름을 부르자 아이들이 동시에

수군댔다.


"뭐야, 이름이 구미호래"

마음껏 상상하시라, 미 다음에 어떤 글자가 있을 때 담임의 바람빠진 발음으로 구미호가 될 지!

국어 선생님이었던 담임의 시원찮았던 발음은 내 이름을 구미호로 만들었고, 그때까지 한 번도

부끄럽지 않았던 이름이 다음엔 누가 부를까봐 무서운 트라우마가 된 것이다.



사진 속의 잘생긴 아버지는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우리 큰 딸, 우리 ㅇㅇ 라고 불러 주셨다.


그렇게 싫지도 좋지도 않았던 이름이지만

2014년에 원래 이름이었다는 전설의 "미"로 돌아가야겠다 싶었다.


'미"로 개명을 하려고 했더니

성명학적으로 봤을 때 개명하려고 하는 이름이 더 안좋기 때문에 아예 다른 이름으로

개명하는 게 좋다는 성명학 풀이를 받았다.


세례받을 때 신부님께서 "미신을 끊어내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네, 끊어내겠습니다" 라고 이십 이년전에 선서했어도 다 소용없다.


이름 잘 지어서 말년이 좋다면, 아이들도 잘 되고 모든 게 좋아야 나의 말년도 좋은 법

내 이름 하나 짓는데 나와 성이 다른 남편과 아이 셋까지 줄줄이 딸려 나오는 건 또 무슨 마음이었을까


개명 두 번 할 거 아니니, 중년운이 시작되는 시점이니 기왕이면 말년까지 쭉 좋은 이름으로 가즈아!!




사주에 성명학 풀이를 넣고 나경(那境)이로 개명을 하게 되었다.


개명 이유를 쓴 사유서를 보고, 남편이 그랬었다.

자기가 판사라고해도 개명해주고 싶을만큼 잘 쓴 개명 이유서를 쓰고 한 번에 오케이 받고

한자도 내가 정해서 나라이름 나那와 지경 경境을 합친 글로벌한 이름으로

개명을 하고 나자 아버지는 서운해하셨지만

나경이라고 부를 때마다 오백원씩 적립금이 쌓인다고 하자

엄마는 원래 내 이름이 나경이었던것처럼 "고 나경" 이라고 불러 주셨다.


2014년에 여름에 개명을 하고 아버지는 같은 해 겨울에 돌아가셨다.


쓰러지시고 이 주 만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에

손님처럼 들어섰을 때 상주 이름란에는 개명 전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47년을 써왔던 이름의 마지막은 아버지의 돌아가심과 함께 막을 내린 셈이다.


那(나)라는 뜻에는 어찌 나와 나라 이름 나도 있는데 내가 선택한 뜻은 나라 이름 나여서 그랬을까

개명 한 후로 일년이지만 교토에 가서 혼자 살기도 했고, 일본인 친구들도 생겨서 잘 지내는 걸 보면

글로벌하게 살고 싶은 바람을 담아서 개명한 이름 값을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바꾸지 못해 안달이 났던 이름이었어도, 아무리 개명을 했다고 주장을 해도

시끄러 이 년아 한 번 미*이는 영원한 미*이여 하며 친구들이 옛날 이름을 불러줄 때

그게 또 그렇게 친근하다.


출생신고 전,미

출생신고 후,미*

교토에서는 나경 상과 고 상

죽을 때는 개명 한 이름이겠지만, 죽어서 아버지를 만난다면 나는 개명 전 이름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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